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이익을 국민배당금으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국 파업 돌려까기

<한겨레> 5월 13일 ; ‘AI 국민배당금’ 띄운 청 정책실장…“역대급 초과 세수,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이상한 일입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에 나서자, 갑자기 온갖 곳에서 삼성전자 이익은 삼성전자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배분되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경향신문>도, <한겨레>도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은 삼성전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진보적 담론”을 내세웁니다. 이들 언론은 삼성전자 주주나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말고도,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하청 기업 노동자들의 존재를 말합니다. 삼성전자의 성장에는 대규모 세금 혜택과 정부 지원 등 한국 사회 전체의 기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노동운동 활동가도 현대차가 자회사, 손자회사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비용 전가를 통해 배를 불리는 것처럼, 삼성전자 파업에서도 삼성전자를 떠받치는 사외의 여러 노동자들의 존재를 보아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논리로만 따지고보면 이들 주장은 맞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는, 모든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생산으로 얻은 이익은 특정 자본이 사적으로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말들이 강조되는 것은, 그 자체로 공허할 뿐 아니라 현실 투쟁에 부적절하고 위험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전닉스’ 주식에 투자한 지금,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SK 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시기하게 만들고, 귀족 노조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거둔 이익을 모두에게 나누자는 주장이,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단단히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당장 청와대 김용범 실장이 내세운 “국민배당금” 논의도 궁극적으로 파업 반대 여론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이익을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언뜻 진보적인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핵심은 삼성전자의 이익이 배분될 곳은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주주(삼성전자 주식을 다량 구매한 국민연금 포함)와 하청기업과 하청노동자 등이 모두 다같이 이익을 나눠야 하는데, 지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너무 과도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성전자가 “국민 모두”의 기업이라면,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은 삼성전자의 경영 위기를 불러 국민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김민석 국무총리는 “어떤 경우에도 파업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단언했고, 이미 노동절 날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조를 겨냥해 “노조의 과도하고 부당한 요구”,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 보수언론은 정부의 반응에 호응하며, “눈치보지 말고”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파업을 차단하라고까지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좌파 노동운동 세력이 삼성전자 파업의 정당성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다행히 오늘 민주노총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습니다. 일부 좌파 단체들은 ‘조건부 지지’라거나 거의 파업 반대에 가까운 입장을 내며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꾸짖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 하청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투쟁에 나서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이상합니다. 파업은 본래 자기 권리를 위해 하는 것인데,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삼성전자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신 지켜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많은 투쟁에 참여하고 연대하게 만드는 것은 활동가들의 과제이지, 노동자들에게 당연하게 요구하고 기대할 일이 아닙니다. 나아가, 노동자들을 포함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 모두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싸워야만 한다는 진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본인의 투쟁이 있어야 다른 이들의 연대가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기업이든 하청기업이든, 자기의 이익을 위해 투쟁할 줄 아는 노동자들만이 비로소 타인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가진 최대 약점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분명한 목소리로 지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귀족노조 프레임에 위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개혁신당 이준석조차 (파업까지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노동자들 요구에 이공계 인재 육성 등 이유를 내세워 유보 없이 지지를 보내는 마당에, 우리 운동이 지지를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이런 구도가 계속된다면 투쟁하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진보좌파보다 개혁신당 같은 우파를 더 친근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투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도 현재보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의 투쟁이 승리하면, 그 투쟁은 다른 투쟁의 발생과 전진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 뒤이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도 성과급 요구를 시작했습니다. 자본과 보수언론은 핏대를 올리며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요구가 “조선업까지 번”지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노동자들도 성과급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의 성과로 투쟁에 더 적극 나서게 된 것처럼, 삼성전자 노동자들 투쟁이 승리해야 다른 노동자들도 더 투쟁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현실 투쟁의 승패를 떠난 ‘사회적 이익 배분’, ‘계급 연대’에 대한 공상적 논의를 제쳐두고, 삼성전자 노동자 파업을 적극 옹호하고 연대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다른 투쟁을 더 활성화시키고, 그 운동들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실질적으로 건설해 나갈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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