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모순 속에 피어난 사랑

인생은 '모순'

2025.04.09 | 조회 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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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중일기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것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는데, 회사 내에 벚꽃이 조금씩 그 예쁜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지난 번 레터에서는 4월부터 30도가 넘어가는 여름이 오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아주 알맞게 따뜻한 봄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3월을 책임졌던 드라마.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왔는데요. 정말 오랜만에 재밌게 본 드라마라서 구독자님에게 편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너무 슬퍼서 한 화 넘기기가 힘들었던 명작이었습니다. 특히나 넋 놓고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와 임상춘 작가의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들이 걸작인 작품이었어요.

 사나이의 마음을 울린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텐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드라마를 안 본 분들께서는 참고 부탁드릴게요. 

 

세 여자의 시대, 세 가지 삶


광례 → 애순 → 금명, 각자의 시대를 짊어진 여성들의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시대의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낸 세 여성의 인생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광례→애순→금명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여성들이 감당해온 삶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광례(1932년생) - 강인함, 치열함


"몸이 고되면 마음이 엄살 못 해."
"살민 살아진다." 
"애순아, 엄마가 가난하지, 니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오애순의 어머니이자 모든 시청자들의 눈물버튼이었던 전광례(염혜란)의 삶은 강인함,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광례만 나오면 눈물이...) 어깨는 굽고 손은 거칠지만, 딸 앞에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광례 남편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데, 함께 일하는 잠녀들의 남편들이 등장하지 않는 점. 애순의 출생년도가 1951년이고,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에서 1948년에 발생한 제주 4/3사건에 따른 희생을 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광례는 말수가 적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의 짧고 단단한 대사에는 시대의 고통과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녀가 짊어진 ‘십자가’는 단지 한 가족의 생계를 넘어서, 해방 직후 서민들의 고달픈 삶과 한국 여성 노동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광례는 결국 해녀 물질로 인한 과로와 숨병(잠수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극 중에서 그녀가 병을 시름시름 앓거나 약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그 또한 연출의 의도가 아닐까 싶어요. 끝까지 강인하고 당당하게 살아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광례의 존재를 더욱 빛 발하게 하는 것이죠.

 그녀가 남긴 말과 행동은 애순의 삶 깊숙이 자리잡아,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는 뿌리이자 지지대가 됩니다.

 

애순(1951년생) - 정체성, 투쟁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데 결혼부터 해야 하는 거야?”
“사는 게 뭐든, 나는 나로 살고 싶어.”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애순(아이유/문소리)은 책을 좋아하고, 시를 쓰며 감성을 키워가던 문학소녀였어요. 하지만 그녀가 살아가던 시대는 여성의 꿈보다는 가정과 결혼, 감정보다 인내, 능력보다 희생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였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은 늘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로 먼저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애순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이어간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 광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현실을 살아가던 애순은 돈 많은 부상길과의 결혼을 고민하지만 이내 관식과의 순수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애순이 얼마나 자기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하지만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곧 생계를 위한 고단한 하루하루로 이어졌어요.

 시장을 오가며 오징어를 손질하고, 자식들을 돌보며, 그녀는 문학소녀에서 억척스러운 어머니로 변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순은 결코 자신을 놓지 않았어요. 힘든 삶 속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고 흔들렸던 청년기, 치열하고 고단하게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중년기를 지나 마침내 노년이 된 애순은 본인의 오랜 꿈이자 관식의 약속이었던 시인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순간들을 보낸 애순의 삶은 딸 금명에게도 전해집니다. '상을 엎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애순의 말처럼 금명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귀한 유산을 얻게 되죠.

 

금명 (1968년생) - 자유와 죄책감


“나는 다 가질 수 있는 세상에 사는데, 왜 이렇게 자꾸 길을 잃는 기분이야?”
“엄마는 나 때보다 힘들게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하지…”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광례처럼 오늘 하루를 걱정하며 살지 않아도 되고, 애순처럼 꿈을 접지 않아도 되는, 금명은 비교적 많은 자유와 기회를 보장받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그녀에게 기쁨이자 동시에 무거운 죄책감이 되기도 합니다.

 광례와 애순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자유로운 삶, 그 속에서 금명은 오히려 혼란과 불안을 더 크게 느낍니다. 꿈을 응원받고, 서울대라는 상징적인 배움의 장에도 들어갔지만, 도시화와 산업화가 낳은 빈부격차,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배경의 차이 속에서 왠지 모를 위축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죠.

주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할수록 그녀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원망, 미안함과 죄책감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함께 품게 됩니다. 그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금명의 대사는 아마도 이것일 거예요.

“더 멀리 뛰고 싶을수록, 죄책감이 발목을 잡아.”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그 죄책감은 때로 그녀의 말에 가시를 돋히고, 그 가시는 곧장 부모에게 향합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날아간 말들이 다시 가슴을 찌를 때, 금명은 또 한 번 미안함에 주저앉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갑니다. IMF 시대 실직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흔들리기도 하지만, 애순에게서 물려받은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고민과 질문을 놓지 않았기에 결국 인터넷 강의 사업에 성공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갑니다.

