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작별하지 않습니다.

2024.12.04 | 조회 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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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중일기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것들

 안녕하세요! 지난 밤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닌 밤 중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요.

 사실 오늘 레터가 제주 43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발행 취소를 고민했었습니다. 다행히 상황이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아 이렇게 편지하게 되네요.

 이 땅에 안전과 평화가 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한 일임을 느낀 밤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밤새 잠도 설치고 피곤하실텐데, 오늘은 편안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제목처럼 소설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느낀 점들을 구독자님과 나눠보려고 해요.

 한 달에 한번씩 진행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읽는 내내 왜 한강 소설가가 대단한 문학 예술인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요즘 말로 '보법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생생한 묘사와 유려한 문장들. 머릿 속에 그려지는 장면 장면들로 소설에 몰입이 되었습니다. 구독자님도 한강의 작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라면서, 이번 레터 시작해볼게요.

 

#NOTE : 이 글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스포일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간단 줄거리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 윤리에 관한 내용을 집필하는 한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소설가 경하는 제주에 사는 인선의 부탁으로 인선의 집인 제주로 떠난다. 급작스런 사고로 빈 집에 가서 키우던 새를 보살펴 달라는 부탁이었다.

 경하는 눈보라가 치는 악천후를 뚫고, 간신히 인선의 집에 도착했으나, 죽은 인선의 어머니를 만나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 4/3사건으로 오빠를 잃은 피해자였으며,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의 경험을 토대로 처참하고 잔혹한 4/3사건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제주 4·3 사건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작별하지 않는다, 317p>

 

 이 책은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소설가 경하와 그녀의 친구 인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구독자님은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부끄럽지만,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냥 불미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만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이 책을 계기로 알게된 4·3사건은 정말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이더라고요. 

첨부 이미지

 제주 4·3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무려 7년에 걸쳐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광복 후 1947년 3/1일 만세 운동 집회에서 경찰의 말에 아이가 치였고, 이를 무시한 경찰에게 화가 난 시민들이 항의하러 경찰서에 쫓아갔다고 해요. 그런데, 경찰이 이를 폭동이라고 오인하여 진압이라는 목적으로 발포했고,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남조선로동당(이하 남로당)의 주도로 총파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광복 직후 사실상 남한을 좌지우지하고 있던 미군정이 서북청년회를 파견하여 강경한 검거 작전을 세우며 제주도에서의 갈등은 심각해졌습니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은 경찰과 극도 우익단체에 대한 습격을 자행하게 되었고, 정부는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실시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한에서 극도 좌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행동이라고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4/3사건이 극악무도한 대량학살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는데요.

 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하는데 있어 정치 사상과는 관계없이 아이, 여성, 노인을 포함한 제주도민 모두에게 무차별하게 과잉대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4·3 희생자 분포 지도
4·3 희생자 분포 지도

 동서로 긴 타원의 섬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1948년 미군 기록물이라는 자막 위로, 해안선에서부터 오 킬로미터를 표시하는 경계선이 두드러진 굵기로 그어져 있었다. 
 한라산을 포함하는 그 안쪽 지역을 소개하며, 해당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이유 불문 사살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 자막으로 이어졌다.
 놀라울 만큼 노이즈 없이 선명한 흑백 무성 영상이 뒤따라 들어왔다. 초가지붕이 불탔다. 검은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검이 장착된 장총을 멘 옅은 색 제복의 병사들이 현무암 밭담을 뛰어넘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161p>

 

 위 그림은 4·3사건의 희생자 분포도입니다. 제주도의 모든 곳이 붉게 물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무차별적으로 학살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군/경은 폭도 진압이라는 목적 하에 제주도민을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내로 나오도록 했어요. 산지에 터전을 구축한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내에 살지 않는다면 폭도로 간주해 무차별하게 학살해버렸습니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4·3사건의 피해자 수는 15,000여명입니다. 전문가들은 비공식적인 숫자를 포함하면 3만 명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어요. 당시 제주도민의 총 인구가 30만 명 정도였으니 10명 중 1명은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가 몇 명인지 알고 계시나요? 정부 공식 기록에 의하면 18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목숨을 숫자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에 비해서 4·3사건은 그 동안 철저하게 묵인되고, 감춰져 왔습니다.

 

 제주 4·3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 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작별하지 않는다, 317p>

 

1995년 기사의 헤드라인 위로 나는 촛불을 비춘다. 경산의 시민단체가 코발트 광산 앞에서 최초의 진혼제를 올렸다는 기사다. 
 다음 스크랩은 1998년 기사다. 경북 전역에서 모인 유족들이 광산 앞에서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이어 1999년의 스크랩은 대부분 사설들이다. 지금이라도 광산의 유해를 발굴해야 하며 유족들이 연로하니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283p>

 

 1940년대에 일어난 이 사건은 철저하게 묵인되고, 묵살되어 왔어요. 제주도 인구의 1/10이 희생 당한 희대의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6·25 전쟁 직후 좌익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작전이 지속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유족들의 가족 역시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게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해요.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작별하지 않는다, 225p>

 

 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저는 또 한번 울컥했습니다. 이제는 주름이 깊어진 할머니께서 어렸을 적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으면, 평생을 바닷고기를 입에 안 대셨을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입니다.

