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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레터(2026)

[베프레터 특별호] 자본주의라는 병동: ‘F코드’의 감옥에서 연대의 광장으로

정신질환, 정신적 고통의 의료화

2026.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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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병동: ‘F코드’의 감옥에서 연대의 광장으로

정신의료기관에서 정신질환에 대해 'F코드'로 진료받은 환자 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신의료기관에서 정신질환에 대해 'F코드'로 진료받은 환자 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편집팀] 이 글은 4월 18일에 진행한 <이달의포럼> "자본주의와 정신질환; 누가 나를 '정신병자'로 만드는가?"에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신과 방문은 늘어나는데, 왜 정신건강 문제는 그대로?

“누구나 마음의 감기를 앓을 수 있고, 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대중적 신뢰(97.2%)도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2024년 보건복지부 국민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 이하 보건복지부 조사). 통계에 따르면 정신과에서 진단 및 약물 처방을 받은 환자(WHO 국제질병분류체계에 따른 정신 및 행동장애에 해당하는 ‘F코드’ 환자)는 2024년 282만 명(성인 인구 약 6%)에 달하는데, 2018년 186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수치입니다. 여전히 사회적 불이익이나 편견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정신적 고통을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고 이를 약물로 치료하려는 대중적 분위기가 숫자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지점도 있습니다. 위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는 걱정도 동시에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통계를 보아도 이런 우려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 점이나(매년 증가 추세),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응답자 33.5%가 우울, 불안, 불면 등 5개 이상의 정신적 고통 지표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답한 것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2016년 18.5%, 2022년 23.2%). 이외에 사람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유의미하게 해결되고 있다는 그 어떠한 통계도 보고된 바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현상이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이미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치료가 더욱 대중화된 영국, 미국, 호주,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공통적으로 항우울제 처방 건수가 매년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1980년대 이후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는 정신 장애로 장애 수당을 받는 사람의 수가 35년간 3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정신과 약물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당연히 발병률이 차츰 낮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통계는 오히려 정신과 약물이 정신질환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신과 및 약물치료를 통해서 왜 정신적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걸까요? 진정 우리가 고통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떤 해결방안이 필요할까요?

 

정신질환의 구조적 원인

해결방안을 고민하려면, 일단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생활 스트레스’를 꼽았고(95.1%), 뒤이어 ‘성격적 결함’(89.7%), ‘개인의 의지 부족’(37.3%) 등을 꼽았습니다. 여기서 ‘생활 스트레스’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2024년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평상시 스트레스의 1, 2위 원인으로 ‘직장생활’과 ‘경제문제’가 지적됐습니다. 갑질, 괴롭힘, 감정노동, 기여 대비 낮은 보상, 노동권 무시 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 등이 ‘생활 스트레스’라는 간단한 단어로 요약되는 것입니다.

정신질환 문제의 원인(주요 우울 장애). 보건복지부, 2024 국민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
정신질환 문제의 원인(주요 우울 장애). 보건복지부, 2024 국민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

실제로 여러 국가의 통계를 비교해보면 경제적 불평등과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이 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높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상대적으로 소득불평등이 낮은 일본, 벨기에, 독일 등에 비해 정신질환 비율이 높습니다(그래프 1). 또한, 꼭 정신질환으로 명명되지 않더라도,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같은 소득 분위임에도 지위 불안을 높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그래프 2). 같은 국가 안에서는 소득 분위가 낮을수록 지위 불안이 높게 나타났지만, 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높은 소득 분위에 있는 사람도 지위 불안을 더욱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 1) 소득 불평등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Wilkinson, Richard, and Pickett, Kate, 2021, The Equality Trust.
(그래프 1) 소득 불평등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Wilkinson, Richard, and Pickett, Kate, 2021, The Equality Trust.
  (그래프 2)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같은 소득 분위여도 지위 불안을 높게 느낍니다. Layte, Richard, and Whelan, Christopher T, 2014, Who Feels Inferior? A Test of the Status Anxiety Hypothesis of Social Inequality in Health.  
  (그래프 2)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같은 소득 분위여도 지위 불안을 높게 느낍니다. Layte, Richard, and Whelan, Christopher T, 2014, Who Feels Inferior? A Test of the Status Anxiety Hypothesis of Social Inequality in Health.  

