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행운의 일곱 번째 음악단어편지네요! 저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입니다.
며칠 전 북 펀딩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함께 주문한 ‘음반은 아니지만 음반으로 분류돼 음반 주문 시 할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넘기는 용도로 끼워 넣은 엽서’는 조심스럽게 택배 상자에 담겨 왔는데, 책은 상자와 별개로 내지가 에어캡으로 된 비닐봉투에 담겨 왔더라고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비닐봉투를 뜯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책의 위아래 가장자리가 구겨져 있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1) 북 펀딩으로 구입해 결제를 한 뒤 오랫동안 기다렸고 (2) 함께 온 레드벨벳 엽서는 박스에 담겨 구김 하나 없이 왔는데 책만 구겨졌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하고 (3) 주문한 쇼핑몰은 교환 요청을 하면 분명 구겨지지 않은 제품으로 교환해줄 거라는 알고 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보는 데 별 지장 없는걸요. 제 방구석에 점점 부피를 늘려가고 있는, 아직 보지 않았으며 언제 볼지 알 수 없는 책의 무덤에나 올려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근데 그보다 큰 이유가 있었어요. 책을 살피다 우연히 제 발등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발등은 흉터로 가득합니다. 지난겨울 불의에 맞서 17 대 1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다 다친 상처의 흔적…은 아니고 그냥 발등에 달라붙는 슬리퍼를 신다 생긴 상처예요.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 주었으면 아물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흉하게 흉이 졌습니다. 상처가 아물며 생간 딱지를 떼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한 덕분에 흉터가 더 깊어지기도 했고요. 그렇게 놔둬 생긴 상처가 몸에 적잖이 있어요. 그만큼 제가 저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다는 얘기겠지요. 어릴 때 생긴 상처는 알아서 아물기라도 하던데 이제 생기는 상처는 아물지도 않더라고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상처가 생겨도 그냥 놔두고, 병원도 잘 안 가고. 정말 자신을 돌보는 데 있어 엉망인 사람이네요. (남의 이야기처럼 문장을 맺는 무책임함까지!)
얼마 전 같은 계열의 일을 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 우리는 일만 하고 자신을 잘 못 돌보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그 이유로 어렸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 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아닐까라 말하며 저도 그렇지 않냐 묻더라고요. 저도 어렸을 때 여러 일로 가정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거든요. 그게 지금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겠냐는 거였어요. 음. 무조건 어렸을 때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의 저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지잖아요. 만약 그렇게 어린 시절 받은 영향으로 지금의 제가 되었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 받는 영향을 통해서도 저는 새로운 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읽은 심리학책의 연구 결과와는 관계없이 저는 이렇게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뉴스레터를 쓰는 시기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 역시 이번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 스트레스 해소 루틴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술을 마시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Bojack Horseman)>을 보는 거죠. 애니메이션을 보다 제가 캐릭터 중 다이앤 응우옌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아 갑자기 그의 이미지와 글을 검색해 봤어요. 그러다 발견한 글이 아래 ‘친애하는 Diane Nguyen, 한 작가에서 다른 작가로’입니다. 번역기로 번역된 글이라 파악하기 조금 어려운 문장이 조금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제외하고 결말만 요약하면 이런 글이에요.
사람들은 흔히 ‘고문받은 예술가’의 환상을 갖는다. 실비아 플러스, 버지니아 울프, 반 고흐, 커트 코베인 등. 트라우마와 고통은 예술가를 통해 최고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와 같은 신화는 한편으로 그와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믿는 후세대 예술가의 목숨을 희생해왔다. 다이앤은 트라우마가 당신과 당신의 예술을 정의하게 할 것이라는 신화를 깨뜨린다.
(보지 않은 분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중간 내용은 생략합니다.)
“당신의 역사는 많은 면에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자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당신은 그것이 당신 또는 당신의 예술을 정의하게 할 필요는 없다.”
눈물 날 만큼 위로가 되는 문장입니다. 그러니 저도 힘들었고 어리석었던 과거의 저로 저를 정의하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를 좀 더 돌보고 지금보다 더 자신을 사랑해야겠죠? 흉터가 생기면 후시딘도 바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왠지 다음 뉴스레터 제목은 ‘미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
오늘 소개할 밴드의 자료를 찾다가 어느 음악 블로그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어요. “아무튼 나는 그들에게 뭔가 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혹은 선망이랄까, 동경이랄까. 그것은 말로 표현하자면 잘 못 하겠지만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즉 90년대에 세인트 에티엔을 들은 사람들에 대한 환상.”. 네. 바로 여기 등장하는 세인트 에티엔이 오늘 소개할 밴드입니다. 세인트 에티엔은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자 영국의 신스팝 밴드 이름입니다. 그리고 어느 풋볼팀의 이름이기도 했다는데요. 팀명은 여기서 따왔다고 해요. 그들의 곡 중 오늘의 주제에 맞춰 ’Hug My Soul’이라는 곡을 선곡하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사를 살펴보다 실소했어요.
무슨 생각이야?
소년, 무슨 꿈을 꾸고 있어? 상관없어
나는 너를 찾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녀
이름을 외쳐 나는 너를 붙잡고 싶어
나는 너의 팔에 안기기 위해 여기 있을 거야
내 영혼을 안고 싶지 않아? 내가 여기 있을게
열등감을 느끼며 환상을 품기엔 그냥 흔한 돌봄 받고 싶어 하는 미성숙한 남성 위로용 곡을 부르는 밴드잖아요? 게다가 오늘 ‘돌봄’이란 주제로 글을 쓰며 제가 선곡한 곡이 이 노래라는 게 우스워 좀 웃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대사를 패러디해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봐” 라 외치고 싶은 심정이네요. 오늘의 정신없는 뉴스레터는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마무리할게요. 그래도 저는 이 노래를 좋아하고 구독자님과 함께 듣고 싶거든요. 🙃 다음주에 꼭 ‘미룸’이 아닌 단어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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