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60분동안 사후세계 체험하기

임영주 «올해의 작가상 2025» 국립현대미술관

2025.12.23 | 조회 104 |
0
|
visitor.see의 프로필 이미지

visitor.see

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첨부 이미지

연말, 한 해를 보내며 지인들과 만나 잘 살았는지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다가오는 2026년은 어떻게 해야 더 잘 보낼 수 있을지 새해 목표를 세우고 이야기합니다. 202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는 생각이 든 해였습니다. 챗지피티가 업무에 도입되는 건 놀랍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이 모두 지브리풍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바뀔 때는 좀 충격이었어요. 우리 일상에 기술이 그만큼 깊숙이 들어왔다는 의미겠죠. 내년에는 무엇이 도래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미래에서, 확정된 미래는 어쩌면 유한한 개체로서의 '죽음'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종종 잊고 지내는 그 사실이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고 있을지도요. 우리가 매일 최선을 다하는 건,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가령 삶이 영원하다면 우리는 할일을 계속 유예할 수 있어요. 시간이 아주 많이 주어진다면, 오늘 할 일을 내일 혹은 언젠가 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을테니까요. 결국 잘 사는 일은 잘 죽는 일-과정이기도 합니다.


〈고 故 The Late〉

첨부 이미지

”그러므로(고로), 어쩌면 오래된 친구(고우), 어쩌면 오래된 물건(고물), 어쩌면 이미 늦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사라진 자의 것, 어쩌면 나의 땅/나라(고국), 어쩌면 내가 태어난 곳(고향), 어쩌면 이미 지나간, 어쩌면 몸에 붙은 말, 그러므로 반드시 나의 미래.”

임영주의 신작은 〈고 故 The Late〉(2025)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사운드, 물체, 퍼포먼스, 웹사이트, 책이 전시장 안에 360도로 설치되어 60분간 동시 재생 됩니다. 제목에 사용된 ‘고(故)’라는 단어를 보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죽은 자의 앞에 붙는 단어, ‘이미(the late)’ 죽은 사람(故人)을 가장 먼저 떠올릴 듯합니다. 이미 일어난 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껏해야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며 장례를 치러주는 것 밖에 없겠지만, 작가는 슬그머니 〈고 故 The Late〉를 통해 다른 시도를 해봅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일종의 임사체험이 됩니다. 작가가 말하는 북한산 어딘가에 있다는 헛것들, ‘빈 무덤’에 따라 눕습니다. 일방향으로 흐르는 비디오는 뚝뚝 분절되고 사운드는 이질적인 신호, 잡음, 오래된 가요 따위를 송신합니다. “눈 감으세요.” 귓가에 들리는 소리. “5초 후 당신은 죽습니다.” 숫자가 카운트되고, 내 것인지 네 것인지 모를 비명이 터져나옵니다. 이어지는 소리. “내 손~ 내 발~” 전시장 곳곳에 위칫값을 잘못 잡은 신체들이 벽에서 부분부분 분절된 채 튀어나옵니다.

첨부 이미지

〈미래 흔적 연습〉

첨부 이미지

〈고 故 The Late〉는 반드시 나의 미래가 될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나와 너의 연습 방식이자 기록입니다.죽은 사람이 되어 전시장에 누워봅니다. 죽은 자의 세계를 엿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봅니다. 어쩌면 과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해온 일입니다. 어렸을 때 친구와 '분신사바'를 하던 기억이나 '칼을 입에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다는 미신 같은 것들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퍼포먼스를 작가는 <미래흔적연습>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미래흔적연습’이라고 불렀다. 다급한 마음에 한데 모인 사람들은 수련을 시작했다. 누구는 카메라를 입에 물고 하늘을 보고 누구는 칼을 입에 물고 아래를 보았다.(<칼을 입에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눈이 정면에 두개 달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죽은 인간에 대한 미련, 죽음 이후를 향한 믿음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과거 사후세계의 영달과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당연하게도) 확정된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가령 하느님의 나라가 온다던 종교 단체의 약속, 디지털 세상에서 땅을 구입하고 묘비를 만드는 일 따위로는 (당연하게도) 죽음을 막을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었습니다. 종말에도, 탈출에도 실패하는 우리는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계속해서 실패하는 거겠죠.

첨부 이미지

빈 무덤을 만들기

첨부 이미지

작가가 360도로 작품을 설치한 건 VR기기를 쓴 것 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뜨러뜨리는 행위입니다. 미술관은 그 자체로 비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한데요. 거기에 360도로 상영되는 영상과 곳곳에서 들리는 이질적인 사운드, 신체 조각 따위는 비현실적인 현장을 극대화합니다. 마치 사후세계 같은 시공간에서 60분 동안 체류하고 나면 과장을 좀 보태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사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합니다.

'빈 무덤' 혹은 '빈 공간'은 비어있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소유할 수 없듯이 삶도 오롯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은 덜어내고 비우는 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 가능성이 주는 열린 미래에서부터 옵니다.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의 세계로 가고, 우리는 다시 미련을 가득 안고 삶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임영주가 씌운 360 VR의 시야는 벗겨지지 않고 세상을 360도 보는 렌즈가 됩니다. 

죽음을 연습하는 마음으로 새해의 목표를 다시 한번 다듬어봅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Memento Mori)은 자본주의와 기술만능주의에 포섭되지 않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


김영은, 임영주, 언메이크랩, 김지평

«올해의 작가상 2025»

국립현대미술관

2025.8.29 - 2026.2.1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visitor.see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visitor.see

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