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의 시대, 사라진 용서

어쩌면 사라진 것은 공감과 연민

2024.09.11 | 조회 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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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중일기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것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9월의 수요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주만 보내면 긴 추석 연휴가 다가오니 남은 3일 힘내봅시다!!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왔는데요. 언젠가부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엄격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우리는 엄격해졌을까요? 구독자님에게도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격의 시대


 우리는 '엄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엄격하다. 이런 생각 해본 적 없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잘못에 너그럽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잘못하다는 것의 의미마저 엄격해지고 있다. 빛나는 청춘을 보내는 연예인들의 연애 소식에는 엄청난 악플이 달리고 있고, 네이버 메인화면에 뜬 아무 기사나 눌러보아도 댓글에는 십중팔구 욕과 비난이 가득하다. 우리는 비난 속에 살고 있다. (물론 극악무도한 성범죄/강력범죄 등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비단 연예인들의 소식과 메인화면에 뜬 정치인의 소식에만 국한된 것일까?

 나는 규모가 큰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우리는 회사 자체 메신저와 커뮤니티를 사용 중인데, 심심치 않게 회사 내 직원들의 가십 등이 단체 메신저방에 전달된다. 때때로 이는 당사자끼리 풀 수 있는 문제임에도 공공연히 드러나 악의적으로 마녀사냥하는 경우도 많다.

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출처 - 넷플릭스>

 심지어는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만약 허위 사실을 찌라시로 만들어 유포한다면, 이 소식은 돌고 돌아 반나절이면 내게 돌아올 것임을 확신한다. Ctrl+C / Ctrl+V 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특정된 당사자는 한 순간에 자신의 신상이 팔려버리고 프로필 사진을 삭제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런 찌라시가 사실이 아니어서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공방이 일어나는 일도 많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엄격할까?  


 예상했겠지만, 내가 말한 예시들처럼 인터넷 세상에서 남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단 몇 자의 키보드 자판만 두들기면 된다.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라는 실험이 있다. 자신이 기차의 기장이고, 기차의 선로를 바꾸면 1명이 죽고, 그대로 두면 5명이 죽는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라는 실험이다.

트롤리 딜레마 <출처 - 위키피디아>
트롤리 딜레마 <출처 - 위키피디아>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핸들을 틀고, 소수가 희생하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여기에 한 가지 확장한 실험 버전이 있다. 1명을 선로로 밀어 기차를 멈추게 하거나, 그대로 두어 5명이 죽는 것 중에 선택하는 버전이다. 이 경우에도 1명의 죽음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그 반응은 매우 달랐다고 한다. 

 핸들을 틀어 1명을 죽이는 것은 자신의 손에 피가 묻지 않지만, 1명을 선로에 밀어 죽이는 것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때문에 보다 더 찝찝함을 느꼈다고 한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싫어한다.

 악플이 그렇다. 악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을 비난하고, 헐뜯기 때문에 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손에 피가 묻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플을 받는 사람은 어떨까? 악플을 읽은 사람의 뇌를 분석했을 때, 둔기로 얻어맞았을 때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악플을 받는 사람의 고통은 똑같은 것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지만, 악플을 받는 사람의 고통은 현실 세계와 같다는 것. 사이버 세상은 존재 자체부터 불평등한 구조일지도 모르겠다.

 

환승연애가 재밌는 이유


  연애 프로그램 중 레전드로 꼽히고 있는 '환승연애' 시리즈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출연자들의 '솔직한 감정'이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솔직한 감정을 끌어내는데에는 전 연인과의 재회라는 콘셉이 그 비결이었다. 

 사실, 하트시그널이나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늘 출연자의 진심에 대한 의구심이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평가받는다. 유명해지기 위해 출연했고, 그렇기에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등의 이유다. 물론, 환승연애도 그런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전 연인과의 재회라는 컨셉 자체에서 출연자의 솔직한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차별점이 있는 것 같다.

<출처 - 샾잉>
<출처 - 샾잉>

 그리고 이런 솔직한 감정으로부터 이성적이지 못한 출연자들의 행동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비난하며 즐긴다. 그런데 과연 우리라고 사랑 앞에서 올바르게 행동했을까? 원래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감정이다.

 이불킥을 생각하면 왜 사랑과 연애가 떠오르겠는가? 누구나 서투르지 못한 사랑을 하며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출연자들의 행동은 우리의 과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시청자들은 출연자를 비난하고, 욕한다.

 어쩌면 잘못은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과 동의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누구에게나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순간은 있다. 자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음을 돌이켜 본다면 과연 똑같이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이 안다.


 너무 많이 아는 우리는 너무 엄격해졌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너무 많이 안다. 알 권리는 소중한 권리이나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건강하게 소비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의 연애 소식을 알게 되었고, 유명인 혹은 주변인의 잘못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마디 키보드 자판이면 다른 사람의 잘못에 심판하고, 훈수 둘 수 있다.

