
얼마 전,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는 최근 AI 코딩 교육을 받은 후 '승진대상자 심사 자동화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축해 실무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기획부터 검토, 질적인 의사결정까지 AI와 '함께' 수행하며 여러명의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었죠. 하지만 그는 씁쓸하게 물었습니다. "제가 AI로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시장 가치가 치솟아도, 우리 회사는 저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온전히 해줄 수 있을까요?”
AI는 대체자가 아니라 '곱셈기'
무신사의 백엔드 개발 디렉터인 차정현님이 구매개발실장이던 시절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진행했던 파일럿이 있습니다. 그는 그 결과를 공개했는데 그 중 우리가 주목할 부분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차정현님의 링크드인 게시글 : https://abit.ly/0mi9v43 )
이번 파일럿을 통해 ‘AI가 개발자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AI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x)의 관계에 가깝습니다. 개인의 역량에 곱해져 그 효과를 배가시키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는 엄청난 가능성이자 동시에 무서운 약점을 시사합니다. 개발자의 역량이 10이라면 AI는 그 역량을 100으로 만들어주지만, 역량이 1이라면 결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약 잘못된 방향성이나 습관이라는 음수(-)의 값을 가지고 있다면, AI는 그 음수 값을 더욱 증폭시켜 프로젝트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AI가 우리의 일을 대체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AI가 개인의 역량을 증강시키고 성과를 증폭한다는 것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더 의미있는 것은 개인 성과의 상방 확장성 뿐 아니라 하방으로도 큰 폭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낮은 역량으로 잘못된 방향을 설계하고 AI로 증강된 힘을 그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그 부정적인 임팩트도 배가 된다는 것이죠.
1인당 기업가치 1.5조, 텔레그램엔 왜 인사팀이 없을까?
텔레그램이 IPO 가능성이 언급되던 시절 기업가치는 약 300억 달러로 추산 되었고, 30명의 직원으로 나누어 보면 직원 1인당 기업가치 10억 달러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환율을 1,500원/달러 로 계산하면 직원 1인당 1.5조의 기업가치가 나오는데요. 이는 전세계에서 기업가치가 가장 높고, 인당 기업가치도 압도적으로 높다고 하는 엔비디아보다도 거의 10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조직에 전담 인사 부서(HR)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네이비 씰'처럼 독립적으로 광범위한 책임을 지며, 관리자 없이 스스로 업무를 관리합니다. 고객 지원과 서버 유지보수 등 반복적인 업무는 고도로 자동화된 봇(Bot) 시스템이 처리합니다.
더불어, 텔레그램은 자체 구축한 플랫폼인 contest.com을 통해 정기적으로 개발, 디자인 등의 대회를 개최하며, 대회의 우승자나 우수한 성적을 거둔 참가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텔레그램 핵심 팀(Core Team)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대회 우승이 텔레그램 팀에 합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텔레그램은 "최고의 인재를 뽑아, 강력한 자동화 도구를 쥐여주고, 스스로 일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전통적인 HR의 필요성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검증된 최상위 인재만 뽑는 이유는 단순히 실력 때문이 아니라, HR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강력한 도구와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음수의 증폭'을 막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과 격차의 판단과 그에 맞는 보상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어도, 이미 주도적인 인재들은 AI를 통해 개개인의 성과 격차를 제곱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역량이 커질수록 이들의 시장 가치는 수직 상승하지만, HR은 여전히 정규분포형 평가와 '형평성'이라는 잣대를 의미있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10배 이상의 임팩트를 내는 인재에게 몇 퍼센트의 인상률 차이만 제안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떠나지 않을까요? 성과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이미 관찰할 수 있는데, 보상체계는 여전히 산술 평균과 덧셈, 뺄셈의 도구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인 듯 합니다.
많은 조직들이 이를 보완하고 핵심인재 ‘리텐션’을 위해 차별적인 보상을 제안하거나 별도의 프로그램을 시도합니다. 실제로 제가 쿠팡 HRBP로 있던 시기에(구체적인 내용은 이야기 하기 어렵지만), 핵심인재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핵심인재들은 대부분 조직내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러 구성원들의 힘을 정렬하여 큰 임팩트를 만드는 대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협업하면서도 혼자서 10배, 100배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솔로 플레이어’ 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들은 동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성과를 증폭하기 보다는 AI와의 협업 강도와 밀도를 높임으로써 그 결과를 더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인재에 가깝습니다.
하이퍼 퍼포머를 위한 독자적 궤도 설계
성과가 좋으니 이제 리더가 되어 조직을 이끌라는 요구는 AI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100배의 엔진을 단 이들이 조직의 중력에 치여 속도를 잃지 않도록, HR은 다음과 같은 독자적인 궤도를 설계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프로 스포츠팀처럼
조직은 조직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개인도 개인으로서 만들어내는 임팩트의 크기는 개인들이 가진 강점이 조화롭게 적용된 조직이 만들어내는 임팩트의 크기를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조직의 규모는 과거보다는 훨씬 더 슬림하고 가벼울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겠지요.
가벼워진 조직에서 개개인이 발휘하는 임팩트의 크기를 차별적으로 잘 판단하고 적용할 수 있다면, 아마도 프로 스포츠팀 처럼 개개인의 연봉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은, 과연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차별적인 성과의 크기를 잘 측정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동화된 AI로 일을 빨리하면 성과가 좋은 것인가?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면 성과가 좋은 것인가? 시간은 좀 걸려도 더 큰 임팩트를 만들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일을 묵묵히 하면 성과가 좋은 것인가?
프로 스포츠 처럼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데이터가 되기 전까지는 한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이 데이터가 되는 날도 원하던 원하지 않든 오지 않을까요? 물론 아직은 상상속에만 있지만요. 다음 글에서는 지금 상황에서의 임팩트를 측정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더 구체적으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그동안의 핵심인재에 대한 개념을 조직 차원에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의 조직에서 이탈해서 그 조직보다 더 큰 임팩트를 혼자서 만드는 것이 괜찮지 않다면요.
더불어, 모두가 100배 성과자가 될 수는 없지만, AI를 통해 누구나 과거의 자신보다 1.5배~2배의 생산성(Multiplier)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다수의 구성원에게 '역량 증강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도 함께 수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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