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2026.07.30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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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고 규칙적으로 입는 재미에 푹 빠진 봄이었다. 이를테면 삼 곱하기 삼 빙고판 같았다. 1열에 아이보리 트렌치코트, 가죽 블레이저, 네이비 재킷을, 2열에는 검은색 얇은 울 니트, 흰 옥스퍼드 셔츠, 회색 와플티를, 그리고 3열에는 베이지, 네이비, 브라운 면바지를 놓아두고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빙고를 맞추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 성큼 다가온 여름을 앞두고 세탁소로 향한다. 아침에 눈떴을 때 발가락이 꼬들꼬들, 이불이 기분 좋게 사각거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룩한 이케아 타포린 백을 오른쪽 어깨에 둘러메고, 입엔 두유 한 팩을 물었다. 성큼성큼 걷는 만큼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6월을 가벼운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성가신 게 많으면 도통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 큰 마음을 ‘영차’하고 먹어야 하는데, 날씨가 좋으니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어느 기사에선 우리나라의 여름이 지중해성 기후를 닮아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얼마 전 과학 시간엔 ‘날씨와 기후의 차이’를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퍼뜩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기후는 보통 30년 정도의 기온과 바람과 비 같은 날씨를 측정하고 평균을 내서 나타낸다고 하니, 13살 입장에선 뜬구름 같을 것이다. 그럴 때 나이가 많은 선생님으로서 들려줄 이야기가 참 많다. 주로 놀리는 말이다. 예전엔 미세먼지 같은 것이 없어서 학폭도 적었다거나, 러브버그 같은 괴생물체가 날아다니는 일이 없고 장수풍뎅이나 반딧불이를 자주 목격할 만큼 깨끗했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동의한다. 다만 90년대의 5월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정말 ‘공기’가 달랐다. 계절을 막론하고 요즘의 공기는 미묘하게 끈적거린다. 미세먼지 때문일까, 온갖 전자 기기들 때문일까, 기분 탓일까? 이어폰을 따라 흘러간 가요가 귓가로 흐르고, 낡은 앨범 커버가 머리를 스쳤다.

 

“어머 총각.” 나를 총각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 이웃집 할머니시다. 여왕이 행차하시나 싶다. 꾸미길 좋아하셔서 액세서리며 옷이며 신발이며 늘 화려하신데, 오늘은 검은 드레스에 얼굴을 덮는 망사 모자를 쓰시고 거봉 같은 진주가 엮인 목걸이를 차고 계셨다. 평소보다 차분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로테스크한 차림이었다. “아유, 어머님 오늘도 멋쟁이세요.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 하니 “친구가 하나 더 죽었어. 어제. 밤새우고 오는 길이야.” 하신다. 아차, 다시 보니 올검이었다.

 

아직 죽은 친구가 0명인 나로선 ‘하나 더’가 무섭게 느껴졌다. 애송이가 된 기분을 느끼며 “아이구,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밤새셔서 많이 피곤하셨겠어요.” 같은 말을 늘어놓았지만 할머니의 넋두리는 그제야 시작되었다. “요새 망자들 교양이 뭔지 알아? 장례식에 가면 생전에 밝고 환했던 사진들을 대문짝만하게 뽑아서 걸어 놓는다우. 얼마나 예쁘고 보기가 좋아 그래.”라든가, “어제 죽은 걔 남편도 허망하게 간 편이지 뭐. 글쎄 철봉 하다가 뇌혈관이 다 터졌잖아. 보기 흉해 그렇게 죽으면.”이라든가, “우리 집 밖에 상자가 많지? 나도 죽으려고 요새 짐 하나씩 정리한다우.” 같은 이야기를 듣는데 꼿꼿하게 서 있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누가 답을 알려줬으면 하는 그런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할머니는 불편한 왼다리를 절며 저벅저벅 집을 향했다. 그녀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갓집 귀퉁이에서 몸을 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성당에서 함께 봉사하던 오랜 친구가 죽었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지 공감되었다. 마지막엔 혼자인 집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실까 싶어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허참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읽고 깊은 우울에 빠진 적이 있었다. 허참갈비의 단골이거나 가족오락관에 방청을 갔다거나 하는 일 없이 오직 브라운관 너머 “몇 대 몇~!”을 외치던 그를 본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가족오락관은 개편에 맞추어 방송하는 요일과 시각을 여러 번 바꾸었고, 여자 진행자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경우도 있었다. 늘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은 허참 아저씨뿐이었다.

 

그땐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이 상을 펴놓고 저녁을 먹었다. 고슬한 밥 위에 고추장 양념에 졸인 오징어채를 얹고 조미김으로 싸 먹는 걸 좋아했다. 장난기가 올라오는 날엔 밥을 가득 퍼서 목이 막힐 때까지 넘기다가 시원한 물로 쓸어내리곤 했다. 엄마표 닭볶음탕, 아빠표 떡볶이가 내 소울푸드였던 시절이다. 둘러앉아 먹다가 내가 동네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술기운이 오른 아빠가 한탄을 주절거렸고, 엄마는 듣기 싫다며 손을 가로저었다. 그럴 때마다 TV에선 허참 아저씨가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허참 아저씨는 우리 가족의 밥친구였다.

 

김영애 고모, 현미 이모,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동안 앓았다. 콧물, 침, 때가 묻은 애착 이불이 영원히 열리지 않는 장롱 속에 봉인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지면 내 유년 시절의 기억도 연기처럼 흩어질까 봐 영화 <코코> 속 미구엘처럼 잊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12년 연출했던 드라마 <고잉 마이 홈>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나쓰야기 이사오 아저씨는 위중한 병세에도 불구하고 극 중 장례식 장면을 찍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예행연습이 될 거야.” 그리고 화면에 나오지 않는 관 속의 장면까지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감독의 에세이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서 나쓰야기 이사오 아저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가 연기한 그 장면을 보며 한동안 멍한 감정이 이어졌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을 연기하는 장면에 압도당했달까?

 

삶을 살아가는 생의 각오가 있다면, 죽기 위한 사의 각오도 있으리라. 모든 망자는 저마다의 각오를 품었을 테고, 남은 사람들은 그 각오를 끌어안고 살게 된다. 아앗,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발을 접질리고 말았다. 밀린 빨래를 맡기러 세탁소에 가는 길이었는데 너무 심각해진 것이다. 한여름이 거의 다 왔다. 하지가 얼마나 남았나 봤더니 356일 남았다. 9일 전이 올해의 하지였으니 내일은 7월의 시작이다. ‘어떤 각오로 남은 일년을 보낼까나~’ 게으르게 생각해 봐야겠다.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장키키-Tomato Marinade (feat. Yoon Hyeo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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