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를 읽으며 자란 세대인데요. 가끔 이 책의 제목을 떠올려보면, 일본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와 칼’의 양면성처럼 때로는 멀게, 때로는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거든요. 한국과 일본의 미술 문화 교류를 공부하다보면 마치 (사이 안좋은) 형제처럼, 한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제법 있어요. 이번에 좋은 기회로 일본의 여러 전시 및 연구 기관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요. 그중 부동의 인기 여행지 1위 오사카와 노잼도시를 벗어나 유잼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아이치현 나고야의 전시와 공간을 소개합니다. 혹시 이번 연휴나 연말에 일본 여행 계획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동아시아 청자의 반짝임
![청자 철반문 꽃병(飛青磁花生), 국보, 원 14세기, 용천요(龍泉窯), 아타카[安宅] 컬렉션](https://cdn.maily.so/du/visitor.see/202510/1759568038169568.jpeg)
이번 여정에서 여러 사진을 인스타 스토리로 슬쩍 소개했는데, 그중 가장 반응과 문의가 많았던 도자기입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일본 국보이자 이번 <청자-동아시아 청자의 반짝임> 전시 포스터의 주인공인 ‘청자 철반문 꽃병(飛青磁花生)’인데요. 일본식 표현으로는 ‘비청자’라고 하는데, 철화 안료를 사용해 갈색 점을 장식무늬로 기면에 흩뿌린 듯한 중국 원~명대의 용천요 청자를 뜻합니다. 이 청자는 14세기 원나라 때, 청자를 만들던 가마인 용천요(龍泉窯)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이름대로 총 스물 세 개의 철점이 병 입구 안쪽부터 그 주변, 병목에서 몸통과 그 아래로 이어지며 자유로운 형태로 그려진 것이 특징입니다. 비청자라는 표현처럼, 청자의 표면에 그려진 갈색 점이 마치 흩날리는 듯 혹은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 아름답습니다.
한편 도자기, 특히 청자의 미묘한 유색은 빛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옛 문헌에서는 ‘가을의 화창한 날 오전 10시경의 햇빛으로’ 감상하기를 추천하기도 했는데요. 이번 방문에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관장 및 책임학예사를 만났는데, 지난 2년간 리모델링을 진행하며 광원과 조명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진열장 위에는 특수 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광덕트를 통해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자연광이 부족한 경우 인공 조명박스를 통해 보조 광원을 사용하고 있고요. 섬세하게 도자기를 비추는 빛과 유색의 아름다움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진열장의 유리 또한 철분이 거의 들어있지 않은 무반사유리를 사용하였습니다.
종합적으로 자연채광의 전시효과를 최대화하여, 덕분에 아름다운 청자의 유색을 전시 내내 최적화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리모델링을 진행한 뒤 작년에 재개장을 했는데요. 광원과 조명 외에도 전시장 입구를 통창으로 아름답게 리모델링했고, 덕분에 양옆으로 강이 흐르는 풍경을 통유리 너머로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 카페도 무척 좋았습니다. 카페에서 소장품을 컨셉으로 선보인 특색있는 음료도 즐길 수 있어요. 미술관이 위치한 나카노시마 지역은 아름다운 공원과 함께 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나카노지마미술관 등이 인근에 위치해 있어 산책과 전시 감상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해드려요.
![청자 양각 국화문 완(青磁陽刻菊花文碗), 고려 12세기, 아타카[安宅] 컬렉션](https://cdn.maily.so/du/visitor.see/202510/1759568096880738.jpeg)
재와 장미 사이의 시간

