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숨 그리고 쉼

31번_나의 사진과 시절인연(19)

(만남이 길이 되고, 길이 다시 인연이 된다.)

2026.08.25 | 조회 154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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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海印(해인)

 

오늘 토요일, 결핍의 미학전시장에 관곡지에서 지난해부터 인연을 맺어온 박사님 부부가 찾아왔다. 그분들은 나를 선배님이라 부른다.

 

부군께서는 요즘 다중노출 사진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해주었지만, 요즘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중노출을 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마침 이번에 출품한 작품 중 내가 천년의 미소와 이야기라 이름 붙인 사진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초대했다.

 

전시를 둘러보던 중 아내분이 내게 물었다.

 

선배님은 사진을 배운 선생님이 있으세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사진을 시작한 지 십수 년이 되었다. 하지만 어디 한 곳에 매여 정식으로 지도를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술과 담배를 끊으면서 찾아온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고 무작정 사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꽃을 찍었다. 정서진, 인천대공원, 관곡지 등 좋다는 곳은 부지런히 다니며 카메라가 닳도록 셔터를 눌렀다.

자연스럽게 사진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가운데 김길영 선생님을 만났다.

 

사진으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소년의 동심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내 사진을 바라봐 주셨다. 사진의 기본 방향을 잡아주신 첫 번째 스승이셨다.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데도 전날 전시장을 찾아주셨다. 내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형님의 소년 감성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나의 1호 제자여서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나 역시 웃으며 답했다.

 

나도 좋습니다.”

 

그 말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부디 좋은 약이 개발되어 선생님께서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첨부 이미지

빛의 태초

 

다음 인연은 이번 그룹전의 지도위원이신 최종규 선생님이다.

 

이베이에서 무작정 구입한 골동품 렌즈들은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많았다. 그렇다고 성격상 그대로 둘 수도 없어 내 손으로 직접 렌즈를 개조해 보기로 했다.

 

막막하던 차에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은 렌즈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과 개조의 기본 원리를 알려주셨다.

 

렌즈는 사진가가 원하는 특성에 맞게 만들어질 수 있고, 그 기본적인 구조와 특성이 사진가의 의도와 맞으면 그다음은 사진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렌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가 원하는 기본을 갖춘 렌즈를 만나면, 그 이후의 사진은 결국 사진가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렌즈를 단순한 도구로만 생각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의 방향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사람을 만났다.

 

관곡지에서 우연히 만났던 갑장 이 선생님이다.

 

그날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남겼지만, 서로 바빠 잊고 지내던 참이었다. 며칠 전 통화를 하고 연락처를 받았는데, 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초대했는데, 오늘 선뜻 전시장에 찾아와 주신 것이다.

 

이 선생님은 사진가가 원하는 특성에 맞춰 직접 렌즈를 깎고 만드는 분이다. 

 

토요일이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마중한 뒤, 우리는 지하철 역사에 앉아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씩을 나누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렌즈를 직접 깎고 만들며 사진을 담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어쩌면 이분 역시 내 사진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어줄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내 곁엔 참 많은 스승이 계셨다.

 

사진 에세이를 써보라고 권해주신 최병관 선생님, 늘 힘이 되어주는 선배 법우님들, 가끔 함께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노스님도 계신다.

 

오늘 우리 회원들의 지도 교수이신 박영신 교수님께서 전시장에 오셔서 내 사진에 동양 사상이 깊게 담겼다며 극찬을 해주셨다.

 

인문학을 연구하신 분의 말씀이라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확신이 생기고 앞으로 걸어갈 길의 목표도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임감에 두렵고 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늘 고요하고 맑은 수면에 만물이 투영되듯, 진실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과 만물을 바라보는 깊은 관조와 삼매의 경지로 사진을 찍으라 말씀해주시며 海印을 응원한다고 힘을 주시는 심재동 스승님도 계신다.

 

누군가는 사진의 방향을 잡아주었고, 누군가는 렌즈를 보는 눈을 열어주었으며, 누군가는 글을 쓰게 했다.

 

또 누군가는 말없이 함께 걸어주었고, 누군가는 흔들릴 때 가만히 응원해 주었다.

 

어린이에게서 순수함을 배우고, 연꽃과 매미, 자연에서는 절제와 순리를 배운다.

 

세상에 스승은 수없이 많지만, 제자가 어두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이제는 어느 한 분만을 스승이라 말하기 어렵다.

 

내가 만난 모든 인연이 나에게는 스승이었다.

 

그리고 오늘, 문득 한 분이 더 그리워졌다.

 

2년 전 갑자기 별이 되신 나의 정신적 스승님.

 

어릴 적부터 길을 알려주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분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글을 정리하다 보니 하차를 알리는 시흥시청역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도 차오르는 눈물이 그치지를 않는다.

 

아마도 이 깊은 그리움 역시 인연의 또 다른 모습인가 보다.

 

사진이란 세상을 담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 속에서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만날 때 만나고,

배울 때 배우고,

떠날 때 떠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인연이 다음 길을 열어주는 것.

 

진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그러나 길이 없다고 해서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길에는 문이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시절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답을 미리 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저 지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눈앞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된다.

 

맑고 밝게, 그리고 간절하게.

 

길 없는 길을 따라 나의 사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용히 바라보면서.

 

 

첨부 이미지

나날이 좋은 날

 

#시절인연 #사진에세이 #사진과인생 #스승과제자 #길없는길 #海印

 

<海印의 사진 명상 편지>

 

빛은 마음을 밝히고,

숨은 몸을 깨우며,

쉼은 나를 본래의 자리로 이끈다.

 

이 편지에 답장하시면

작가가 직접 읽고 함께하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고요한 빛 한 줄기 머물기를.

 

海印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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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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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철의 프로필 이미지

    재철

    0
    11일 전

    우연히 만난 인연을 좋은 느낌으로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선생님의 글 내용에 스승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평소 잊어버리고 있던 스승에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빛.숨.쉼의 프로필 이미지

    빛.숨.쉼

    0
    10일 전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생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원불멸이라고 하지요 잠시소풍왔다 가는인생 살아서 이름을 남기고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형님에 내면에 순수한 빛이 날개를 펼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사진전이 되시길 바랍니다

    ㄴ 답글 (1)
  • 빛.숨.쉼의 프로필 이미지

    빛.숨.쉼

    0
    30분 전

    《빛의 태초(太初)》 빛의 품 안에 두 송이의 연꽃이 피어난다. 하나는 상처를 품은 나, 하나는 다시 태어나는 나. 숨을 고르면, 이 둘은 고요히 하나가 된다.

    ㄴ 답글
  • 빛.숨.쉼의 프로필 이미지

    빛.숨.쉼

    0
    28분 전

    《나날이 좋은 날》 비가 와도 좋다. 햇살이 스며도 좋다. 오늘 같은 황금 숲길을 걷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들의 오늘도, 내일도 나날이 좋은 날이 되길.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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