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나의 자매들에게 보내는 편지

콜렉티브 야식과낮잠 «불법 대출 서비스: 이사이사이» 작품배달대출서비스, 도시전반

2026.04.28 | 조회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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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표류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온 우편물을 문 앞에서 발견하고 잠시 살펴봅니다. 은색 보냉백과 비닐봉투가 콜라주 된 겉면, 낯선 발신인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콜렉티브 야식과낮잠’의 문자 메시지를 떠올립니다. 거실 가운데에서 벨크로가 부착된 봉투를 열면 빳빳한 이사(짐) 박스가 납작하게 화일첩처럼 들어있습니다. 첫페이지를 펼쳐 사랑(LOVE)이 담긴 봉투를 열어봅니다. 관리비 지로통지서에 붙어있는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매뉴얼이 나옵니다. 매뉴얼대로 차근차근 ‘짐을 풉니다.’

작업이 펼쳐진 거실 풍경이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내 일상의 풍경이 작품 전시장이 되는 비일상적 광경이 생경합니다. 이 ‘짐’더미를 물리적으로 감각하는 경험, 위칫값을 잘못 잡은 더미인 양 가정집 한복판을 차지한 모습이 새롭습니다. 미술 전시의 조건에 반드시 물리적 공간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재하는 물리적 작품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것이 감상의 필요조건인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배달이 전시장소 탐색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이 ‘짐’은 ‘집’과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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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추적-흔적

펼쳐진 작품 속에서 쏟아지는 단어들이 어지럽고, 한편으로는 나의 일상과 더 가깝게 연결된 느낌을 줍니다. 기사, 광고, 리플렛 따위의 스크랩 속에서 이미 도래한 미래를 봅니다. 1번 짐에서 늘어선 장소의 기록, 강남이었다가 호르무즈 해협이었다가 프랑스 파리였다가 미국이거나 이란인 곳들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곳곳에서 정상성과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집을 사고, 물질과 남성을 부르짖습니다. 자본의 공허한 메아리, 정상성을 향한 갈망의 틈새에서 길을 잃은 두 여학생의 손톱, 오물, 우유 같은 것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습니다.

2번 짐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흘러가게 두지 못하는 이 자매들이 건네는 말없는 인삿말을 봅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국가가 외치는 속도에의 강요 속에서 불안한 우리를 봅니다. 누워있지 못하는, 점프하지 못하는, 쉬지 못하는, 극복하지 못하는, 견뎌내지 못하는, 취약한 존재들. 자본주의적이고 낙관적인 기대로 포장된 지나친 잔소리와 참견들을 자제해달라는 간절한 호소. 가부장제와 이성애 규범 속에서 퀴어의 삶에 묻어나는 두려움, 불안, 부담 속에서 이야기를 재건하려는 시도를 엿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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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탐색

3번 짐에서 ‘세상에 외치고 싶다’는 존재가 외칩니다. ‘찌꺼기’와 같은 비가시화 된 지워진 존재들. 소수자들: 여성, 홈리스, 어린이, 팔레스타인과 이란 전쟁의 피해자들을 호명합니다. 4번 짐에서 가장 가까운 곳, 자본으로 동작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내는 서울. 계속 서울에 머무를 수 없어 한때 머물렀던 자리로 낭만화 되는 서울을 구석구석 누빕니다. 자본은 그 어느때보다 성장했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이 욕망하고 더 많이 배제합니다. 마음 속에 품어온 소원 하나를 가만히 얹어두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바라봅니다.

펼쳐놓은 ‘짐’이 ‘집’이 됩니다. 전쟁으로 파손된 건물을 다시 올리고, 홈리스를 밀어내는 적대적 건축을 다시 짓고, 나무 아래 의자를 하나 놓는 마음을 담은 종이로 만든 집입니다. 문득 1번 짐으로 돌아가보면 조각조각난 지역-이동 경로가 갑자기 친숙합니다. 이 집이 놓인, 혹은 놓일 토대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이 이동하는 '집' 위에서 우리는 하나의 지역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확장될 수 있을까요? 이 비정한 서울, 한국,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나요? 당신의, 우리의 사랑이 더 먼 곳까지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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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콜렉티브 야식과낮잠(김소희, 김지윤)의 전시 «불법 대출 서비스: 이사이사이»(2026.4.13-6.28, 작품배달대출서비스, 도시전반) 작품 <짐>(2026, 이사용 단프라 박스, 일상에서 수집한 신문, 광고지, 정치 선전물, 논문, 전시 리플렛 등, 30.5x38cm)의 독후감 형태로 작성되었습니다.

**전시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나의 동료들에게 I am writing to you»(2026.3.20-6.28, Without Frame! W/O F., http://www.iamwritingtoyou.com/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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