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마다 돌아오는 예술인들의 올림픽,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막을 올렸습니다. 물빛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에서 5월 9일부터 11월 26일까지 전 세계 관람객들을 맞이합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 총감독의 죽음과, 전쟁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개막 직전 심사위원단 전원이 사퇴하는 등의 우여곡절 속에서 시작되었어요. 어쩌면 역사상 불안정한 삶과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베니스 비엔날레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초의 아프리카 예술감독 코요 쿠오의 죽음

2024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끝나며 카메룬 출생의 스위스 아트 큐레이터 코요 쿠오가 이어지는 제61회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어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감독이 기획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로, 그동안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었던 남반구 예술과 소수자를 주 무대로 데려오며 북반구, 서구 사회 중심의 기존 예술계에 의식 전환의 메시지를 던지는 아주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큐레이터, 코요 쿠오가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지난 비엔날레 주제의 연속이자 실천이었죠.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 준비가 한창이던 2025년 5월, 개막 1년을 앞두고 코요 쿠오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요 쿠오는 완성까지 함께할 수 없지만, 그녀의 기획 의도를 보존하고 헌신과 열정의 작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주최측과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전시를 그대로 실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시 주제, In Minor Keys
베니스 비엔날레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메인 전시 주제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단조로’ 라는 뜻의 In Minor Keys로, 서구 중심의 크고 요란한 주류 서사(Major Key)에 맞서, 아프리카·남반구·디아스포라의 작고 조용하지만 본질적인 목소리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영혼의 속삭임, 영감의 샘, 재생과 휴식 등 작지만 동시에 위대한 것들에서 발견되는 예술의 힘을 노래합니다.

센트럴 파빌리온 입구에서 Otobong Nkanga 의 파사드 설치작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건물의 네 기둥을 벽돌로 감싸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식물을 심어, 베니스 비엔날레가 진행되는 7개월 동안 덩굴이 건축물을 서서히 뒤덮어가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크레올 정원' 의 의미를 가장 상징적으로 구현한 작업으로 꼽힙니다.
크레올 정원(jardin créole)은 17세기 카리브해 섬들에서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 노예들이 플랜테이션 노동이 끝난 뒤 밤에 몰래 가꾸던 정원입니다. 그들은 아주 좁은 공간에 수십 가지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서로를 보호하며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크레올 정원은 식민지의 야만과 문화 말살에 대한 저항과 회복력을 상징합니다.
"크레올 정원을 보라, 그 작은 땅에 모든 종을 심는다: 아보카도, 레몬, 참마, 사탕수수… 거기에 서른에서 마흔 가지 다른 종이 언덕을 50피트도 안 올라가는 그 땅 위에 있고, 서로를 보호한다. 위대한 원 안에서,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 안에 있다." - Édouard Glissant
In Minor Keys 전시 전체가 크레올 정원과 같습니다. 거대한 서사나 테마로 작가들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실천들이 자율적으로 공존하면서 관객에게 쉼과 성찰의 공간을 제공하는 전시를 지향합니다.

이번 본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작가 요이는 영상 작업 <숨 오케스트라>를 선보입니다. 2021년 뉴욕에서 팬데믹과 번아웃을 겪은 뒤 제주로 이주한 요이 작가는 해녀의 삶과 호흡을 모티브로 작업합니다. 숨을 참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온 뒤 '휘~'하고 내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울려퍼집니다. 해녀의 노동, 관계, 생존과 직결된 숨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경험이 In Minor Keys 전시 주제와 잘 연결됩니다.



분쟁의 상흔을 안고도 여전히 살아있는 Theo Eshetu의 올리브 나무, 케냐 고향 사람들의 관계와 문화를 표현한 Kaloki Nyamai의 패브릭 페인팅부터,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의 씨앗을 도자기로 재현한 Vera Tamari의 설치 작품까지 - 111명의 작가가 작지만 생명력 있는 존재들에 대해 다양한 예술의 언어로 노래합니다.

한국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가 열리는 자르디니 공원에는 각 국가별 파빌리온이 있습니다. 지도에서 한국관을 찾으셨나요? 한국은 자르디니에 지어진 마지막 국가관으로, 1995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관의 주제는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입니다. 최빛나 예술감독과 노혜리, 최고은 작가, 그리고 창작자·활동가로 초청된 5명의 펠로우가 함께 공간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초대 펠로우로는 한강 작가와, 농부-활동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가 참여했습니다.
최빛나 감독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시위 현장에서 이 전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직후부터 6·25, 제주 4·3 항쟁, 5·18 운동 그리고 12·3 비상계엄까지 온갖 정치적 트라우마 속에서도 지켜내고 회복해온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이야기합니다.

최고은 작가의 <메르디앙>은 건물 내외부를 관통하는 동파이프가 특징입니다. 작가는 한국관의 여러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마치 막혀 있는 혈을 뚫는 것 같은 작업을 의도했다고 해요. 동파이프는 옆 일본관까지 이어지며, 두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과감한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노혜리 작가의 <베어링>은 얇고 투명한 오간자 천으로 움막같은 8개의 스테이션 공간을 만듭니다. 각 스테이션은 기억, 애도, 생활 등의 주제를 갖는데, 애도 스테이션에서는 한강 작가의 <장례식>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꿈에서 본 제주 4·3 항쟁의 상처를 표현한 작품으로, 눈밭에 박힌 검게 탄 나무들은 항쟁의 희생자를 상징합니다.
한국 역사의 막힌 혈을 뚫고, 여덟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순간들로 구성된 이번 한국관 비엔날레 전시는, 기획 의도와 참여 작품의 구성 모두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코요 쿠오 감독은 “지금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낮은 주파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며 전시를 통해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존재들, 파편 속에서 회복을 시도하는 이들, 세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은유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기술 발전이 가져온 고용 불안정, 질병에 대한 공포 등 우리 삶을 둘러싼 소란과 불확실성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예술이 주는 작지만 힘있는 속삭임 속에 주변을 둘러보고 내 안의 치유와 재생의 힘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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