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네 번째 음악단어편지를 보내요. 저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입니다.
평소 동료라는 단어를 자주 쓰시나요? 저는 쓸 일이 없어요. 동료가 없거나 동료라 생각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겠죠. 1인 자영업자로 일하고 프리랜서 일을 하며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 내리고 혼자 일을 하거든요. 사전에서 동료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이렇더군요.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그 아래 오픈 사전에 이와 같은 뜻도 있는데 재밌어 옮겨 봅니다. ‘같은 성문을 사용하고 햇불을 같이 들고 있는 사람’. 여기서 동료라는 표현은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 쓰인 거로 보이는데요. 지금은 전쟁이 빈번한 시기가 아니고 저는 사람을 편으로 나눠 구분하지 않습니다. 스포츠관람을 비롯한 편을 나눠 싸우는 대부분의 일에 가담하지 않고요. 네, 확실히 저는 동료라는 말을 쓸 일 없는 사람이네요.
동료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오늘의 단어로 고른 이유는 최근 <드래곤 퀘스트>라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드래곤 퀘스트>는 1986년 첫 시리즈가 발표되고 현재는 11편까지 발매된 일본의 대표 RPG 게임입니다. 저는 최근작인 11편을 처음으로 이 게임을 해보게 됐어요. 게임을 해보진 않았지만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동료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동료의 가치는 주로 소년 만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곤 하죠. 가장 히트한 소년 만화 중 하나인 <원피스>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도 “너 내 동료가 돼라”고요. 일본의 대표적인 소년 만화 잡지 <소년 점프>의 슬로건도 ‘우정, 노력, 승리’입니다. 드래곤볼을 그린 도리야마 아키라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드래곤 퀘스트>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동료를 중요한 가치로 그리고 있을 거라 봅니다.
게임을 시작하고 동료라는 말을 쓸 일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상으로나마 동료가 생긴다는 게 생각 보다 두근거렸습니다. 크, 드디어 내게도 동료가! 근데 막상 게임을 해보니 동료를 모으는 게 영 거추장스럽고 몰입이 깨지는 거예요. <드래곤 퀘스트 11>의 초반부 내용은 전형적인 환타지물의 도입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범한 소년이 알고 보니 영웅이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거죠. 그럼 빨리 세상을 구해야 할 텐데, 자기 일도 바빠 죽겠는데 자꾸 일과 상관없는 부탁을 받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겁니다. 아니 무슨 영웅이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냐고요. 어제까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이 갑자기 세상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오지랖인 것 같긴 합니다만. 자꾸 흐름이 깨지는 것 같아 게임을 하다 멈추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제게는 총 4명의 동료가 생겼습니다. 아직 얻게 될 동료가 몇 명 더 남은 거로 알고 있어요. 아니, 이래서 세상은 언제 구하려고.
근데 게임 시스템 중에 재밌는 게 있더라고요. 게임 중 동료에게 말을 걸 수 있어요. 그럼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동료가 대답을 해 줍니다. 그중에는 ‘자 이제 빨리 다음 목표 ㅇㅇ을 향해 가자고’ 같은 게임 진행에 도움이 되는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게임 진행과는 별 상관없는 잡담도 있어요. 근데 이 잡담을 듣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방금 생각난 김에 동료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중 베로니카가 “우와~, 이것 좀 봐, 하박국! 이 마을은 큰 건물 안에 하나의 마을이 들어있어! 마치 마을 전체가 거대한 요새같아! 이렇게 되어 있으면 비 걱정이 없으니까 널어놓은 빨래가 젖을 걱정도 없겠어”라고 대답하네요. 세상을 구하면서도 널어놓은 빨래가 젖을 걱정이 없는 마을 구조를 생각하는 베로니카가 너무 귀엽지 않나요?
게임을 하며 동료란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오지랖을 부려 돕고, 지구를 구하는 순간에도 가볍게 농담을 건네는 그런 사이가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게도 동료라 할 수 있는 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고요. 세상을 구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매일 임박하는 마감의 순간 속에서도 단어와 음악을 골라 뉴스레터를 쓰고 보내는 것 또한 동료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 게 아닐까요? 비록 볼 수 없는 사이라도 뉴스레터를 전하는 동안 만큼은 동료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구독자님과 서로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의 음악은 롱 로스트(The Long Lost)의 ‘Amiss’입니다. 롱 로스트는 로라 달링턴(Laura Darlington)과 데들리우스(Daedelus)로 구성된 부부 듀오 밴드예요. 고등학교 때 학교의 오케스트라 멤버와 댄스 클럽의 파트너로 함께 활동하다 헤어진 후 몇 년 후 다시 만나 팀을 결성하고 결혼 후 10년 만에 만든 앨범이 바로 롱 로스트의 <The Long Lost>입니다. 제 뉴스레터를 읽는 분 중에는 비혼주의인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저는 여전히 제가 제대로 가져 보지 못한 건강한 가정을 향한 선망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사이좋은 부부를 볼 때마다 좋은 동료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영기획에는 오랜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날 부부가 되고 이후 밴드를 결성해 영기획에서 음반과 책을 발매한 경우도 있어요. 우민과 태성으로 구성된 골든두들(goldendoodle)은 태성의 소설과 함께 만든 음악과 낭독으로 구성된 포맷의 음반을 발매해온 팀입니다. 그중에서 음악 ‘똠양꿍 선셋’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공유합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하늘이 정말 똠얌꿍 색이지 않나요? 이 곡에서 똠얌꿍은 이별의 상징이긴 합니다만.
바다가 보이는 조그마한 레스토랑
떠도는 향기는 붉은 빛에 물드네
두 사람 사이에 놓여진 요리는
처음 만난 여름날 뜨거운 공기의 맛
헤어진다는 실감은 없지만
이별은 확실히 조금씩 다가오네
시큼하고 매운 수프처럼
Tom Yum Goong sunset
어두워 질 때까지
마지막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Tom Yum Goong universe
펼쳐지는 이 세계를
입 속에 머금고
눈물을 감춰요
가끔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요
그만큼의 거리로
서로를 바라봐요
낡은 화물선이
먼 바다로 떠나듯
먼 훗날의 꿈을
기대하고 싶어요
각자 다른
시간 속에 멈춰버린
거대한 도시
성들 사이에
그대와 나 만난 기적처럼
Tom Yum Goong sunset
추억의 거리마다
머나먼 남국의
황혼이 내려
Tom Yum Goong universe
펼쳐지는 이 세계를
입 속에 머금고
눈물을 감춰요
Tom Yum Goong sunset
추억의 거리마다
머나먼 남국의
황혼이 내려
Tom Yum Goong universe
펼쳐지는 이 세계를
입 속에 머금고
눈물을 감춰요
이번 주 목요일에는 영기획에서 Room306의 세 번째 앨범 <술과 꽃>에 실릴 '외면'이 리드 싱글로 발매됩니다. 다음 주 음악단어편지는 게스트와 함께 할 것 같아요. 한 주 동안 구독자님이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이번 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안녕!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