불평등이 심한 체제에서는 경제적 격차가 곧 인간 가치의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상층부는 꼭대기에서 추락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하층부는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모멸감을 겪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자산 및 소득 격차, 주거 불안정이 심각하며 공공사회지출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소비 형태나 보유 자산을 기준으로 집요하게 사람 사이 급을 나누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히고, 본인보다 아래 사람들을 멸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고통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우울과 불안은 구조적 모멸감이 낳은 사회적 질병입니다. 이는 개인이 약물로 ‘적당히’ 치료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주문하는가

우리가 아픈 원인이 ‘사회’에 있기 때문에 해결방안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체제에서 찾아야겠지만,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해법은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은 음지 해소법(술, 담배, 야식, 성적 쾌락, 마약, 도파민 중독, 현실 도피성 '덕질')과 양지 해소법(운동, 숙면, 식단 관리,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이 악화된 상황에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양지 해소법을 수행하기 어려우니, 일단 약물을 통해 일시적으로 심리를 진정시키고 스스로 양지 해소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마음 근육’을 단련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과 긴 통근 시간으로 ‘가처분 시간’이 극도로 부족한 일반 노동자들이 이렇게 규칙적인 루틴을 쉽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돈만 내면 손쉽게 고통을 망각하게 해주는 음지 해소법과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항우울제 처방량이 늘어난 국가치고 정신질환 유병률이 감소한 곳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약물 장기 복용자보다 조기 중단자나 미복용자의 완치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은, 현행 정신과 치료가 고통의 원인인 환경을 덮어버리는 데 급급한 진통제에 불과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질병으로 둔갑하는 사회적 억압

그렇다면 사회가 가하는 억압이 어떻게 개인의 질병으로 둔갑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흔히 사용되는 ‘외모 정병(자신의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작은 결점에도 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태)’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사회적 억압이 “질병화”, “의료화”하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외모를 서열화하는 미디어와 여성혐오적 구조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극심한 불안은, 병원에 가는 순간 ‘신체 이상형태성 장애(BDD)’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고 치료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집니다. "뇌의 좌반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전체 맥락을 보지 못하는 인지 왜곡"이라는 생물학적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 미적 기준을 강요한 사회의 폭력성은 증발하고 오직 환자의 '고장난 뇌'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중안부 길이, 미세한 골격 요소까지 세분화해 외모를 서열화하는 '외모 정병' 관련 미디어 컨텐츠들.
중안부 길이, 미세한 골격 요소까지 세분화해 외모를 서열화하는 '외모 정병' 관련 미디어 컨텐츠들.

이렇게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생물학적 결함으로 보아 치료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정신의학계와 제약업계의 결탁에서 시작됐습니다. 전 세계 정신장애 진단 척도인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은 정기적으로 개정 작업을 거치는데, 1980년대 이후 질병 리스트의 양은 2.5배 증가했습니다(106개 → 265개). DSM에 정신질환으로 등재가 되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물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리스트의 확장은 사실상 의료산업의 ‘상품 목록’의 확장과 같은 뜻이므로, 제약업계는 DSM을 확장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약업계는 DSM 연구 위원들에게 막대한 연구비를 대며 로비했고, 이로 인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사별의 슬픔, 수줍음, 산만함)까지도 모두 질병의 영역으로 포섭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직접 DSM-4판 개정에 참여했던 앨런 프랜시스(Allen J. Frances)는 이러한 ‘진단 인플레이션’을 내부고발했습니다.

  

DSM-4판 개정에 참여했던 앨런 프랜시스는 DSM이 수차례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일시적이고 일상적인 심리 증상들 다수를 정신 질환으로 규정한 결과, 정신 장애의 과잉 진단과 의약품 과잉 처방, 주기적인 정신병의 유행이 초래됐다고 지적합니다.
  DSM-4판 개정에 참여했던 앨런 프랜시스는 DSM이 수차례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일시적이고 일상적인 심리 증상들 다수를 정신 질환으로 규정한 결과, 정신 장애의 과잉 진단과 의약품 과잉 처방, 주기적인 정신병의 유행이 초래됐다고 지적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화이자(Pfizer) 등 거대 제약사가 제작한 간소화된 진단용 환자 체크리스트(PHO-9, GAD-7)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더욱 쉽게 정신병 진단이 가능해지고 약물 소비자를 양산하기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들은 약물이 고통을 해결하는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제약회사 자본의 배만 불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체제의 필요와 공모

