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여름휴가 기간, 베프레터도 쉬어갑니다!

베프레터(2026)

[베프레터 특별호] 혐오표현 규제법으로 혐오세력을 막을 수 있을까

혐오표현, 표현의 자유, 검열, 극우

2026.08.06 |
첨부 이미지

혐오표현 규제법으로 혐오세력을 막을 수 있을까

; 검열 vs. 표현의 자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트위터(현 X)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 일베 등 혐오 조장 사이트 폐쇄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트위터(현 X)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 일베 등 혐오 조장 사이트 폐쇄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 연합뉴스

[편집팀] 이 글은 6월 20일에 진행한 <이달의포럼> "혐오표현 규제법으로 혐오세력을 막을 수 있을까"에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혐오표현은 우리 주변을 맴돕니다. 여성을 혐오하는 한국남자들은 여성의 몸과 인격을 조각내어 비하하고 모멸합니다. 국가폭력을 부인하는 극우들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시체팔이, 부정수급자들이라 멸칭하며 그들의 가슴을 헤집어 놓습니다. 대형 교회의 목사들과 그들에게 정신을 바친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죄악으로 만들어 자신들만의 성전을 이어갑니다. 이들은 특정 집단 또는 특정 개인의 속성에 대해 혐오적인 표현을 해 세력을 규합하거나 치부를 은폐하거나 망가진 자존감을 채워보려 애씁니다. 이들의 말과 글이 우리 사회를 계속 헤집어 놓도록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차별적이고 적대적인 곳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혐오를 분출하는 그들의 입과 손가락을 멈추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은 그들이 했거나 앞으로 할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 국가와 대학 등에서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고의성이 있는 혐오표현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고, 독일의 경우 ‘대중선동죄’를 규정해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 선동, 폭력적·자의적 조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홀로코스트 부정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라들의 혐오표현 규제법은 혐오세력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을까요?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 “혐오표현”인가 

기대와 달리 혐오표현 규제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소수자들의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의 입장입니다. 스트로슨은 혐오표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합니다. 사실 혐오표현이라는 규정 자체가 진보좌파들이 논쟁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만든 개념이므로, 사회적으로 매끄럽게 합의되기 어렵습니다. 차별과 혐오를 앞장 서서 선동하는 자들도 이 사회 구성원의 일부이고, 그 정도로 심각한 차별주의자들은 아닐지라도 알게 모르게 차별적 시선을 공유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 다수에게 쉽게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혐오표현”의 기준이 있을까요? 그러한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미 그 사회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멀어져 있는 사회는 아닐까요? 

 책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은 혐오표현에는 반대하지만 그것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강조합니다. 

ⓒ EBS
 책 “혐오: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은 혐오표현에는 반대하지만 그것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강조합니다.  ⓒ EBS

이렇게 혐오표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결국 법이 정해지면 그 위반 여부의 판단을 위해 막대한 재량권이 국가(수사기관과 법원)에 부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과 법원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지배계급입니다. 그들은 사회 특권층이고, 백인, 남성, 고소득자, 엘리트 교육 수혜자, 신자유주의 질서의 생존자이자 지배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차별과 혐오가 가진 끔찍함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수사기관과 법원은 자본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기관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의 자원을 (각자의 출발선부터 다른) 경쟁을 통해 배분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정당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온갖 차별과 혐오를 ‘상식’으로 포장해 동원합니다. 법원과 수사기관이 이런 점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재량권을 사용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질서 위에서 권력과 지위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률을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사기관과 법원의 ‘재량’은 지배계급의 의사에 반하는 사상과 권력과 차별에 도전하는 표현들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악용되기 쉽고, 실제로 여러 사례에서 혐오표현 규제법이 소수의견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사용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매우 엄격한 혐오표현 규제법을 시행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소수 백인에 의한 흑인 등 유색인종 분리 및 차별 정책) 체제 아래에서 그 법의 단속 대상은 흑인의 백인에 대한 반감 표출에 거의 전적으로 집중됐습니다. 싱가포르 법원은 초대 총리 리콴유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린 16세 유튜버에게 혐오표현을 이유로 징역 4주의 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도 1965년 혐오표현 규제법이 시행됐지만, 이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은 백인 경찰관을 저주한 흑인 남성이었습니다. 

