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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4회차 모임 공지입니다.

느슨한 연대

끔찍한 사랑 이야기

구독자님은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계신가요?

2024.03.25 | 조회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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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글쓰기 좋은 질문과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정말 에세이가 쓰기 싫었다. 지난주부터 이번 주 내내 그랬다. 일요일에는 도저히 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오후 두 시까지 늦잠을 잤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데도 종아리 근육이 움찔거렸다.

 

 종일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떠돈다. 도대체 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단 말인가. 도대체 내가 무슨 관계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실패의 기억들이 나를 괴롭힌다.

과거에 나를 버렸던 연인이, 부모와 싸웠던 기억이, 인연이 끊어진 친구들이 환영처럼 떠돈다.

 

 


첫 번째 남자친구,

나를 두고 내 친구와 바람을 피던 아이.

 

두 번째 남자친구,

나의 첫 섹스.

 

네 번째 남자친구,

내 야망까지 사랑해줬던 남자.

 

다섯 번째 남자친구,

내게 청혼을 하려고 했던 남자.

그래서 내가 이별을 고해야만 했던 사람.

 

그리고 남편.

나를 키워주는 사람.


 

 글을 쓰려고 앉으면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아픈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 주의 모닝 페이지는 답변을 쓰지 못하고 빈 칸으로 내보냈다. 아무리 해도 솔직해지기 어려웠다.

연재를 그만두고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보낸 공백을 보면 부끄러워졌다.

 

글을 쓰는 사람은 거짓을 말할 수 없다. 가장 밑바닥의 이야기를 건져내어 아름다운 문장의 형태로 내보여야 한다.

구독자가 한 명이던, 백 명이던, 천 명이건 간에 상관없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

 


 결국 남편에게 산책을 제안한다. 우리는 낡은 러닝화를 신고 문밖을 나선다. 둘 다 휴대폰을 두고 집 밖으로 도망친다. 양재천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따스한 봄 날이다. 얇은 자켓 아래 송글하게 땀이 맺힌다.

무너진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나무의 보호대가 되어주었을 비닐은 세월의 흔적에 찢기고 무너져 있다. 온실 안에는 예쁜 꽃 대신 잡초 몇 가닥이 듬성듬성 나 있다.

 오래 신은 러닝화는 내 발에 꼭 맞는다. 스펀지가 눌려 다음 걸음을 위해 발을 뗄 떼마다 기운 빠지는 숨소리가 난다. 피슈우욱. 발걸음은 콘크리트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향한다.

 목줄에 메인 진돗개가 보인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거세게 묶인 철제 줄에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가까이 다가 가려하면 컹컹 짖는 탓에 서둘러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다.

 

냇가에 윤슬이 반짝인다.

시리게 차가워 보인다.

나는 처음 배신당했던 대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H와 나는 과 CC였다. 우리는 일년을 예쁘게 사귀었다.

 

이십 대 초반의 연애가  그렇듯, 친구와 연인 관계 사이를 오갔다. 화이트 데이와 백일 선물을 챙겼고, 남산에 올라가 자물쇠를 달았다. 그는 기념일마다 꽃을 준 첫 남자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진득한 사랑까지는 아니었다. 대학이라는 환경에서 처음 겪는 자유로움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동기들과는 무엇이든 함께했다. 스무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과였다. 녹두거리에서 함께 소주를 마시고, 그 다음날 해장 술을 먹고, 여름엔 다같이 기차 여행을 떠났다.

 몇 안되는 여자끼리는 더 돈독했다. 나는 종종 그들에게 연애 상담을 했다. 소원해진 남자친구에 대해 토로하면, 함께 미팅이라도 가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나를 가장 잘 위로해주던 친구 S와 당시 내 남자친구였던 H는 바람을 피고 있었다.

 

 과CC의 이별은 필연적으로 분란을 일으킨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남자친구H, 그리고  S를 둘러싼 삼각 관계는 순식간에 단과 대학의 이슈로 떠올랐다. 술잔을 기울이며 더 없는 우정을 노래했던 동기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내 편, 네 편, 그리고 방관자.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진 것처럼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 속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나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H와 S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고 나는 '피해자'이니 말이다. 그렇게 세상에 옳고 그름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과 동기들은 우리 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판사 노릇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일을 함구했다. 나의 비참한 이별은 한 달 짜리 가십 거리일 뿐이었다.

 

친구들의 무관심이 이별보다 충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관자 모드로 팔짱을 끼고 앉았다. 사람들은 내 인생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새롭게 고찰해야 했다. 친구란 무엇인가. 연인이란 무엇일까. 모든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진짜 중요한 건 무어란 말인가.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엔 나 혼자만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내가 사람을 사귀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모든 걸 쏟지 않았다. 마음을 늘 반으로 쪼개어 썼다.

남자친구에게 알려주지 않고 내 시간을 보냈다.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 운동을 했다. 연인 관계가 내 삶을 모조리 차지하면, 그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 내 인생이 엉망이 된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다 헤어지더라도 늘 돌아갈 곳이 두었다. 

 

서른이 되었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혼자만의 세계를 가꾸는 걸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가끔 나는 온 마음을 다 바쳐 누군가를 사랑하는 꿈을 꾼다. 남편을 위해 죽는 상상을 한다. 아마 평생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남편과 맞잡은 손에도 땀이 맺힌다. 찐득한 손을 바지에 슥 비비고는 다시 꼭 잡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둘만의 데이트 시간이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도 서로를 꼭 껴안고 이마에 뽀뽀를 한다.

 

길을 걷다가 흑염소를 보았다. 서울 근처에서 애완용 흑염소라니. 아마도 흑염소즙을 먹으려고 키우는 것 같았다.

차마 염소의 눈을 보고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우리는 서로의 귀에 속삭인다. 싱싱한 풀을 뜯어 염소에게 주면서, 작은 소리로 흑염소즙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이란 모순이 가득한 것.

 

 우리는 과천을 향한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가족 단위의 자전거 무리가 눈에 띤다. 부부와 쏙 닮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달린다. 행복한 가정을 풍경화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우리도 얼른 아이를 낳고 싶다. 너와 나를 꼭 닮은 아이는 어떨지 상상한다.

 

행복한 와중에 눈물이 난다. 오늘처럼 함께 하는 주말이면, 이 아름다운 사랑도 언젠가 변할까 겁이 난다. 행복했던 만큼 비참해질까봐 두렵다.

 

반 쪽 짜리 마음은 사실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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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느슨한 연대2회차 참여자분들에게 드리는 공지입니다.

ㅇ 느슨한 연대 2회차 주제 : 관계 (연애/결혼)

ㅇ 일시 : 2024년 3월 30일 오후 5시 30분 ~ 저녁까지.

 

이번 주제 '관계' 에는 어떤 글을 써서 만나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공지가 늦어졌어요. 주말에 종일 2만보를 걸으며 생각해봤는데, 정답이 없는 게 정답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유 양식으로 내가 가진 고민을 글로 풀어주세요.

관계의 대상은 다양합니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 자녀, 부모.. 아주 지긋지긋한 옛날 사건도 좋고, 최근에 겪었던 끔찍한 이별 이야기도 좋습니다.

(질문) 당신이 가진 '관계'에 대한 고민을 A4용지 반 페이지 정도에 자유롭게 적어서 공유해주세요.

3월 28일 목요일 자정까지, ‘느슨한 연대 café- 독자 답변 모음’ 폴더에 숙제글을 업로드해주세요. 업로드 시간이 조금 촉박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직 마감을 한 건 아니어서, 추가로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블로그 게시글을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초대장 바로가기 : https://blog.naver.com/pp_earthworm/223384074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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