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스쎄븐 선생님

2026.08.12 | 조회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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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먹고 나오는데 삼 학년 애기들이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더니 “씩쓰쎄븐 선생님이다!” 한다. 손으로는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편 상태다. “너네 이리로 와봐.” 하니까 손은 풀고, 한 녀석이 “야, 씩쓰쎄븐 선생님이 우리 부르는데…” 중얼거린다. 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와서는 혼날 것 같았는지 손을 모은다. ‘씩쓰쎄븐’이 뭐냐니까 모른단다. 그럼 나한테 왜 ‘씩쓰쎄븐’이라고 했냐니까, 유행어란다. 손동작은 뭐냐니까 평화의 상징이란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그 동작은 부적절한 뜻으로 통용되니 주의하라고 하고 교실로 보냈다. 식곤증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지도가 나왔다. ‘씩쓰쎄븐이 뭐람…’ 속으로 생각하며 6학년 7반 교실로 들어갔다.

 

회장을 불렀다. “회장아 씩스세븐이 뭐야?” 하고 물어보니 웃음을 참다가 쿠쿡 바람 빠지는 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 의미 없어요. 식스세븐은 그냥 식스세븐인 거예요. 패드립이나 욕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느낌일걸요.” 마음이 잠시 놓였다. 미국발 유행어인 모양이었다. 방금 전 급식실 앞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회장이가 빵 터지더니 “아 진짜 걔네 왜 그랬대요. 졸업까지 쌤 모르게 할 수 있었는데.” 하더니 애들을 불러 모아 날 향해 “씩쓰쎄븐!!” 하고 외친다. 이후로 어딜 가든 씩쓰쎄븐 선생님으로 불렸고, 우리 반 애들을 형 누나로 둔 애기들 반에 보결이라도 들어가면 아이브 정도 인기였다.

 

어린이들과 사회생활 하다 보니 서사가 탄탄한 하루를 보내본 적이 없다. 웃다가 갑자기 울어도 그러려니 하고, 어제의 단짝이 오늘의 앙숙이 되어도 때리고 욕하지만 마라 기원하고, 주제 없는 대화가 오고 가더라도 참아내야 한다. 얼마나 서사가 없냐면 지난 스승의 날엔 작년에 가르쳤던 올해 5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찾아왔다. 손엔 감사 편지, 손뜨개로 만든 키링,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이 아낌없이 감사를 보내주니 나 역시 고마웠다. 보답으로 아이들과 어깨를 마주 걸고 신나게 뱅글뱅글 돌았다. 한바탕 땀을 빼고 자리에 앉아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눈이 띠용했다. ‘인기쟁이 착하고 섹시하신 쌤’으로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눈을 비비고 안경을 썼다. 분명 그렇게 써 있었다. 섹시… ‘해, 달, 진실은 숨길 수 없다 하더니… 나의 인기와 인성과 섹시는 숨길 수 없는 것인가… 아니지, 정신을 차리자!’ 하며 5학년 남학생에게 섹시란 무엇일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편지 제일 아래에 숨겨뒀다.

 

날씨가 더워진 날 남궁이가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왔다. (참고로 반에 현준이가 둘이라서 각자의 성으로 부른다.) 귀를 덮을 만큼 긴 머리였던 남궁이가 하얀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게 밀고 오자 등장과 함께 스타가 됐다. 남자아이들이 몰려들어서 “너 어디서 전학 왔어?”, “거긴 산이 많아, 바다가 많아?”, “디지털 영상 지도로 볼 수 있어?” 같은 창의적인 놀림을 쏟아냈다. 처음엔 남궁이도 천연덕스럽게 “너 사회 시간에 디지털 영상 지도 좀 배웠구나? 네이버 모르니?” 같은 농담으로 받아냈다.

 

3교시 수업이 끝나고 남궁이가 눈이 벌게져서 찾아왔다. 체육 시간에 ‘감스트 던져, 뉴진스님도 별수 없네, 가라 나선욱.’ 같은 공격을 받았댔다. 꺽꺽거리며 우는 남궁이를 달래고, “세수하고 오렴.” 하고 화장실에 보냈다. 그사이 남궁이가 언급한 몇몇 아이를 불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튜버 서로 유튜버 이름을 부르며 놀던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실로 돌려보냈다. 찬 기운에 화가 가신 남궁이도 씩씩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교대 입학 논술 준비하면서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냐는 논제에 1000자로 기술했던 기억이 있다. 어이가 없는 논제다. 선생님은 선생님일 때 가장 완벽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그때 생각해 놔서 다행이다. 아이들의 다툼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데 내게 맞는 교직관이 미처 정립되지 못했다면 엄마가 되어야 할지, 교도관이 되어야 할지, 전문가가 되어야 할지 역할을 고르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아이를 안고 달래기? 엑스, 호되게 벌을 주기? 엑스, 매뉴얼에 따라 꾸짖기? 오케이. 다정한 엄마 같은 선생님은 내게 신기루다. 오히려 무뚝뚝한 아빠에 가까운 선생님이랄까.

 

“아침에 너희들이 장난을 걸었을 때 남궁이가 왜 웃어줬을까?”, “만약 너희가 남궁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 “지금 남궁이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무얼까?” 아이들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지만 남궁이가 자리에 앉자 바로 사과했다. 남궁이도 사과할 일이 있었는지 사과했다. 다음 쉬는 시간에 남궁이와 아이들은 다시 천연하게 놀이를 즐겼다. ‘전갈과 개구리’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전갈은 개구리에게 개울을 건너갈 수 있도록 등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이 자신을 공격할까 봐 무서워서 거절했다. 전갈은 독침을 쏜다면 결국 자신도 물에 빠질 텐데 그럴 리가 없다며 개구리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전갈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개구리에게 독침을 쏴버린다. 결국 물에 빠진 전갈도 죽고 말았다. 사회로 나가기 전,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학교다. 그리고 나는 개울가 앞에 서 있다가 개구리랑 전갈 앉혀놓고 비행기도 접고, 집중 안 하면 귀 잡아끌어다가 도덕도 가르치고, 가끔 본보기도 보여주는 선생님인 것이다.

 

다시 급식실, 오늘도 무진장 시끄럽다. 어서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고요한 점심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절반쯤 먹으니 2학년 아가들이 급식실에 내려왔다. 3월의 아가들은 급식판을 받아들곤 꼭 카멜레온처럼 걸었다. 온 시선이 급식판에 고정, 국을 쏟을까 손가락이 데일까 조심조심이었다. 그리고 방학 직전인 7월의 오늘, 아기 고릴라와 아기 하이에나 그리고 아기 코뿔소의 30m 트랙이 된 이곳은 치고, 쏟고, 울고, 소리 지르고 그야말로 정글이 되었다. ‘그땐 참 예뻤지…’ 하며 한 아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공연히 윙크를 찡긋 날렸다. 아가는 입을 쭉 내밀더니 고개를 휙 튼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지.” 홀로 중얼거리니 옆에 회장이가 “뭐라고요?” 한다. “아, 오늘 급식 맛있다고, 천천히 먹어.” 하곤 아이들을 쓱 훑어본다. 10분 식사 시간이 끝나가니 엉덩이가 들썩인다. ‘아직 아니야.’ 손으로 앉으라 하니 표정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1분 일찍 보내준다. 보고도 못 본 척, 또 실패다.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정미조 - 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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