  2015년 싱가포르 법원은 초대 총리 리콴유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린 16세 유튜버에게 혐오표현을 이유로 징역 4주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 연합뉴스
  2015년 싱가포르 법원은 초대 총리 리콴유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린 16세 유튜버에게 혐오표현을 이유로 징역 4주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 연합뉴스

촘촘한 규제 설계로 국가의 재량을 제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량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혐오표현의 개념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혐오표현의 개념 범위를 축소하다 보면, 결국 혐오표현 규제법이 별도로 필요 없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 어떤 표현이 “비검열적 조치로 막을 수 없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심각한 해악을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그리고 임박하게 야기하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 원칙(긴급성 원칙)이 존재합니다. 이 정도로 범위를 좁히면, 국가의 재량권 남용에는 물론 제한이 가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남의 대형 교회, 퀴어퍼레이드 장소의 건너편, 광화문 한복판, 대학가와 온라인 곳곳에 침투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처벌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처벌의 범위 문제는 다른 쟁점과도 연결됩니다. 혐오표현이 점잖은” 외피를 뒤집어 썼을 때, 규제법으로는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점잖은 혐오와 차별 발언이 노골적인 발언들보다 더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혐오표현 규제법은 실제로 해악을 크게 줄 수 있는 표현은 제한하지 못하고 비교적 사소한 표현들만을 규제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저속하고 명시적인 혐오표현(ex.“이 깜둥이놈아!”)은 쉽게 혐오표현 규제법의 규제 대상이 될 것입니다. 반면 혐오의 사상과 정서를 담은 그럴듯한 주장(ex.“적극적 조치를 통해 유색인종들을 대학교에 입학시킨다면,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을 과도한 부담이 되는 교육환경에 방치하게 만드는 것이다”)은 혐오의 강도가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규제법의 대상이 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럴듯한 주장은 명시적인 혐오보다 더욱 널리 공공연하게 퍼질 것이기 때문에 피해가 훨씬 크고 심각할 것입니다. 결국 이런 발언들은 처벌이 아닌 논쟁을 통해 대응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혐오표현은 집단 간 권력의 격차(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비장애인-장애인, 부유층-빈곤층 등)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발화집단을 선별해 누군가를 차별할 만한 권력을 가진 특정 집단(주류 집단)에만 법을 적용하는 방식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별적 방법 역시 결국은 국가에게 단속 대상 집단을 선별할 권한이 넘어가게 되므로 자의적 법 집행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사회적 권력은 다층적이고 교차적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일정 영역에서는 약자성이 있더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혐오표현으로 다른 집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데, 때로는 이런 복잡성이 ‘처벌’의 형태로 다뤄지는 것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명백히 부당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혐오표현 규제법의 실제 성적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규제법이 있는 나라들에서도 혐오표현을 억제한다는 법의 본래 목적에 맞는 실질적 효력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혐오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적인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25년 총선에서 득표율 20.8%를 득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합니다. 사실 20세기 초 나치 권력이 독일에서 부흥했을 때에도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 역시 형법, 게이소법(Loi Gayssot; 역사부정죄 법률), 인종차별옹호단체 금지법 등을 통해 혐오표현을 규제하고 실제 극우 정치인들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지만, 2026년 여론조사에서 극우정당(국민전선)은 국민 47%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여러 혐오와 차별 규제 법률이 무색하게, 2026년 5월 이민자 혐오를 내세운 극우파가 런던에서 6만 명을 모아 대중 시위를 일으켰고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돌풍을 일으켜 1,453석(전체 의석의 30%)을 차지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은 ‘역차별’, ‘표현의 자유’, ‘이슬람 극단주의 반대’, ‘내국인 일자리 보호’ 같은 세련된” 표현을 대중 앞에서 구사하는 데 능통합니다.

2025년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8%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습니다. 

AfD는 국경 완전 폐쇄, 망명 절차 엄격화, 유럽연합(EU) 난민협정 거부 등을 약속했습니다. ⓒ AP연합뉴스
2025년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8%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습니다.  AfD는 국경 완전 폐쇄, 망명 절차 엄격화, 유럽연합(EU) 난민협정 거부 등을 약속했습니다. ⓒ AP연합뉴스