 

무소속 당선인과 해병대


<출처 - 제주의 소리>
<출처 - 제주의 소리>

 이런 제주 4·3사건의 슬픈 영향으로 제주도에는 유독 '무소속 당선인'이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트라우마가 남겨졌기 때문이에요.

 좌익 성향을 보이면 미군정의 보복을 받고, 또 우익 성향을 보이면 남아있는 남로당 등의 극 좌익 세력에게 보복을 받은 트라우마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죠. 저도 선거 개표 방송을 볼 때면, 항상 왜 제주도는 무소속 당선인이 많이 나오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아픈 사연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 특징으로는 제주 출신 해병대가 많다고 해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사실은 어떤 말도 나눠진 적 없었던 걸까?
 새는 새였고, 나는 인간이었을 뿐일까?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다시 목장갑을 끼고 난로의 달궈진 문을 열었다. 부지깽이로 나무토막을 뒤집자 불티가 튀었다. 불꽃의 열기가 내 얼굴까지 끼쳐왔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작별하지 않는다, 197p>

 

살지 못하는 것일까. 죽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는지 판단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느끼게 돼요. 

 분명 경하가 구하러 간 인선의 새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 있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의 외삼촌의 모습을 닮아 있어요.

  4·3사건으로 대구 형무소로 실려간 인선의 외삼촌은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갇혀 있던 갱도에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있다고 전해졌으니까요.  인선의 이모마저 외삼촌을 죽은 것이라 여기자 했지만, 인선의 어머니만큼은 죽을 때까지 오빠(인선의 외삼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선 어머니의 삶은 마치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어요. 오빠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4·3사건으로 점철된 뇌는 그 아픔을 잊어내지 못했고, 결국 치매에 걸려 인선을 그 잔혹한 현장 속으로 자꾸만 초대했습니다.

 역사 속 사건에 들어있는 아픔은 흔히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의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진짜 나와 나의 가족에 대입하여 이입하기란 쉽진 않아요. 그러나, 한강 작가의 이 소설은 마치 나의 외삼촌, 나의 아빠, 나의 어머니가 이런 아픔을 겪은 것처럼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경하가 이 사건을 알아낸 후 처럼요. 다시는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한강 작가 <출처 - 매일경제>
한강 작가 <출처 - 매일경제>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과거는 고통스럽다.

 

딸깍, 진저리나는 소리를 내며 간병인의 알루미늄 상자가 다시 열렸다. 그사이 삼 분이 또 흐른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간병인이 변명하듯 말했다.
 친구분 정신력이 정말 강하세요. 정말 잘 참고 계신 거예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인선이 간병인을 향해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피에 젖은 붕대가 너무 꾸덕꾸덕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55p>

 

 작업을 하다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은 인선은 봉합 수술 후 삼 분에 한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야 했습니다. 신경이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죠. 무려 삼 주간이나 그것도 삼 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모습을 보며 경하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이 대목은 한강 작가의 어떤 숙명과 사명감이 나오는 대목이라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과거 역사에 대한 감각을 부패시키지 않도록 예방해야한다는 한강 작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 거에요.

 간병인(한강)은 인선(독자)의 손가락 신경 훼손을 예방(역사 감각 부패 예방)하기 위해 계속해서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책을 통해 이런 역사를 알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죠.

 이렇듯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때때로 매우 아픕니다. 또 그것이 추악하고, 잔혹할수록 더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또 다시 잘린 손가락을 붙이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 윤리관을 가지고 말이죠. 

제주 4·3 평화공원 <출처 - 경향신문>
제주 4·3 평화공원 <출처 - 경향신문>

과거를 직시해야 진실로 보내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함께 다닌 세 개의 산에 모두 전설의 바위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끝이었다.
 이야기의 패턴은 거의 같았다. 큰 산 아랫마을의 모든 대문을 두드려 끼니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늙은 걸인이 오직 한 여자에게서 밥 한 그릇을 얻는다. 고마움의 표시로 그가 말한다. 내일 동트기 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산을 오르라고. 
 산을 넘어갈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노인의 말대로 여자가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해일이나 폭우가 마을을 삼킨다. 예외 없이 그녀는 뒤돌아본다. 그곳에서 돌이 된다.
...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잖아요?그때 안 죽었는지도 모르잖아요. 
저건 그러니까 …… 돌로 된 허물 같은 거죠.
허물을 벗어놓고, 여자는 간거야!
어디로?
 그건 뭐 그 사람 맘이지. 산을 넘어가서 새 삶을 살았거나, 거꾸로 물속으로 뛰어 들었거나

<작별하지 않는다, 242p>

 

 또한, 간병인(한강 작가)의 도움과 더불어 우리는 과거를 똑바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강 작가는 '돌이 된 여인'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과거를 돌이켜보는 행위)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과거를 정확히 직시하고, 바라볼수록 우리는 과거의 그 허물을 벗고 또 다시 나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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