 잘못의 유형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고, 그로부터 만들어진 잘못의 선은 어쩌면 더 나은 사회일지 모르지만, 위축되고 날 선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출처 - 한겨레>
<출처 - 한겨레>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악성 댓글이 있을 것 같은 뉴스 기사는 보고 싶지 않다. 유튜브 홈에 유튜버들의 가십 논란 등이 뜨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고 나와 사과하는 유튜버들의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피로해졌다. 물고 헐뜯고, 해명하고, 폭로하는 이 사회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그리고, 감정을 느끼지만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소시오패스다. 우리가 최소한의 연민을 느끼고 있다면, 서로에게 이렇게까지 엄격하진 않지 않을까?

 

 

사라진 용서


 잘못이 많아졌다고 용서도 많아졌을까?

 오히려 잘못에 엄격해진 만큼 우리는 용서하는 것에도 엄격해진 것 같다. 잘못하는 것이 쉽게 보여지는 만큼 잘못을 다시 꺼내고 드러내는 것도 너무 쉬워졌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해본 적 있나요?


 '용서'라는 단어를 이 기회에 깊게 생각해보니, 용서라는 단어가 서른 살의 나와 참 멀게 느껴졌다. 용서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용서를 할 일도 구할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엔 용서를 구할 일이 참 많았다. 어머니한테 대들기도 했고, 학원 숙제를 해가지 않아 학원 선생님에게 맞기도 했었다. 어렸기에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직장인이 되고, 앞서 말한 잘못에 엄격한 사회에서 잘못하지 않으려 부던히 애쓰고 살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용서를 구할 일이 많이 없다. 그리고, 용서할 일도 많이 없다. 왜냐고? 지쳤으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바쁜 직장에 다니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힘도 없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했고, 내가 그 사람이 밉다면 점점 안 보게 된다.

 아마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는 싫어도 만나서 보고, 또 싸웠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냥 안 본다. 싸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는 '용서'를 피하며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용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용서하는 법


 용서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나도 누군가에게 잘못을 할 수 있고, 누군가도 나에게 잘못할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좋은 관계를 위해,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출처 - 말왕>
<출처 - 말왕>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나는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를 관리하시는 사감선생님이 계셨는데, 다른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에 기숙사생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적이 좋은 기숙사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한창 잘 먹고 크는 때여서 10시마다 앞 슈퍼에서 간식을 사 먹곤 했는데, 이해가 안 되는 이유로 통제받으니 화가 났었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속된 말로 사감선생님께 개겼다.  

 당시 나는 학생회장이었고, 사감선생님께서는 나를 굉장히 믿어주시고, 예뻐해주셨는데 믿었던 내가 대드니 사감선생님은 화를 넘어 엄청난 실망을 하셨다.

 화를 내고 씩씩거리며 방에 들어와 5분이 지났을까. 나는 내가 잘못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게다가 그 날은 어머니가 기숙사에 오시는 날이었고, 어머니는 방 밖에서 이미 이 소식을 들으신 듯 했다.

 어머니에게 크게 혼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그냥 정독실에 올려 보내셨고, 한 시간 뒤에 방에 내려오니 쪽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쪽지에는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감 선생님의 마음이 많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불처럼 화가 나셨겠지만, 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셨다. 나의 행동을 용서해주려 노력하셨다.

 어머니에게 크게 혼날 것이라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어머니의 용서에 용기를 얻고, 사감 선생님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다행히 사감 선생님도 내 용서를 받아주시고,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셨다.

 '용서하는 법'이란 이런 것 같다. 어쩌면 '용서를 구하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공감'이다. 잘못한 사람의 진심 어린 용서를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것. 

 두 어른에게 잘못한 철 없는 아이를 두 어른은 '공감'으로 용서해주었다. 

 

기억 구슬 깨부시기


<영화 - 인사이드 아웃>
<영화 - 인사이드 아웃>

 깊은 상처를 받은 일은 상대방의 용서에도 쉽사리 낫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억지로 그 상처를 떠올리려 노력하기도 하는 것 같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다.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화상을 입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큰 손해란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의 잘못을 잊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대방과 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일일 수 있다.

 앞에 불교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고, 미워하는 에너지를 덜 쏟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잊어주는 것은 최고의 용서가 될 것이다. 누구나 본인의 잘못 혹은 실수를 아는 사람 앞에서 주눅 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그 기억에 대해 들추지 않거나, 잊어버렸다고 말해준다면 우리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나의 인생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아이유)의 살인 전과를 들쑤시는 회사 직원에게 박동운(故이선균 배우)이 말하는 명대사가 있다. 

 

"내가 내 과거를 잊고 싶어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과거도 잊어주려 노력하는게 인간 아닙니까? "

 

 우리는 엄격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잘못'에 대한 기준도 매우 높아졌고,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용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라고 잘못할 일이 없을까. 최소한의 공감과 연민을 가지려 노력한다면 우리의 손에 뜨거운 석탄을 달고 사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남은 9월은 추석 연휴와 마지막 주로 쉬어가려 합니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되시고, 10월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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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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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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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

    0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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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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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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