이런 모든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규제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혐오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만 하지 않을 뿐 또는 ‘점잖게’ 표현을 바꿀 뿐, 본심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일부는 법으로 검열되는 혐오표현을 일부러 행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순교자’의 지위를 획득하고, 오히려 자신을 비판했던 사람들을 가해자 또는 억압자로 만들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혐오표현 규제법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우려도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혐오표현 규제법 제정을 반대하거나 그 한계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들은,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위한 궁극적 수단으로 “대항표현”의 사용을 주장합니다. 대항표현은 동의하지 않는 메시지에 대항하는 모든 표현, 즉, 유머, 풍자, 심지어 침묵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2012년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White Power(백인 권력)” 행진에 대항한 반대 시위대는 “Wife Power(아내의 힘)”, “White Flour(흰 밀가루)”, “Dwight Power(농구선수 드와이트의 힘)” 등의 유머러스한 피켓으로 상대의 진지함을 희화화해 새로운 회원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혐오표현 발생 시 즉각적인 현장에서의 비판, 피해자에 대한 연대, 혐오 대상이 되는 집단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등도 다양한 비검열적 대응 조치의 사례입니다.    

  2007년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2007년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White Power"를 외치는 네오나치 집회가 열렸을 때, 같이 거리에 나선 반나치 시위대는 "White Flour", "White Flowers", "Wife Power"를 외치며 대항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혐오표현 규제법

한국에서도 혐오에 대한 대응은, 문제적 표현을 하는 커뮤니티나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법적 규제를 우선으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기존 법률을 이용한 형사고소(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에 더해, 혐오표현이 계속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폐쇄하려는 입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혐오표현을 별도로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이런 법률들이 만들어진다면, 한국에서도 위에서 논의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회 중 “자본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라는 문구를 사용한 참가자에게, 또는 여성혐오적 남성에 대해 “역시 한남은 삼일에 한번 패야 한다”라는 미러링 표현을 하는 여성에게, 경찰이 혐오표현 규제법을 적용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구조적인 억압과 폭력에 대항하는 자들의 언어를 빼앗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한국 국가기구의 자의적 법 집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경찰과 법원 멋대로 결정해주는 ‘집시법’은 물론,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도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를 수십 년간 억눌러 왔습니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는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하거나 그러한 목적의 문서, 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소지 등”을 한 경우 ‘찬양고무’죄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일 때 국가보안법 기소가 대폭 늘어나는 것에서도 확인되듯이(예컨대,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사건 기소율은 이전 정부 대비 3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국가보안법 적용은 객관적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기관에게 혐오표현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검열과 처벌의 칼을 한 자루 더 쥐어준다면, 그 칼날의 방향이 지배계급에게 저항하는 비판적 집단이나 소수자들에게 향하게 될 것이 명백합니다. 몇 번의 상징적인 조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법으로 혐오와 차별을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좁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법 앞에서도, 혐오표현은 더 교묘하고 치명적으로 변화하는 동력을 얻을 것입니다. 어차피 이 사회에서 혐오가 힘을 얻는 것은, 불평등하고 팍팍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지배계급은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고, 그들에 대한 혐오를 키워 대중의 주의를 돌리려 합니다. 유럽 극우들이 이민자 혐오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유럽의 제도 정치가 경제 위기에 따른 희생을 강요하며 복지를 후퇴시키고 노동계급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 사건 기소율은 보수 정권 시기 훨씬 높았습니다. 

ⓒ 경향신문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 사건 기소율은 보수 정권 시기 훨씬 높았습니다. ⓒ 경향신문

