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 2편

이번 레터는 지난 주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 1편'에 이어 20년 전 스승을 찾으러 간 이야기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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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만나러 가는 길

 20년 전 스승을 만나러 가는 날이 되었다.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 펜션을 운영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펜션에 두면 예쁠만한 수국을 하나 샀다.

 내가 사는 수원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였는데, 마침 날도 너무 좋아서 가는 길이 지겹지 않았고, 괜스레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20년 만에 만난 나의 선생님

 선생님을 뵙기로 한 커피숍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괜스레 설레기도.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하트시그널 주인공인 줄)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멀리서 선글라스를 낀 멋진 중년이 보였다. 단숨에 선생님인 걸 알아차렸다. 선생님도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완중일기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생생히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그 간의 세월이 느껴졌지만, 그 때보단 인자하고 부드러워지셨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호수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선생님 잘 지내셨나요?

 "선생님. 제가 20년 만에 연락 드려 많이 놀라셨죠?"

 "사실 놀랐지. 세월도 많이 흘렀고, 가르쳤던 아이들도 워낙 많아서 처음엔 사실 네가 기억나지 않았어."

 "선생님께서 교직에만 41년 계셨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맞아. 참 오랜 세월이지. 그래도 자네가 나와 있었던 이야기를 말해주니 기억이 생생히 나더군"

 "맞아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를 축구 선수 시키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셨잖아요."

 "네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이 나는거야. 그때 참 빠릿빠릿하고 재빠른 녀석이었는데... 지금도 딱 보니깐 아주 약빠르게(?) 생겼어"

 "칭.....찬이죠??? ㅎㅎㅎ"

그에겐 가르치는 것만이 선생의 역할이 아니었다.

 "네 얘기를 듣고 생각나는 학생이 또 있었어.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만난 학생이었지. 여학생인데 재빠르고 축구를 아주 잘했어.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길 원했는데, 기숙사비를 매월 30만 원씩 내야했어. 그런데, 집안이 너무 가난한거야.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을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했지."

 "몇 년 전 일인가요?"

 "그게 2013년인가 그랬을 거야. 지금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 어쨌든 고민을 하다가 그 학교 근처에 큰 절이 하나 있었어. 거기 대표스님을 찾아갔지. 총무원장이라고 그러는데 절의 돈을 관리하는 스님이었어.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월 30만원씩 지원을 받아냈지."

 "정말 대단하세요. 혹시 그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참 안타까운 게, 내가 그 학생을 만났을 때부터 이미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수술을 해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그것까진 차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원하던 중학교에 진학하긴 했는데 그 부상이 그 친구의 발목을 안 잡았으려나 모르겠어.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1편에서 말했듯이 나는 이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과 감정적으로 교류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20년 만에 만난 선생님을 보며 그 호랑이 가죽 안에 참으로 따뜻한 내면이 있었구나. 이제서야 알았다. 2004년엔 나를. 2013년엔 한 여학생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호랑이 선생은 교실 밖에서도 제자들을 품으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행운이었네.

선생은 나의 천직이었어

 "선생님은 원래 꿈이 선생님이었나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 집안이 아주 어려웠는데, 당시 교대가 2년제여서 학비를 줄일 수 있겠다 싶어 교사가 되기로 한 거지."

 "아 그 당시엔 교대가 2년이었군요. 학비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교사를 무려 41년이나 하셨는데, 만족스러우셨나요?"

 "선생은 나의 천직이었던 것 같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지. 내가 교장이 되기 전에 장학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장학사는 행정적인 업무를 보는 사람이거든.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찌나 서운했는 지 몰라."

야학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계시는 선생님

 “제자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그리우시겠네요.”

 "많이 그리웠지. 그래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 생각했어. 지금 7년째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분들을 가르치고 있어."

※야학 : 야간학교의 줄임말로 지금의 의무교육이 발전하기 전, 대안적 대중교육기관으로서 많은 민중의 계몽에 앞장섰다. 지금의 직장인들이 다니는 특수대학원도 야학이라 할 수 있으며, 심훈의 <상록수>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야학이라고 하면 100% 봉사의 개념으로 진행하시는거죠?"

