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느슨한 연대 4회차 모임 공지입니다.

느슨한 연대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너는 뭐 그렇게 유난이니?

2024.04.22 | 조회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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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글쓰기 좋은 질문과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큰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은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완전한 소멸로 이어진다.

부디 우리에게 지혜가 있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우디 앨런

 

 요즘의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연차가 쌓이면서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다. 회사 생활이 편해졌다기 보다는, 조직의 생리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영역과,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에 경계선이 명확해졌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 회사라는 공간도 그렇게까지는 불행하지는 않다. 월급 받으러 가는 게 죽으러 가는 건 아닌데,  왜 그리도 비장하게 다녔는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아주 많이 봤다.  당시의 나는 회사 생활에도 정답이 있는 줄 알았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녀?"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움츠러들었다. 매일 각 잡힌 구두와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지하철에서 급하게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그게 더 좋은 직업인인 줄 알았으니까. 

 

돌이켜보면 억압적인 환경을 더 무겁게 만든 건 나였다. 회식장소에 예민한 상사를 위해 '회식 장소 보고서'를 만들었고, 건배사와 장기자랑을 군말없이 준비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몰래 모자란 술을 채워두었고, 다음 날 아침에 상사의 책상에 숙취 해소제를 올려 두었다. 내가 잘 하려고 노력 할수록 그 노력은 다시 나를 옥죄는 밧줄이 되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스스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퇴사한 직후에 나라는 인간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부모님은 그때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진짜 사나웠어. 악에 받쳐 있었지.'라고 말한다.

 퇴사 직후, 불타버린 초원에 새 잎이 돋아나듯 그 전에는 없었던 주제로 내 삶을 꾸려나갔다. 시작은 '글쓰기'였다. 어린아이가 해변가에서 오후 내내 앉아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것 처럼, 나도 온종일 글을 읽고 쓰며 보낼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글을 메만져 내 생각대로 꾸며내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글쓰기는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혼자 하던 취미가 세상을 향해 잎사귀를 뻗치기 시작한 건 의외의 계기다. 오랜 친구들이 더 이상 친구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K였다.

 

 K는 전형적인 형태의 에코부머(91~96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자식 세대)다. 

부모님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IMF시절 은퇴했다. 남들보다 이른 은퇴였지만 그 집안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부동산 덕분이었다. 대치동 근처에 사두었던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넉넉하진 않지만 알뜰하게 집안의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고, 그런 부모의 기대 속에 K는 기숙형 자사고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즈음에 돈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 원서를 넣는 건 당연한 선택 이었을 것이다.

 

K는 하루 하루가 죽을만큼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꾸역꾸역 평택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국내영업점을 관리하고, 울면서 엑셀자료를 정리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매번 같았다.

여기만큼 돈 주는 데가 어디 있어. 힘들어도 해야지 뭐.

나는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힘들면 그만 둬. 다른데로 이직해서 조금 덜 받고 여유있게 살면 안돼?

 

그러면 K가 대답했다.

넌 참 속도 편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공기업을 그만둘 때 나는 K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버텨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의아했다. 회사를 다님으로서 내가 꿈꿀 수 있는 건, 겨우 중산층의 획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도 나왔고, 열심히 일했는데 여전히 불행한 삶의 챗바퀴를 그대로 돌리고 있었다.삶의 기본값이라는게 이런 것이라면 실망스러웠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길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조금 덜 안정적이고 더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장에 물었다.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새벽에도 밤에도 글을 썼다. 퇴근하고 돌아온 늦은 밤에도 출장을 가는 기차 안에서도 볼펜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글은 내게 대답했다. '응 가능해'하고 말이다.

 

 그 이후 한참이나 K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퇴사 이후 황폐해진 땅은 그새 잡초밭이 되어있었다. 좋은 대학과 연결된 직장을 가진 친구들은 정교한 일본식 정원에 담장을 쌓고 잉어들이 뛰노는 연못을 가꾸었다면 내 정원에는 덩굴손이가 뻗어나가 경계를 허물었다. 오랜 친구들과 나는 같은 가치를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강렬하게 자유를 갈구했다. 오늘 더 행복하고 싶었고 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들의 삶이 정답인 것같아보였지만 동시에 불행해 보였다.

다시 안정적인 트랙 위로 올라가지 않을것이다. 그쪽에서 나를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소설가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게 인물 설정이라고 한다. 성격, 외모, 주변 환경, 습관이 결정된 상태에서 인물은 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이 정해져있다고. 상황이 주어지면 인물의 대응은 소설가의 창작이 아닌, 그 인물이 반응 그 자체인 것이다. 삶에서도 비슷하다. 한 인물의 성향은 바뀌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그저 반응할 뿐이다.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 밑에서 커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정답지에 가까운 직업을 가졌다.  그러니 삶에 대한 태도도 비슷한 게 당연한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들과 더 이상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라는 인물의 성격을 다시 정의하니 단순해졌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고, 주변 인물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멜빵치마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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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카오뱅크 3333-09-4304496 이*림. 35,000원 입금

 2) 카카오톡 채팅방 입장.

👉채팅방 바로가기 : https://open.kakao.com/o/gF7SKCng

 

포함 내역 : 글쓰기 양식, 모임 장소 대관료, 점심식사, 간단한 다과류 혹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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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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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구미언니

    0
    17 day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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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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