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 : 헬로코니
진짜 고수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보호소 의료봉사 현장에서 인상깊게 남은 한 장면이 있어요. 예민한 고양이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주사기를 꺼내들던 한 원장님의 모습.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차분히 채혈을 허락하던 고양이들. 이미 경기 남부지역에서 ‘고양이 진료’의 고수로 정평이 난 분이더라고요. 어떤 고양이, 어떤 보호자라도 자신 있게 마주한다는 올해 17년차 수의사 경력의 박지희 원장님. 릴레이 코너인 '수의사의 수의사들'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이분을 소개하는데 일말의 망설임이 들지 않았답니다.

Part 1. 누가 뭐래도 고양이
Q. 고양이 병원, 고양이 수의사. 이런 말들이 생겨난 지 10년 내외인 것 같거든요. 수의사 경력만 올해 17년차이신데, 원장님은 언제부터 고양이 진료를 보고 싶으셨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 영향으로 고양이와 친숙했지만,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본과 4학년 때였어요. 학부 과정에서 고양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는데, 우연히 들은 고양이 특강에서 고양이 질환의 신비로움에 매료됐어요. 전염성 복막염이나 칼리시 바이러스 등 강아지와는 다른 메커니즘에 ‘고양이 진료를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고양이 진료만 보는 작은 병원이라 어렵게 들어갔는데, 진료뿐만 아니라 아이들 간호, 보호자 응대까지 고양이 의료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몸으로 익혔어요. 일도 일이지만 보호자들이 고양이에게 쏟는 애정과 시간, 비용들을 보면서 더 몰입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음은 검사 장비도 많고, 고양이 환자들이 더 많이 오는 큰 병원으로 이직을 했어요.
Q. 그래서... 원없이 고양이 진료를 보셨나요?
그땐 고양이 진료를 선호하는 수의사가 많지 않았어요. 덕분에 이직한 병원에서도 고양이 환자는 거의 독차지했죠. 또 원장님이 저를 잘 봐 주셔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주셨어요. 예를 들면 식이 알러지가 있는 고양이를 위해 사슴 농장에 고기를 주문하고, 경동시장에 가서 생식 만드는 기구를 구해다 직접 밥을 만들어 먹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땐 고양이 전용 알러지 사료가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학부생 때 진로 상담하면 교수님께서 고양이 진료만으로는 힘들다고 하셨는데, 병원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고양이 진료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수의사가 되고 싶더라고요. 아무도 깊이 파지않은 분야라면 '내가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고양이 전문 수의사라는 개념이 희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생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Part 2.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고양이
Q. 그럼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는 순간, 언제였어요?
당뇨로 내원했던 고양이가 있었어요. 제 담당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환자였는데, 1년 간 당이 안 잡히는 거예요. 보호자도 병원에 자주 오고, 인슐린을 많이 올리는 것 같았는데 말이죠. 그러다 담당 수의사가 퇴사를 하고 제가 맡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말단비대증’이라는 질환이 의심됐어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서 인슐린 저항성이 오고, 당뇨가 생기는 병이거든요. 워낙 희귀해서 한 번도 진료보지 못한 수의사도 많고, 저희 병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병은 아니에요. 여튼 이전부터 추가검사를 하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관련 논문을 검토해 봤어요. 국내에선 검사가 불가능해 해외 연구소를 찾아 인슐린 유사 성장호르몬 검사를 의뢰했죠.
결과는 확진이었어요.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그래도 긴장감으로 손이 떨리더라고요. 뇌 수술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으니 성장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치료를 했는데, 거짓말처럼 당 수치가 잡히기 시작하는 거예요. 식탐이 너무 세서 보호자 옷을 다 뜯어먹고, 강아지 목줄에 묶여 살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당 수치가 떨어지니 거짓말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한 번은 쓰러져서 왔는데, 저혈당이 온 거더라고요. 그야말로 기쁨의 저혈당이었죠. 그때 원장님께 큰 칭찬을 받았는데요. “야나비는 박 선생이 살렸다. 박 선생 때문에 산 거야.” 라고 하시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인색한 편인데, 그 말씀을 들으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그리고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죠. ‘치료가 안될 때는 반드시 숨겨진 원인이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Q. 괜히 베테랑 포스가 느껴지는 게 아니었네요. 뭔가 눈빛만 봐도 아이들의 상태를 캐치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웬만한 고양이도 이제 어렵지 않으시죠?
오랫동안 고양이 진료를 봐 왔으니 다양한 경험을 했죠. 상태가 안 좋거나 여러 질병을 가진 환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손에 익은 부분도 있지만, 환자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요. 표면적인 증상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진정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요. 언제부턴가 쉽다, 어렵다의 생각은 그다지 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치료에 집중할 뿐이에요.
오히려 보호자가 어려울 때는 있는 것 같아요. 고양이의 상태가 응급에 가까운데, 정작 보호자 분은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계시거나 치료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럴 때 아이가 최근에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지 못해왔을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보이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병원)에 왔다면 치료 의지가 있을 거야'라고 희망을 가져요. 한발 물러서서 진솔하게 소통하다 보면 믿고 따라와 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보호자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도 이 일의 매력인 것 같아요.
Part 3. 앞으로도, 영원히 고양이
Q. 혹시 원장님 마음에 애틋하게 남아있는 아이가 있다면요.
되게 태몽(?) 같은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예전에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고양이를 길에 풀어줄거라고 하더라고요. 엄마 고양이도 없이 혼자 살아내야 할텐데, 너무 슬펐죠. 그런데 며칠 뒤, 길을 가다 풀숲 어디에선가 “야옹, 야옹”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멈춰서서 봤더니 제가 수술한 아이가 저를 보고 서 있는 거예요. 얼굴이 참 귀여웠던 아이라 잊히지 않았죠. 반가운 마음에 “얘, 이리 와 봐”라고 하니까 풀숲에서 텀벙텀벙 뛰어서 제 품에 툭 안기더라고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났어요. 고양이가 저를 기억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 작고 약한 존재가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느껴졌고요. 그 순간, 고양이를 모든 위험과 아픔으로부터 보호하는 수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이, 여전히 제 진료의 기준이에요.

Q. 세상에.. 상상하니 심장이 아파요. 길고양이 성격에, 그것도 수술 후니 예민했을텐데. 강철같은 원장님을 유일하게 녹이는 건, 고양이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고양이라는 존재가 참 그렇더라고요. 고양이 수의사로 살아가며 제 삶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재편됐어요. 언제 닥칠지 모를 응급 상황에 늘 깨어 있어야 하니, 선뜻 어디론가 떠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그저 좋아요. 좋아하는 일로 인해 제 삶이 변화한 것이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양이가 제 삶의 중심이자 전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숙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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