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 혹시 수렵과 채집을 해본 적 있나요? 저는 외갓집이 서해에 있었는데요. 그래서 여름방학에 외할머니댁에 가면 갯벌에 가서 바지락을 캐거나 굴을 따고는 했어요. 한 마리도 낚아본 적은 없지만 바닷가에 나가서 낚시를 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는 항상 얌전히 앉아있질 못해서 혼나잖아요. 시냇물에서 물고기가 다가오길 기다려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물장구를 쳐서 물고기가 다 도망가잖아요. 이번에 본 슈퍼플렉스(SUPERFLEX) 전시에서는 숨죽이고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물장구를 치는 어린이의 마음과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성인의 마음 사이에서 <Vertical Migration>(2021)을 만나고 왔습니다.
너를 해치지 않아
<Verticla Migration>을 만나고 왔는데요. 국제갤러리 3관(K3)에 들어서면 어둠과 함께 불빛이 들어오는 전자제품의 뒷모습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면 스크린 안에 펄럭이고 있는 ‘사이포노포어’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에는 화면 가까이에 와있었어요. 그래서 앞에 가만히 서있자 심해 해파리와 유사한 생명체인 사이포노포어는 관람객 가까이 다가와 머리 위쪽에서 지느러미를 펄럭입니다. 가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는 관람하는 저를 집어삼킬 것 같이 움직여서 한편으로는 식충식물같기도 했어요. 조롱박같은 통 안에 벌레를 유인해 소화시키는 네펜테스같기도 했습니다. 한 2분 가량 가만히 서있으니, 너무 가까워서 무섭기도 했어요. 인터랙티브 작품이니까 움직이면 어떨까 싶어서 멀찍이 물러나 다른 작품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K3 전시장 안에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듯 높은 곳에 작품을 설치해 두었어요. <Interface Painting>(2022)은 유기체가 얽혀있는 듯, 불규칙한 조형미의 화면을 구성했지만 너무 높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고개를 들어서 작품을 봐야한다는 점은 <Vertical Migration>에서 가까이 다가온 사이포노포어를 관찰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보통 갤러리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에는 관람객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춰서 걸죠. 상품이기 때문에 최대한 고객이 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그에 비해 <Interface Painting>은 확실히 천장 가까이 설치되어 있는 “96 x 66 x 6.5cm”정도의 작품이라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나 작품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히는 것이 의도된 설계였겠죠. 이런 관람 동선은 마치 물 속에서 물 위를 바라보는 것 같은 뉘앙스를 자아냈습니다.
다시 <Vertical Migration> 앞에 섰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웠던 해파리를 닮은 사이포노포어는 어느새 멀리 달아나 있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은방울꽃 한 줄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앞에 가만히 서있었지만 별 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처음에는 자꾸만 움직였어요. 10초 지나서 움직이고, 30초 지나서 한 번 더 움직였죠.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비켜서서 다른 작품들을 한번씩 더 보기도 했어요. 그리고나서 다시 인터랙티브 작품 앞에 섰을 때 알았습니다. 가만히 있어야만 사이포노포어가 천천히 다가온다는 것을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인식하면 바로 앞에 있는 관람객이 가만히 있더라도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아주 예민한 ‘센서’라는 생각도 들지만, 입도 뻥긋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속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널 해치지 않아. 이리로 와."
그러나 사이포노포어는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죠. 알아듣는다고 해도 쉽게 다가올 수 없겠죠. 그 순간, 저는 한 마리의 야생 동물과 가만히 서서 교감하는 듯 했습니다. 섬세하게 프로그래밍된 작품이었어요.
데이터가 된 미래
<투자은행 화분(Investment Bank Flowerpots)>(2019)은 조금 더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일 수 있는데요. 핀터레스트 등에서 돌아다니기도 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 건물을 본따서 만든 화분에 식물을 심어서 전시를 해요.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는 ‘시티그룹 건물’을 본뜬 화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인 협죽도”를 심었어요. <투자은행 화분>에 “환각을 유발하는 식물”을 주로 심죠. 예를 들면 “산 페드로 선인장, 페요테 선인장, 마리화나” 등을 심어요. 수직적인 K3와 달리 바깥에 나가면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이 일상 속 아주 작은 오브제로 변환되어 수평적인 세계로 들어와 존재합니다. 그리고 “환각을 유발”하죠. 실제로 금융은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약속일 뿐, 그 무엇도 아니죠.
더욱이 <투자은행 화분>을 둘러싼 벽에는 하얀색으로 그려진 <Chips>(2023-2024)로 가득차 있습니다. 금융 자체도 “환각”이지만, 이제는 자산이 모두 데이터화되죠. 현금 역시 은행에서 숫자와 데이터로 치환됩니다. 그리고 크립토는 더더욱 분산된 데이터 패킷으로 존재하죠. 가상화폐 지갑은 클라우드 속 분산된 인증키와 실물 데이터 칩으로 구성되어 존재합니다. 결국 이진법과 전자기 신호로 구성된 데이터로 우리의 모든 삶은 교환됩니다. 이것이 미래이자 현실이라고 슈퍼플렉스는 간략히 선언합니다. 그 어떤 ‘테크(Tech)’적인 이미지 하나 없이 말이죠.
갤러리를 상징하는 화이트큐브는 방해되는 것들이 모두 삭제된 공간으로 변합니다. 모든 이물질이 배제된 공간같아요. 방호복, 방진, 멸균실같은 것들이죠. 하얀 디스토피아 속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무서워집니다. 그리고 다시금 관람객들과 같이 그 안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나” 역시, 파편화된 데이터 중 0101110 쯤 되는 것 같이 느껴져, 존재가 희석되는 인상을 받습니다.
영구히 파편이 된
전시를 보고 나오자 습한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숨을 아무리 크게 쉬어도 폐를 채 부풀리지 못하는 것 같이 무거운 공기죠. 장마 대신 우기라고 불러야 한다는 기상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언제 내릴지 모르는 기습적 폭우를 걱정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슈퍼플렉스가 이미 보여준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미 LLM에 질문 하나를 할 때마다 수많은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데 말이죠. 역설적으로 갤러리의 쾌적한 환경이야 말로 슈퍼플렉스가 경고하고 있는 어떤 생태학적 절망의 최전선일 수도 있죠.
확률론적 앵무새*가 연인을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 인간의 손에 달려있기는 한 걸까요. 프로그래밍된 사이퍼노포어와 교감하며 심해에 있다고 느끼고, 금융은 이미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나”마저 데이터로 만들어가는 시대, 바로 “피시 앤 칩스(Fish & Chips)”의 시대입니다.
*2020년 발표된 에밀리 M. 벤더(Emily M. Bender), 팀닛 게브루(Timnit Gebru), 안젤리나 맥밀런 메이저(Angelina McMillan-Major), 마가렛 미첼(Margaret Shmitchell)이 공저한 LLM에 대한 논문 제목 "확률론적 앵무새의 위험성데 대하여(On the Dangers of Stochastic Parrots: Can Language Models Be Too Big?)"에서 나온 표현이다. "거대언어모델은 확률적 정보에 따라 방대한 훈련 데이터에서 관찰한 언어 형식의 시퀀스를 우연히 꿰맞추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한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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