지도를 조금 옆으로 옮겨 나고야로 이동해봅니다. 나고야와 도자기 하면 아무래도 양식기로 유명한 노리다케의 숲(ノリタケの森)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지금 이 시기에는 6회째를 맞이한 '2025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개막해서 다녀왔어요. 이번 트리엔날레는 최초의 외국인 예술감독으로 사르자 문화재단 이사장인 후르 알 카시미(Hoor Al-Qasimi, b.1980)가 전시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죠. 지난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라는 주제와 함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다가 철거되는 이슈로 국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는데요. 후르 알 카미시는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이번 전시는 모두가 어떤 것도 검열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아티스트들의 주도로 진행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트리엔날레의 주제는 ‘재와 장미 사이의 시간’으로 “전쟁의 참상과 이로 인한 환경파괴의 현장에서 폐허 너머의 희망을 의식”한 아도니스의 시에서 따왔습니다. 전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있어 종말론 혹은 낙관론과 같은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주장 대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합니다. 참여작가 중 하나인 케냐 출신의 왕게시 무투(Wangechi Mutu, b.1972)의 작업에서 인간은 자연과 SF적인 미래를 위협하는 하이브리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3채널 파노라마 애니메이션 <모든 것을 운반한 끝에(2015)>에서 흑인 여성이자 작가 자신은 머리에 커다란 바구니를 올려놓고, 언덕을 오르려고 몸부림칩니다. 점차 거대해지는 바구니에 삼켜져 거대한 덩어리로 변모하는 모습은, 디스토피아적인 환경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합니다.
제가 다녀온 아이치현 도자미술관은 나고야 시내에서 전차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지만, 메인 전시장인 아이치 예술 센터는 시내에 위치해 있어 방문하기 수월할 거에요. 트리엔날레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분이 있다면 세토시 방문도 같이 추천드려요.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매 회마다 주변 지역의 맥락 속에서 주제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번에는 도자기로 유명한 세토 시내 공간과 연계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거든요. 세토시에 가려면 나고야 시내에서 전차로 약 40분 정도 이동해 ‘오와리세토’역에 내리면 됩니다. 역 앞에는 세토시의 도자기 역사를 소개하는 세토구라박물관이 있는데, 근대 거리를 재현해놓은 포토존 촬영도 좋은 체험이 될 거예요. 박물관 아트샵을 비롯해 세토시 곳곳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는 모던한 세토 도자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 가능합니다.

도자기와 현대의 생활

나고야로 드나드는 관문, 추부국제공항 앞에는 도꼬나메 도자기 마을이 있습니다. 출국일 또는 귀국일에 여유가 된다면 한번 들러볼만한 동네인데요. 이 지역에 재미있는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INAX라이브뮤지엄은 일본의 5개 주요 건축자재 및 주거 설비 기업 중 하나인 릭실(LIXIL) 그룹의 프리미엄 도기 브랜드 이낙스(INAX)에서 운영합니다. 내부에는 세계 유수의 타일을 모은 타일박물관, 실제 도꼬나메에서 토관을 생산하던 가마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최근 화장실문화관(トイレの文化館)이 생겨서 가족단위로 방문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일본 고대부터의 현대까지의 변기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가령 사진 속 좌측에 전시된 쇼군이 쓰던 변기에는 옻칠이 되어 있고, 뒤쪽의 막대에 기모노를 걸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에도 후기부터 도입된 수세식 변기는 유럽에서 개발된 것을 응용했고요, 2000년대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변기의 형태가 되었다고 해요.
도꼬나메시에서 추천하는 ‘도자기 산책로’ 코스 중, B코스(4km, 소요시간 약 2시간 30분)를 선택하면 INAX라이브뮤지엄을 포함해 견학이 가능합니다. 박물관에는 이밖에도 도로당고 만들기, 타일로 된 여러 만들기 체험 등이 마련되어 있으니 여유롭게 방문해보셔도 좋을 거에요. 시간이 없다면 짧은 도꼬나메 산책로를 즐길 수 있는 A코스(1.6km, 소요시간 약 1시간)를 추천합니다. 도꼬나메 도자기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흙이 특징으로, 이 흙으로 만든 도자기를 ‘슈데이야끼(朱泥焼)’라고 불렀습니다. 20세기 초 도꼬나메 지역에서는 이 흙을 이용해 찻주전자와 찻잔, 옹기와 소주병, 토관, 벽돌, 타일 등 도자기 제조를 통해 산업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도꼬나메 산책로에서는 벽돌 굴뚝과 가마, 검은 담장의 공장, 도자기 조각을 이용해 만든 언덕길 등 독특한 분위기와 역사를 느낄 수 있어요.
이번 뉴스레터에 소개한 전시 및 공간은 모두 ‘한일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서울공예박물관과 함께 진행한 교류 프로젝트 참여 후 정리하였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열 한개 이상의 기관 중, 추리고 추려서 핵심적인 여행 코스만 모아봤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정을 통해 중근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일본 및 세계의 도자기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산업과 (이후의) 공예, 미술과 공예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이번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주제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재와 장미 사이의 시간처럼 낙관론과 종말론 사이에서 현대 사회의 균형을 생각해보기도 했는데요. 구독자님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아시아의 도자기와 현대 미술에 대한 내용이 이번 레터를 통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풍성한 한가위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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