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가보신 적 있나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도 꿀같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5월은 휴일이 많아서 주 4일제 간접경험하는 참 좋은 달인 것 같아요. 진짜 주 4일만 일하면 좋겠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인 동시에 스승의 날 이기도 합니다. 완중일기 선생님과의 추억 레터 읽으러 가기▼ )

 오늘 레터는 아주 아주 오래된 제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무려 10년 전이에요!! 파릇파릇한 20살 때였는데...말이죠 ㅎㅎ

 10년이나 된 기억이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던 경험이라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제 경험이 구독자님에게도 색다른 생각의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법정에 가본 적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참 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까지 장래 희망에 변호사라는 직업을 써서 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이과로 진학하면서 그 꿈은 점점 희미해졌다. 

 변호사의 꿈을 접고 대학에 갔어도 여전히 나는 여전히 법을 궁금해했다. 친구들과 지내면서 발생하는 갈등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법과 판사는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법정에 가보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법이 살아 숨 쉬는 곳. 판사의 말 한 마디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의 강력함을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가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가지?

 법정에 가보자고 죄를 저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골똘히 생각해보니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배심원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여 유/무죄에 관한 평결 및 양형을 내리고, 재판부는 이를 참고하여 형을 결정하는 제도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로또처럼 무작위로 추출된 명단에 들어야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피고인이나 원고인과 어떠한 관련도 있으면 안되니 말이다. 

 도덕적인 나는 법정에 가볼 일이 없겠구나...(?ㅋ) 라는 생각이 들다 우연히 '그림자배심원'이라는 제도를 발견했다.

 그림자배심원은 배심원과 똑같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 및 양형을 내리지만 재판에는 반영이 되지 않는 제도다. 쉽게 말해 배심원과 같은 역할을 체험만 해보는 제도라고 보면 된다.

▼ 국민참여재판 그림자배심 신청

10년 전 그 날, 법정에서의 기억

 운이 좋게 그림자배심원 신청 승인을 받았고, 나와 같이 만사에 호기심이 많은 룸메이트를 꼬셔서 함께 저 멀리 의정부까지 떠났다. 

 드디어 재판 당일이 되었고, 아침 일찍 의정부 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는데 법정에 가까워오자 무거운 분위기가 역력했고, 친구와 나의 얼굴도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사건의 전말

 당시 사건은 다수의 피고인이 기소된 형사 사건이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30대 남성인 A는 시골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B라는 50대 남성이 있었는데, B가 A 및 A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수천 만원의 돈을 빌려갔고, 이 돈을 정해진 납기까지 갚지 않았다. 납기가 지난 후에도 B는 본인의 생활은 영위하는 가운데에도 돈을 한 푼도 갚지 않았다.

 B의 뻔뻔한 태도와 거짓말에 분노를 참을 수 없던 A는 동네 친구들을 포섭했다. 그리고 B에게 겁을 주기로 결심했다. A는 친구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거리에서 B를 봉고차에 무력으로 태웠다. 그 후 B를 겁박해 돈을 갚을 것을 강요했고, 몇 분 후 풀어주었다.(신체적 위해는 없었다.)

 이에 검사는 징역형을 구형한 형사사건이었다.

 사건의 개요를 듣고, 재판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피고인의 변론

 솔직히, 처음에 사건의 개요를 들었을 때는 피고인들이 너무나 무식하고,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입을 열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B는 A가족 뿐만 아니라 해당 마을에서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린 상습범이었으며, 심지어 A 가족의 돈을 안 갚는 것에 대해 A를 조롱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또한, A는 당시 공무원이었는데 검사가 구형한 징역형이 선고될 경우 힘들게 얻은 공무원 자격도 박탈될 위기였다. 

 함께 기소된 A의 친구들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A의 부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따라왔고, B의 신체를 접촉한 적도 없는데 공범으로 기소된 인물도 있었다. 

 나를 비롯한 그림자 배심원, 또 진짜 배심원들의 표정도 피고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피해자의 증언

 피고인들의 호소에 흔들리는 배심원들을 잡기 위해 검사는 히든 카드를 꺼냈다. 바로 B를 증인석으로 불러낸 것이다. 

