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 1편

 지난 2월 28일 '교권 침해' 논란을 촉발한 서이초 사망 교사가 순직 인정을 받았다. 

 이외에도 교권 침해 이슈는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참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봤다. 그 시절 나의 선생님들은 어떠셨지? 

 성함까지 또렷이 기억나는 나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바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내가 10살 때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 나를 가르쳤던 스승이다.

 그보다 더 큰 중학생 시절 선생님도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이 어려운데, 왜 내 머릿속에 3학년 선생님은 또렷이 기억날까?

20년 전 나의 스승, 당신을 기억합니다.

 10살. 3학년 나의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선생'보다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포스 있는 남자 선생님이셨다. 내가 그를 이렇게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2가지 일화 때문이다.

① 30분 일찍 등교해서 타자 연습해!

 나의 호랑이 선생님은 모든 반 아이들을 30분 일찍 등교시켰다. 30분 일찍 등교하면 뭐 하냐고? 바로 컴퓨터실로 향한다. 그리고 주구장창 타자 연습을 한다. 그것도 매일. (그때 쳤던 '별 헤는 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학교의 어떤 교과 과정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 반 모든 인원은 아침잠을 30분 줄여 등교해서 타자 연습을 했다.

 한 학기를 마칠 즈음이 되면, 학부모님들이 마련해 주신 봉고차에 올라타서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다. (학부모님들도 선생님을 지지해 주셨다.)

 결과는? 전.원.합.격 

 내가 인생에서 기억하는 첫 성취가 아니었을까.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반의 이야기는 학교를 넘어 신문에도 실렸다. 

 당시엔 정말 하기 싫었다. 그러나, 이후에 정말 뽕 뽑았다고 생각한다. 타자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고, 남들 한글 타자 연습할 때 영어 타자 쳤다. 지금이야 모두가 타자를 잘 치지만, 내 학창 시절에는 타자를 못 치는 친구들도 많았다. 정보화 시대에 미리 대비가 된 셈이다.

② 너 축구선수 해보지 않을래?

 우리 초등학교는 축구 명문 초등학교다. 전국대회 우승도 곧잘 하고, 이운재 선수도 배출해 낸 학교다. 당시 나는 공식 축구부원은 아니었는데, 내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나에게 축구부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이 허락 안 해주신다는 핑계를 대며 버텼다. 그러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근데 이 호랑이 선생님은 우리 어머니를 학교로 불러냈다.

 당시만 해도 학부모가 학교에 호출당했다는 것은 학부모로서는 긴장할 만한 일이었기에 어머니는 불안함을 가지고 학교에 가셨다. 그리고 놀라셨다.

 선생님께서 나를 축구선수로 키우도록 설득하기 위해 자료를 한 묶음 준비하신 것이다. 어머니께서 말해주신 바에 의하면, 당시 최고 유망주인 박주영 선수의 사례를 조사해 박주영처럼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와 어떤 비용이 예상되는지 모두 조사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운동선수로 키우실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나오시니 두 손 두 발 들고, 어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너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렴.' 

 나의 선택은 No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축구부의 강한 위계질서가 싫었고, 당시 3학년 최고의 에이스 ㅈㅈㅎ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 난 제대로 배우기 전인 원석 같은 놈이었음ㅋㅋ) 그렇게 나의 장래를 결정할 담판이 일단락되었다. 

 그때 축구 선수의 길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위 2가지 일화로 나는 이 호랑이 선생님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너무 궁금했다. 선생님은 그때 왜 그러셨을까?

 30분 일찍 아이들을 등교시켜 타자를 가르치는 일이나 한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부모를 설득시키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일은 잡무이자 업무/성과와 하등 관련 없는 일이었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는 직장이 생겼고 나의 일도 있다. 지금의 나로 따진다면, 근무시간도 인정받지 못하고 30분 일찍 출근해 회사를 위해 일하고, 퇴근 후 집에서 회사를 위한 자료를 만드는 셈이다.

 구독자님이라면 하겠는가? 난 안 할 것 같다.

 그래서 너무 궁금해졌다. 당시 너무나 무서웠던 선생님임에도. 감정적 교류가 있던 기억이 1도 없음에도. 이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본인의 일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그 프로페셔널함의 뿌리가 궁금해졌다.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직접 찾아뵙고 말이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20년 전 스승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당시 최소 40 중반 이상이셨으니, 지금은 퇴직하셨을 확률이 높았다.  

 방법을 찾다가 각 교육청에서 '스승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았다.

스승 찾기 사이트 모음 (클릭 시 사이트로 이동)

 그런데 이 '스승 찾기'서비스는 재직 중인 교사만 조회가 가능하며 그 중에서도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으면 조회가 안 된다고 한다. 역시 나의 스승은 조회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무작정 선생님의 성함을 네이버에 쳤더니 한 기사를 통해 반가운 얼굴을 찾아냈다. 분명 내가 아는 그 얼굴이었다. 충북의 한 시골 작은 학교에서 5년 전까지 교장 선생님을 하고 계셨다. (역시...👍)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아낼 순 없었다. 최근 교사 관련 안 좋은 이슈들이 있다 보니 해당 학교에 무작정 전화해 번호를 알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고향 청주에서 교사로 일하는 친구 찬스까지 썼지만, 알아내지 못하던 중 친구가 블로그를 통해 선생님을 찾은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한 그림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계셨고, 그 동호회의 활동을 블로그에 게재하시는 분이 계셨다. 나는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감사하게도 머지 않아 선생님의 연락처를 전달해주셨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데 이상하게 너무 떨렸다. 무슨 말을 하지...? 근 1년 간 가장 떨린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20년 전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진짜 신기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임에도 나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의 안부를 물었고, 나를 제발 기억해 달라며 선생님과 있었던 일화를 신나게 말했다. 선생님도 수많은 제자가 있었기에 처음에는 기억을 못 하셨지만, 일화를 몇 가지 말씀드리니 나를 조금씩 기억해 주셨다.

 이전에 느낀 카리스마보다는 세월의 인자함이 묻어나는 선생님과 통화를 이어나갔고, 뵙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20년 만에 찾아온 제자가 부담스러울 수 있음에도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여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따뜻해질 봄을 기다리며 3월의 어느 날 선생님이 계신 충북의 한 마을에서 보기로 했다.

20년 전 스승을 만나고 왔습니다.(다음 주에 계속...)

 그리고 이번 주말을 이용해 선생님을 뵙고 왔다. 이번에 알게 된 선생님의 나이는 70세였다. 나랑 딱 40살 차이 나니 2004년에 10살-50살이었던 사제지간이 20년이 지나 30살-70살이 되어 다시 만난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고, 아직도 배울 것이 참 많은 참 스승이었다. 

 그래서 다음 주는 원래 쉬어가는 마지막 주이지만, 선생님과의 만남에 대해 이번 주에 이어서 다뤄볼까 한다.

T.M.I 하나 투척과 함께 이번 레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T.M.I] '20년 전'의 나도 찾아보기

 20년 전 선생님이 궁금하다가 문득 20년 전의 나도 궁금해졌다.

 정부 24를 통해 생활기록부를 조회할 수 있었다.

생활기록부 조회하러 가기 (클릭 시 이동)

▼ 생활기록부 조회 방법

 생활기록부에서 선생님과의 추억도 찾아낼 수 있었다.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은 가장 재미있는 파트다.

 20년 전의 나이지만, 지금의 나와 비슷한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는 듯하다. (구독자님도 보시면 아주 재밌을 겁니다..!)

다음 주에 선생님과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