 "맞아. 100% 봉사야.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아쉬움을 야학으로 달래고 있는 거지."

 "정말 존경합니다. 선생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이 지금의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 속에서 어찌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도 같아요."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사회에 환원한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었어요. 돈이 되지도, 성과가 되지도 않는 일인데 왜 그렇게 아이들을 필요 이상으로 챙기셨는지.”

 “내가 그만큼 받았잖아. 너희들한테. 너희들 덕분에 이 때까지 왔으니 어찌보면 환원이라고 할까? 받은 만큼 돌려주는거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항상 사회에 환원해야지라는 마음이 있었어 내게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퇴직 후에도 7년째 야학에서 봉사를 하시는군요.“

 “그렇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내 적성에도 맞는 일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어? 올해부터는 우리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은 사랑방에서 중졸 검정고시 대비반을 시작했어. 70대가 넘는 어르신 일곱 분인데, 매일 저녁 2시간씩 가르치고 있지. 중학교 과정도 다시 공부하게 되고 아주 좋아(웃음)“

 “매일 2시간이요? 엄청난 헌신이네요. 선생님. 사실 저도 일한 지 4년 정도 되었지만,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본인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것은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선생님의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군요.“

 “맞아. 자네도 본인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네의 현재 위치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자네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회사의 이익이 사회에 환원이 된다 생각하면 그로부터 또 보람을 느끼지 않겠나?”

 커피숍에서 즐거운 대화를 마친 우리는 선생님께서 사주신 맛있는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선생님의 화실을 구경했다.

 '받은 만큼 환원한다.'는 선생님의 가치관은 선생님의 삶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지역 향교 소유의 화실은 선생님과 그림 동호회에 단 돈 5만원에 임대되었고, 그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은퇴한 한 선생은 저녁에는 무료로 이웃을 가르쳤다.

 그때 왜 그러셨냐는 제자의 물음에 대한 답은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한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음을. 그리고 그 환원의 고리가 이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과 셀카를 찍으며 우리는 이 만남을 마무리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 간의 시간 동안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10살의 눈으로 바라봤던 선생님의 올곧은 삶의 자세는 어린 나의 안목이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10살에게도 보일 만큼 진심이었던 선생님의 삶의 태도였다.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20년 간의 시간은 슬프게도 좋은 시간만을 내어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소중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으셨고, 20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된 제자는 그 아픔에 슬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변했고, 20년 전에는 못한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것들

교사는 숭고한 직업이다.

 교사가 존경 받았으면 좋겠다. 앞서 1편을 시작하며 '서이초 사건'을 언급했다. 교권 침해는 슬프게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전의 무분별한 체벌 / 지나친 교권 남용 등은 사라져야 하지만, 이것이 교권 침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나는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계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교사와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이고, 그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이 좋은 어린이를 만들고, 좋은 어린이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우리는 교사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먼저 선(先). 날 생(生). 강사가 아니라 선생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이 선생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모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무시 당해선 안 되는 직업이다. 먼저 세상을 겪어본 사람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 나는 20년 전 선생님을 통해 지금도 배워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알자

 눈코 뜰 새 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란 어쩌면 낭비가 되어버린 시대다. 20년 전의 선생을 만나러 가며, 나의 20년 전도 함께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한번 더 확인했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으며, 운동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 다르지 않다. 아, ‘나’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의 힘은 매우 강력했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본인의 욕구이자 가치관임을 알았던 한 선생은 41년 간 교사의 삶을 그 태도로 살아왔고, 여전히 그 태도로 삶을 풍성하게 채워 살고 있다. 그리고 본인의 삶을 사랑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미래를 그렇게 그리고 싶다.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 보았는데, 미래를 그려나갈 힌트를 얻었다. 

 많은 것을 가져다 준 이번 레터는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