 B가 증인석으로 힘 없이 걸어나왔고, 그 날 이후 엄청난 공포감에 쌓여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더해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진단을 내린 의사의 소견까지 보여주며 이 범죄의 난폭함을 드러냈다.

 B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흔들렸다. 내가 길거리에서 봉고차에 납치됐다고 하면, 그 후로 도로를 걸을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휩싸일 것 같았다. B는 실제로도 많이 수척해보이고, 힘겨워보였다. 마음이 또 검사 쪽으로 기울어갔다. 

판사는 신?

 그렇게 오전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법원은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모아 점심을 사주었다. 점심을 먹으며 해당 사건 판사가 아닌 다른 판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여한 다른 그림자배심원이 "판사님은 정말 신 같아요!! 어떻게 사건의 명과 암을 다 보시고 멋진 판결을 내리시는지... 정말 너무 멋지세요!"라고 말했다.

 5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저렇게 젊은 판사에게 말하니, 아부를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괜히 오버스러웠다.  

 그러나 재판이 끝나고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판사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재판은 밥을 먹고 6시간이나 더 진행되어 9시에 시작한 재판은 7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무려 9시간 동안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나도 친구도 배심원들도 모두 지쳤다. 그 속에서도 판사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판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판사의 수많은 고뇌와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치열함이 느껴졌다. 평소에 꽤나 실망하고 있던 대한민국 법원에 신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구독자님의 판결은?

 많은 정보의 비약이 있지만 구독자님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검사? 피고인?

 판결은 이렇게 났다. 피고인 A 1년 징역형. A의 친구 N명 벌금형. A의 친구 N명 무죄 (몇 명이었는진 정확히 기억 안 난다.)

 A의 범죄 행위가 명백한 상황에서 재판의 키는 양형에 있었는데, 결국 A는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A의 친구들이 벌금형, 무죄로 나름 선처를 받았지만, A가 징역형을 받게 됨으로써 A는 공무원 자격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A의 호소 앞에서도 법의 회초리는 엄중하고 냉정했다. 

 판사의 말 한 마디로 몇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순간이었다. 법의 강력한 위용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을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아쉬움도, 시원함도 아닌 오묘한 감정이었다.)

어떤 양형 이유

 10년이 지나 서른이 된 지금,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판사가 쓴 책을 읽었다. 

 박주영 판사가 쓴 책인데, 판사가 재판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부분이 판결문의 '양형 이유'라는 부분이라고 한다. 자신이 내렸던 양형의 이유들을 이야기하며 판사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담은 책이다.

 법은 정의이자 사랑이다

 법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정의다. 정의를 떠올리면 굳건한 선으로 그것을 침범하는 이들을 엄중하고 냉정하게 물리쳐줄 것만 같다. 살인을 하면 죄를 받는다. 그게 정의고, 굳건한 법이라는 선이다.

 그러나, 우리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극 중 살인을 저지른 지안(아이유)에게 공감한다. 할머니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면 나같아도 죽였을 거라며 동훈(故이선균)은 지안을 위로하고 우리도 역시 공감한다.

 살인자는 엄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살인자의 가슴 아픈 사연에는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동시에 사랑이어야 한다.

 박주영 판사는 말했다.

 10년 전 의정부 법원에서 느낀 나의 갈팡질팡한 마음과 결과를 들었을 때의 오묘한 감정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아, 법은 정의면서도 사랑이었구나. 내가 느낀 것은 연민이었고, 그것이 법을 법답게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법도 결국엔 인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법도 결국엔 사랑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잘못에 참 엄격해진 것 같다. 엄격해진 문화에 잘못을 안하게 되는 효과도 있지만, 한 번의 잘못으로 찍힌 낙인을 지우는 것도 매우 어려워졌다. 

 10년 전에 법정에 갔던 경험과 ‘어떤 양형 이유’라는 책을 읽은 경험은 내가 사람들의 잘못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구독자님에게도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저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故이선균씨의  장면을 나누며 레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