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에게 미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는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해요. 이론으로만 생각했던 글, 내가 구상했던 플롯, 하나 틀린 것 없다는 어른들 말씀같은 것들이 시각매체로 나타나서 다시 한 번 곱씹게 해주는 역할을 미술이 합니다. 마곡에 있는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 배윤환의 개인전 <딥다이버>는 전시를 중심으로 제 생각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무한히 확장되는 캔버스

구독자 앞에 무한히 늘어나는 캔버스가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이 캔버스는 계속 거대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캔버스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백을 활용하는 거죠. 비워서 채우는 방법은 명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주 큰 붓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떠오르죠. 온 몸에 물감이나 잉크를 바르고 그 위에서 구르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사람의 몸으로 거대한 캔버스를 채울 수도 있죠. 하지만 가장 복잡한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배윤환은 캔버스를 치밀하게 채우는 쪽을 선택합니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관람객과 만나는 작품 중에는 벽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작품들이 많습니다. 전시 소개에서 "시각의 범위를 극대화시키는 파노라마적인 작업을 선보인"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거대한 캔버스를 치밀한 묘사로 채워넣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인내심과 성실함을 계속 증명해내야 합니다.
반대로 20호-50호 정도의 캔버스에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합니다. 그러니 배윤환 작가는 의도적으로 거대한 캔버스에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동물들, 여러가지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관람객의 시각을 압도합니다. 그러면서 한편 작가로서 무한히 늘어나는 캔버스를 작은 요소들로 치밀하게 채워나가는 결심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작가가 하나의 화면에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내재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작가의 세계를 담기에 큰 화면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벽화'를 그리는 것 같습니다.
의심하기: 평범함이라는 기준

괴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를 '괴물'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들은 사회의 기능 측면에서 1인분의 몫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근대가 정신병원을 만들어 낸 것은 사회의 구성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은 산업화에 따른 노동력 제공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화해 새로운 노동력으로 재생산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의 착취가 이루어집니다. 근대의 폭력성은 공장과 도시, 그 공간 내에서의 노동자로서의 역할에서 옵니다. 농업은 인간의 노동력 외에도 기후라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로 인해 생산량이 정해졌다면, 근대화 이후 생산량은 인간의 노동력을 넣은 만큼 생산이 가능하게 변화했습니다.
배윤환 작가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간과 동물은 '노동자'라는 역할에서 동등해집니다. <우린 잘 지내고 있어>는 탄광 안 광부들이 모여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극같습니다. <오아시스-365.3>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 분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하나의 인간으로써 인정받죠.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지적하듯 포식자인 인간, 피식자인 동물의 관계를 역전시키기도 하지만 모두 노동에 참여할 때 동등해진다는 점도 미묘한 부분입니다.
결국 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은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자, 더 나아가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을 수행하지 못하는 자로 규정됩니다. 그들은 이른바 "무임승차론"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받아서는 안되는 존재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두 번 내려쳐>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보면서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형식'인가,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이르게 됩니다. 단순히 일그러진 얼굴 이미지 만으로 그들을 '괴물같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셈이죠. 그러나 이 윤리적 갈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결국에는 서사

배윤환의 "파노라마적" 작품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결국 서사입니다. 인물들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작게 배치하면서 그는 거대한 캔버스 안에 요소들끼리 연결되도록 플롯을 구성합니다. <요람>은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존재들, <오아시스-365.3>에서는 치열한 조업의 순간을 보여주죠. <우린 잘 지내고 있어>에서는 광부들의 소동극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는 메모도 있고, 초현실주의적 장면, 일부러 투시를 무너뜨리는 공간들 같은 것들로 가득하죠.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시각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면서도 관객은 관계를 찾아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배윤환 작가는 서사로 거대한 캔버스를 채워내는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여러 층위의 권력 관계를 노동하는 장면, 어둡게 절제된 바다로 데려와 압축시키듯 평등하게 만들어내죠. 그리고 그 납작해진 수평적 관계 안에서 플롯을 만들어냅니다. <딥 다이버>는 수압으로 프레스된 서사입니다.
배윤환 개인전, 딥다이버Deep Diver
장소: 스페이스K 서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전시기간: ~2025년 11월 9일까지
관람시간: 화-일 10시 ~ 18시 (월요일 휴관)
도슨트: 화-금 14시 1회 / 토-일 11시, 14시, 16시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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