혐오표현에 대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혐오표현 규제법 제정이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위험하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혐오에 대응해야 할까요?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거나 개인들이 혐오표현에 면역력을 높이도록 훈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대책입니다. 교육과 훈련만으로는 혐오가 재생산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혐오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집단적 활동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혐오 발언, 극우의 망언 등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대중적 캠페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혐오 세력, 극우와의 전투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발언이 ‘상식’이나 ‘다양한 의견 중 하나’처럼 사회에서 유통되도록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대선 TV토론회에서 이루어진 이준석 후보의 여성혐오 발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에 대한 혐오세력의 맞불시위,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조롱, 스타벅스 프로모션이 담은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모욕 등이 있을 때, 가능한 많은 단체와 여론을 모아 발언자의 사과와 처벌-문책을 요구하는 운동을 조직해야 합니다. 설령 그 요구가 달성되지 못하더라도, 이런 캠페인 자체가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혐오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습니다. 혐오세력과 극우에게 ‘낙인’을 찍어 ‘정상성’을 박탈하려 해야, 저들이 눈치라도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캠페인의 반복과 승리야말로, 이 사회의 ‘혐오’에 대한 기준선을 바꾸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예컨대, 앞서 인용한 책의 저자 네이딘 스트로슨)은 혐오선동가들과 직접 대면하거나 공격적인 반대 시위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역효과를 낸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혐오세력이나 극우의 발언을 두고 떠들썩하게 싸우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발언이 더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인 주장입니다. 오히려 혐오표현을 해도 저항이 없다는 것을 경험하면, 혐오세력은 사기가 올라 더욱 거칠게 활동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극우들의 발언력은 진보좌파의 대응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주류 사회 질서에 대한 불신과 대안 부재감으로 확대됩니다. 오히려 기존 사회 질서의 유일한 급진적 대안이 극우나 혐오세력이 아니라 진보좌파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진보좌파가 목소리를 내고 그들에게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혐한시위를 하는 혐오세력들에게 맞서 ‘카운터스’라는 조직이 결성됐고, 혐오세력과 직접 대면하는 혐오반대 집회를 개최해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림동에서 혐중집회가 열리자 이에 대한 맞불집회가 개최되어 혐오세력의 기세를 꺾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반중 혐오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반중 혐오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습니다.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운동과 연결되기

이런 활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혐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세력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광화문과 여의도에 모이는 혐오세력은 보수 교회 또는 그 내부 조직으로 밀접하게 엮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극우 가짜뉴스를 돌려보고, 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조직하는 등 체계적인 활동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도 혐오를 반복하는 사회 구조와 집단에 맞서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혐오를 막아내기 위해 목표를 같이하고 목소리를 맞 실천에 나아갈 조직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직이 추구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운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소수자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모든 투쟁에는 어떤 사회 문제에서 자기 권리를 침해당하는 당사자들의 의식적인 참여와 활동이 필요하며, 그들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대신 얻어진 결과는 결국 상황을 왜곡하거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둘 때, 혐오에 맞선 운동도 더 효과적으로 건설될 수 있고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실천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더 평등하고 안전한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다른 과제는, 혐오에 맞선 운동이 더 넓은 운동, 이 사회 전체의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다양한 운동과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적자 생존의 경쟁, 온갖 이유의 차별, 사회 양극화가 극성인 곳에서 혐오가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평등하게 사회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다양한 인간 집단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밀어내는 것이 일상이라면, 편견과 혐오도 덩달아 활개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 세대 안에서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내집 마련은커녕 예금 이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대,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일자리조차 아무나 얻기 어려운 시대에, 청년 남성들은 자신들의 남성성을 위협하고 조소하는 여성들에게 혐오를 내뿜습니다. 남성들의 백래시에 지친 일부 여성들은 ‘생물학적 여성’만이 진짜 여성이고, 트랜스젠더 여성이 잠재적 성범죄자로서 안전을 위협한다고 매도합니다. 건설산업, 조선산업, 심지어 배달업과 보육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귀국해 부자가 된다고 분노합니다. 진짜 부자들은 주식과 부동산 상승으로 가만히 앉아서 어마어마한 부를 버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나보다 더 잘 살 자격이 있는지 검열하고 비난하고 탓하는 데 매진합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더 나은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며 투쟁하는 세력이 없다면, 갈라치기된 대중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로 이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혐오표현 규제법은 혐오세력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방패는 언제든 지배계급의 손에 의해 피지배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칼날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법이라는 수단에 의존해 혐오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혐오를 멈추려면, 개인으로 분노하는 것을 넘어 단단한 운동과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혐오세력의 기세를 꺾는 단호한 직접 행동을 조직하고, 소수자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합니다. 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 자체에 대한 의문과 투쟁만이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평등하고 해방된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VF]


다가오는 베프 포럼!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  베프레터는 유료 컨텐츠입니다. 구독하시는 분들은 베리프론트가 주최하는 모든 토론 모임에 별도 참가비 없이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 구독자가 아닌 분은 베리프론트의 <이달의 포럼>에만 참가비를 내고 오실 수 있어요.
  • 베프레터를 주변 친구에게 소개해주세요! 소개로 구독하게 된 분, 소개한 구독자 분께 모두 1개월 무료 멤버십을 적용해드립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베프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다른 뉴스레터

© 2026 베프레터

불평등-혐오 없는 사회, 새로운 솔루션을 찾는 활동가-연대자를 위한 레터 veryfront.net

뉴스레터 문의veryfrontofficial@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