 

시대를 잇고, 사람을 잇는 건, 결국 사랑


 세 명의 여자. 세 개의 삶.

 다른 듯 닮아 있는 세 명의 여자와 시대를 잇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일 거에요. 이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는 각기 달랐지만, 그 밑바탕에는 늘 하나가 있었던 거죠. 바로 '가족과 사랑'입니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저는 남자이며, 나고 자란 시대도 다르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 인물 중에는 금명이 가장 가까운 시대여서 그런지 금명의 삶에 많은 공감이 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금명이 느낀 죄책감이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시대는 발전하고, 삶은 풍족해지기에 부모님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 외에 왠지 모를 미안함들을 느꼈던 것 같아요.

 좋은 곳에 여행을 가거나, 비싼 음식들을 먹을 때죠.

 때때로 과한 부담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금명의 스토리를 보며 아 이게 나만 느낀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어떤 브런치 작가는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죄책감은 사랑의 다른 유형이다. 사랑하면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아픈 순간마다 내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에 곰팡이가 쓸어 있는 것을 보고 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본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서 불완전한 사랑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으로 살고, 사랑을 놓을 수 없다.

 그러니 죄책감은 더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잘 사랑할 수 있다. 라고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이 드라마를 보며, 지금의 차가운 현실 속에서 정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온갖 범죄와 불신, 혼란으로 가득한 이 대한민국에서 가족 간의 사랑,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작지만 깊은 온기를 나누는 이 드라마 속 장면들은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처럼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애순과 관식의 독립을 몰래 도운 할머니, 할아버지, 동명을 잃고 지쳐 있던 애순에게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보내주던 이웃들입니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너무도 따뜻했고, 말보다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서툴고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이웃들의 모습은 요즘 보기 힘든 ‘사라진 정(情)’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임상춘 작가님의 전작, 《동백꽃 필 무렵》도 정말 인상 깊게 봤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작가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애정을 참 감동적으로, 잔잔하게 잘 그려내는 분이라는걸요.

 

인생은 '모순'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이 작품은 제가 재작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양귀자님의 '모순'과 참 닮아 있습니다. 

 모순에서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어머니의 쌍둥이인 이모는 여유로운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죠. 그런데 안정적인 삶을 살던 이모는 우여곡절 투성인 어머니의 삶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안정적이고, 걱정 하나 없을 것 같던 이모의 삶이 실은 매우 불행했다는 거죠. 인생은 모순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 모순의 배경은 '사랑'일 것입니다. 그 불행은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죠.

 애순과 영란(부상길의 아내)의 삶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애순은 부상길을 통해 문학소녀의 꿈에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결국 관식을 택했고, 불행할 것만 같았던 애순의 삶은 풍족하진 않아도 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 영란은 몇 십 년간 지옥같은 결혼생활을 이어가죠.

 이런 애순의 영향을 받은 금명도 물질보단 사랑을 선택하고요.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그래서 결국, 인생은 ‘모순’이라는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겉보기에 평탄한 삶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고, 파란만장한 인생이 꼭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순의 배경에는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부족했기에 고통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는 날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갖고 사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진짜 인생을 결정짓는다."

 양귀자 작가와 임상춘 작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어요.

 

폭싹 속았수다 T.M.I


#1. 폭싹 속았수다의 뜻은 제주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2. 임상춘 작가는 필명이며 신상을 밝히지 않은 채 활동하고 있다. (30대 여성으로 추정)

#3. 애순의 삼남 '동명'은 단순히 이름 자체가 아니라 제주 4.3사건 당시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동명)'을 상징하는 연출이라는 추측도 있다.

#4. 외국 제목은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인생이 당신에게 귤을 줄 때)"이며, 이는 미국의 유명한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에서 온 말로 삶이 당신에게 레몬(신 맛)을 줄 때,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는 뜻(시련과 역경에 주저앉지 말고 긍정적인 힘으로 극복하라)을 제주의 특산물인 귤로 바꾼 것이다.

#5. 영범의 모 윤부영역을 맡은 故 강명주 배우는 촬영 후 암을 앓다가 사망하였고, 이 작품은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극 중 금명과 처음 만나는 씬에 장례미사(마르첼로 오보에 아다지오) 음악이 나오며 제작진은 그녀를 추모하였다.

#6. 작품 제작 중 태어난 제작진의 아이들을 축하하는 헌사가 엔딩 크레딧에 실렸다. 내용은 "안되면 빠꾸. 우리가 항상 여기에 있어."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출처 - 넷플릭스>

 

 지금까지 저의 3월을 뜨겁게 달궈준 <폭싹 속았수다> 리뷰였습니다. 

 4월 23일(수)에 다시 봅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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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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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day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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