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 헬로코니

고양이 전문 진료가 생소하던 시절, 순전히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고양이 전문 수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박지희 원장. 그녀가 <수의사의 수의사들> 다음 인터뷰이로 추천한 분은 다름 아닌 부산에서 '다솜동물메디컬센터'를 운영 중인 김성언 원장입니다. 부산 최초로 고양이 전문병원을 시작하고, 국내 최초로 ISFM(국제고양이의학협회) 인증을 획득한 곳. 시대를 앞서간 '고양이 맘잘알' 수의사의 과감한 도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Part 1. "고양이가 왜 그럴까" 의문에서 시작한 도전
Q. 2005년에 동물병원을 시작해서, 2013년에 고양이 병원을 따로 만드셨어요.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2005년에 처음 개원했을 때는 여느 병원처럼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진료했죠.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고양이 환자가 눈에 띄게 늘더라고요. 문제는 고양이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어제는 착했던 아이가 오늘은 극도로 예민해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거예요. 캣타워를 설치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요. 곁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불안이 느는 게 보였죠.
문득 '이게 아이들의 성격이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병원 환경 때문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길 때가 있거든요. 지켜보니 대기실에 강아지가 많을 때 고양이들이 극도로 긴장하더라고요. 강아지 냄새와 짖는 소리 자체가 고양이들에게 큰 스트레스였던 거죠. '그렇다면 층을 완전히 분리해서 고양이들 전용 환경을 만들어 주자.'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다솜고양이메디컬센터'입니다.

Q. 당시엔 강아지에 비해 고양이의 내원율이 훨씬 낮았을 텐데, 우려나 걱정은 없으셨나요?
그 시절엔 고양이 진료를 보지 않아도 병원 운영에 아무 지장이 없긴 했어요. 고양이는 워낙 예민해서 다루기 까다로운 데다, 당시엔 고양이 관련 검사나 치료법도 대중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고양이 보호자가 오면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돌려보내는 병원도 많았죠.
하지만 저는 고양이 때문에 다니던 공대까지 포기하고 수의대에 다시 진학했던 터라, 고양이 진료를 놓칠 수가 없었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며 고양이 진료 비율이 높은 병원에서 실무를 익혔거든요. 당시엔 다른 원장님들이 고양이 품종조차 잘 모를 때였으니, 저에게는 고양이 진료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요. 그러다 보니 고양이 보호자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조금씩 났고, 찾아주시는 분들은 꾸준히 찾아주셔서 운영에 대한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실 다른 걸 다 떠나서, 당장 고양이들이 병원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눈에 밟히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장기적으로 봐도 고양이가 병원을 편안하게 느껴야 정기적인 예방 진료가 가능하고, 큰 병도 미리 잡아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기준에서는 마케팅적인 계산보다는 '고양이에게는 이게 맞다'는 확신이 더 앞섰던 판단이었습니다.
Part 2. 고양이 병원의 '급'을 올리다
Q. 그런 판단이 국내 최초의 '고양이 친화병원'까지 이어진 거군요?
2013년에 고양이 병원을 분리하면서 바로 ISFM의 고양이 친화병원 인증을 획득했어요. 단순히 고양이 환자가 많다고 해서 주는 인증이 아니라 고양이 전용 대기 공간, 입원장 규격, 의료 장비, 환자 동선, 소음과 조도 조절, 그리고 의료진의 고양이 친화 교육 이수까지- 고양이가 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전체 시스템을 평가하는 까다로운 인증이죠. 그 당시에는 국내에 이 인증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라 서울에서도 문의 연락이 많이 왔었어요.
실제로 공간을 분리해 보니, 강아지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양이 진료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보호자분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죠. 처음에는 "고양이만 따로 보는 병원이 왜 필요하냐"던 분들도 막상 방문하시면 그 효용을 피부로 느끼셨습니다. “우리 아이가 병원에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처음 봐요”, “동네 병원에 갔다가 아이가 너무 자지러져서 결국 멀리서 다시 찾아왔어요” 같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습니다.

Q. 역시 고양이 맘잘알 수의사답게 탁월한 선구안이 있으셨네요. 인증을 받은 지도 어언 13년이 지났는데,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신 게 있을까요?
지금은 한 건물에 강아지와 고양이 병원이 층만 다르게 있는데요. 이제는 건물 자체를 완전히 분리하려고 합니다. 다솜동물메디컬센터는 앞 건물로 이전하고, 현재 건물 전체를 오롯이 고양이만을 위한 단독 병원으로 리모델링 중입니다. 올해 9월 오픈을 목표로 인테리어 설계에 한창이에요. 이제는 문 앞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게 되죠(웃음).
Part 3. 세 정거장을 무작정 뛰었던 그날처럼
Q. 이전 답변에서 최초에는 수의대가 아니라 공대에 다니셨다고 하셨는데요.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그 시절에는 진로를 깊이 고민하기보다 점수에 맞춘 현실적인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쓰러진 고양이를 목격하고 동물병원을 찾아갔었죠. 당시 수의사 분이 숨이 넘어가는 그 작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셨는데, 그 모습이 저에게 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수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다시 입시를 준비해 수의대에 진학했습니다.

Q. 배움의 욕심이 남다르셨나봐요. 이력도 독특하시거든요. 내과 석사를 마치신 후 박사는 외과로 노선을 변경하셨더라고요.
병원을 개원하고 10년쯤 지나니 임상가로서 진료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심장내과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는데, 현장에서 진료와 수술을 병행하다 보니 제 성향상 외과가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배움에 대한 끝없는 갈증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를 믿고 찾아온 환자 앞에서 무지하거나 부족한 수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과 책임감이 컸어요. 그래서 박사는 외과를 선택했죠. 지금 와서 보니 내과와 외과를 모두 깊이 있게 공부한 덕분에, 환자의 상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입체적인 솔루션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오랜 임상 생활 동안 수많은 환자를 만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특정 환자가 있다기 보다는 늘 제 초심을 붙잡아주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개원 1~2년 차 시절의 일인데요. 그땐 병원 규모도 작았고 미용도 함께 운영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미용 예약을 하신 보호자분께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 문이 아직 안 열려 있다"는 다급한 연락이었죠.
당시 집에서 병원까지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였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세수도 안 한 차림으로 문밖을 나서서 무작정 병원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병원을 믿고 찾아준 보호자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소중한데, 아이와 보호자를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미안함에 속이 타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한참을 뛰고 있는 와중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려 그냥 돌아간다는 말씀이었어요. 그 순간 허탈감에 달리던 것을 멈추고 터벅터벅 걸었죠.
지금도 병원이 커지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을 때면 그날 아침,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던 제 모습을 떠올려요. '나를 믿고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던 그 시절의 절박함과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잡죠. 그렇게 그때의 순수함과 열정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수의사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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