이렇게 ‘정신적 고통의 의료화’를 통해 자본이 압도적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국가는 왜 이러한 과잉 의료화를 방치해왔던 것일까요? 사실 방치가 아니라 ‘공모’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한 설명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과 분노는 언제나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은 정신적 고통을 받던 사람들의 분노가 본인들을 겨누지 않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이를 관리하고자 합니다. 사법, 학교, 언론, 의료 등 여러 제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정치적 에너지로 폭발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좌절감과 불만을 갖는 개인들에게 “네가 문제일 뿐, 그러한 감정을 안겨준 사회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은 어찌됐든 사회 질서와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고, 그 규칙 속에서 살아남아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럽다면, 이 역시 ‘개인의 문제’이니 약물로 치료하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이야기 한 ‘정신적 고통의 의료화’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큰 공을 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특히 대두됐던 시기는 바로 1980년대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폭발했던 때입니다. 대처는 기존에 시행해왔던 복지제도가 국민을 국가에 의존하게 해 나태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영국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영국병’ 담론을 유포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체질 개선’을 하겠다며 노조 파괴, 탈규제화, 민영화, 복지 삭감 등 대대적인 노동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와 믿음을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이라는 대처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경쟁과 효율성, 개인의 노력 등을 극도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마인드가 정부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으로 침투했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며 대대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며 대대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영국의 약물 규제기관(MHRA, Medicines and Healthcare products Regulatory Agency)이 제약업계, 시장의 손에 넘어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제약업계는 본인 업계 출신들을 MHRA 집행부 임원 자리에 앉히는 회전문 인사, 연구진에 대한 막대한 로비 등을 통해 규제기관인 MHRA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약물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으면서, 저급 약품의 개발은 가속화되고 부작용은 은폐됐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대처 정권에서 끝나지 않았고, 그 다음 집권한 신노동당 정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탈규제화가 지속되며, 1980년대 이후 영국의 약물 생산량은 17배 증가했고, 약물 소비 역시 400% 증가했습니다. 심지어 현재는 영국 성인 25%가 정신과에서 약물을 처방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신적 고통의 의료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 이데올로기로서 ‘정신적 고통의 의료화’의 작동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통의 원인을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기질, 성향, 화학적 불균형으로 재구성합니다. 예컨대 구직을 단념한 청년들을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아닌, 의지박약인 ‘쉬었음 청년’으로 매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실업이 개인적 결함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함께 강화됩니다. 이외에도 성차별과 독박육아 등의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월경 전 불쾌기분장애(PMDD)로 진단하는 것, 도망치지 않는 또는 도망칠 수 없는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피학성 인격장애’ 진단을 내리는 것, 제도권 교육과 맞지 않는 아동의 행동양식을 주의력결핍장애(ADHD)로 진단하는 것 등이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둘째, 개인이 얼마나 경제적, 생산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척도로 웰빙(Well-being, ‘잘 살고 있는 상태’)을 규정합니다.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감정, 가치, 행동 등에 대해서만 긍정적 가치와 규범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야망, 타인과의 혹독한 경쟁에서 노력해 생존하기, 이를 뒷받침하는 근면성실한 생활습관이나 ‘갓생’ 문화 등을 추구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라는 인식이 유통됩니다. 그러나 사실 성공에 대한 ‘야망’은 강박과 집착, 타인에 대한 도구화와 대상화, 폭력 발산 등 다양한 정신적 불안정성과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신병으로 진단되기보다 성공을 위한 ‘노력’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될 뿐입니다.

 

셋째,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제도, 노동 착취 등에서 이탈한 행동과 감정에 ‘비정상’ 낙인을 찍고,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과거 도망친 흑인 노예에게 붙여진 정신질환 이름인 '드라페토마니아(Drapetomania)', 이성애 가족제도와 동떨어져 과거 정신질환으로 분류됐던 ‘동성애’, 무한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일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성인 ADHD'가 예시입니다.

  1851년 미국 의사 새뮤얼 A. 카트라이트는 노예 제도가 노예들을 삶을 너무나 개선해주기 때문에, '드라페토마니아'라는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만이 탈출을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851년 미국 의사 새뮤얼 A. 카트라이트는 노예 제도가 노예들을 삶을 너무나 개선해주기 때문에, '드라페토마니아'라는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만이 탈출을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모두 기업의 돈벌이와 자본주의 체제 운영에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체제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잠재우거나 ‘질병’ 상태로 취급해 그들의 언어를 빼앗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해결방안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고통이 대부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 안전망이 빈약한 현실에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상인’으로 기능해야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시적으로나마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약물치료가 불필요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기적인 약물치료는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개인적 노력이나 약물치료만이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진정한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정신적 고통의 상당 부분이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분명히 이야기 해야 합니다. 불평등을 만들고 평범한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꿔내기 위한 집단적 투쟁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전입니다. 사회가, 회사가 우리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한다면, 우리를 억지로 그것에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한’ 나를 책망하기보다 ‘약한’ 나를 괴롭히는 사회에 분노를 쏟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모이고, 더 굳건히 연대하며, 고통을 끝없이 생산하는 체제를 향해 함께 싸워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병동에서 온전히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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