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로 다양성을 수선하기

2025 공예주간, 재니들의 <수선 공예 놀이터>

2025.06.10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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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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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애착가는 옷을 가지고 있나요? 낡았지만 손이 자주 가고 어딘가 변형이 되었어도 자꾸 입게 되는 옷 말이에요. 저는 그런 옷이 몇 가지 있어요. 얇은 간절기용 트렌치 코트, 찢어진 검정색 인조가죽 셔츠, 낡을까봐 함부로 입지 못하는 라임색 셔츠 같은 것들요. 하지만 아무리 아껴입더라도 몸과 가장 맞닿아있다보니 변형이 오죠. 그렇다면 변형된 옷은 버리거나 집에서만 입어야 할까요?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

수리와 수선은 ‘원상복구’가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차를 수리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수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에요. 기본적으로 옷 수선도 자국이 최대한 남지 않게 해주시죠. 혹은 수선이 디자인처럼 보이도록 수선을 해주시거나요. 특히 저는 고등학생 때 교복을 입고 운동을 자주 하다 보니 바지가 자주 튿어지고는 했는데요. 원단이 찢어지면 항상 비슷한 천을 덧대고 누벼주셨어요. 그럼에도 최대한 수선한 자국이 바깥에 티가 나지 않도록 신경써서 수선을 해주셨어요.

그러나 지금은 수선한 자리가 보이도록 만들자고 합니다. 이부러 보색의 실이나 천을 덧댄다던지, 옷 위에 자수로 장식을 하기도 하죠. 창의적인 방법으로 옷을 수선하는 방식으로 수선한 자국을 남기는 거죠. 이러한 방식을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이라고 합니다. 옷을 고쳐서 입는 과정에서 고친 자국을 일부러 더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수공예가 더 돋보이게 됩니다. 물론 원상복구를 하는 다양한 바느질 방법이나 자수도 공예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보이는 수선은 공예를 통해서 개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2025 공예주간, 포틀리에에서 재니들이 개최한 ‘수선 공예 놀이터’ 전시 전경 ⓒ차영우
2025 공예주간, 포틀리에에서 재니들이 개최한 ‘수선 공예 놀이터’ 전시 전경 ⓒ차영우

2025 공예주간 동안 재니들은 ’수선 공예 놀이터’ 전시와 워크숍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보이는 수선을 활용한 수선 공예 작품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전시를 열었죠. 그리고 죽음의 바느질 클럽, 아이론익스, 나무 옆 나무, 플라스틱 팜, 미니프린트&키오스크키오스크와 함께 수선 공예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수선 공예가 단순히 ‘수선’과 ‘공예’의 합성어가 아니라 보이는 수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가시화의 방법

재니들의 수선 공예 작품, 유니클로 셔츠에 과채류를 수놓았다 ⓒ차영우
재니들의 수선 공예 작품, 유니클로 셔츠에 과채류를 수놓았다 ⓒ차영우

보이는 공예는 아시아 지역의 공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일본의 공예에서 그 기원을 많이 찾죠. 깨진 도자기를 이어붙이는 킨츠키 공법과 옷감을 보강하는 자수법인 사시코입니다. 킨츠키는 15세기, 일본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아끼던 찻잔을 중국에 수리를 위해 보냈으나 철심을 박아서 온 것에 실망하여 일본의 장인들에게 수선을 시킨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끼는 물건을 더욱 오래 쓰고자 하는 마음, 16세기 이전 일본에서의 찻잔의 가치를 생각하면 킨츠키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성 하나에 달하는 찻잔이 깨졌다고 쉽게 버릴 수는 없었겠죠.

사시코는 천을 자수로 보강하는 방식입니다. 일본어로 ‘작은 찌르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사시코 자수 역시 일본에서 유래한 자수로 농민, 어부, 서민 계층이 옷감을 보강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수를 놓고 모양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특히 추운 지방에서 여러 겹의 옷감을 겹쳐 사시코 자수를 놓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옷감을 누비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죠. 지금은 생산되는 옷, 판매되는 옷보다 의류 폐기물의 양이 더 많지만 과거에는 옷감을 많이 생산하는 것, 옷을 잘 수선하는 것이 곧 공동체의 힘이었죠. 한국에서 규방 공예는 단순히 ’방에서 일어나는 수공예’가 아니라 한 마을, 한 공동체의 생산력을 보여주는 힘이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보이는 수선은 체제에 저항합니다. 과거에는 규방 공예와 베틀 짜기가 공동체의 생산성을 보여줄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면화 공장을 비롯한 공장이 그 생산성을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수선은 보이지 않게 된 의류 생산의 밸류체인을 가시화합니다. 그리고 수공예가 여전히 생산성에 기여했던 것임을 보여줍니다. 


흉터를 당당히 내보일 것

보이는 수선은 정상성을 전복시킵니다. 원상복구는 본래 모습이 곧 정상적이라는 것을 상정한 개념입니다. 즉, 손상된 것은 가치가 하락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수리된 자국을 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정상성의 가치는 한 번이라도 흠집이 난 것들의 가치를 크게 하락시키죠. 이러한 생각은 중고거래에서 크게 나타납니다. 한 번이라도 열어봤다면 ’미개봉’이 아니게 되죠. 기능보다 흠집에 집중하게 됩니다. 아무리 기능이 동일하다고 해도 개봉된 순간 가치가 하락합니다.

펑크룩 기반으로 패치워크 작업을 선보이는 아이론익스(Eyeronxc)의 작업들 ⓒ차영우
펑크룩 기반으로 패치워크 작업을 선보이는 아이론익스(Eyeronxc)의 작업들 ⓒ차영우

재니들이 2025 공예주간에서 선보인 보이는 수선은 이러한 개념을 전복시킵니다. 오히려 흠집이 난 것들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통해서 말이죠. 아이론익스는 “너희의 쓰레기가 나의 보물이야”라고 말하며 찢어진 옷의 원단을 통해 패치워크를 만듭니다. 펑크룩에서 기존의 정립된 질서에 반항하는 패치워크 스타일이야 말로 기존의 정상성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보이는 수선을 내세우죠. 

보이는 수선은 비단 옷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타투와 비슷해요. 타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권은 흉터를 성장의 흔적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성인이 되기 위해서 일부러 흉터를 내거나 신체 변형을 가하죠. 이러한 방식으로 역경을 극복했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원상복구가 중요한 문화권에서는 온전한 형태로 성인이 되는 것을 더 반깁니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오히려 타투를 금기시하고는 합니다. 타투는 몸에 하는 보이는 수선이 되고는 합니다.


다양성을 엮어내기

보이는 수선을 통해 우리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당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간에 우리 공동체와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상복구‘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앞으로의 공예는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수선 공예를 통해 새로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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