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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쿠만>: 유치함과 담백함 사이

2022.06.07 | 조회 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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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영화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요

🗓️유난히 길었던 이번 주말, 구독자 님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 국제 도서전을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다양한 책들을 만나보고, 비록 먼발치였지만 가수 대신 작가로서 함께한 장기하 님도 볼 수 있었어요! 

장기하 작가 님의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

오늘 하루,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자전거 타기예요. 구독자 님은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래, 가끔은 이렇게.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가 세상에 등장하기도 전, 우리에게는 만화방이라는 OTT 서비스가 있었다. 옛날 책은 200원, 신권은 500원이라는 아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합리적인 가격.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광대한 콘텐츠 양. 그야말로 가격과 서비스를 모두 잡은 이곳은 일주일 용돈이 2천 원이던 시절 PC방과 항상 용돈 지출 순위 1, 2위를 다투는 곳이었다. 

<아이실드 21>,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REBORN!>, <명탐정 코난>, <데스노트>, <나루토>. 당시 즐겨보던 만화책에는 모두 '소년 점프'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했다. '점프'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지만 점프의 세계들이 좋았다. 우정과 노력이라면 안 되는 일은 없었고, 평범한 일상도 비범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그 세계들이 좋았다.

시간이 흘러 만화방이 있던 자리에 대형 브랜드 슈퍼마켓이 들어서고, 소년 점프가 만화 잡지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됐을쯤, 자연스럽게 만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렇게 잊혀진 줄 알았던 만화방은 오랜만에 만화 카페가 되어 돌아왔지만, 예전의 그 느낌과는 달랐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던 만화방과는 달리,  만화카페는 돈을 내고도 눈칫밥을 먹으며 잠시 머물다가 가는 남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와 만화의 관계도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어느 한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됐다. 영화의 제목은 <바쿠만>. 예고편에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가 등장했다. '소년 점프' 그리고 '우정, 노력, 승리'라는 소년 점프의 슬로건이자, 영화의 메인 테마.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솔직히 영화관에서 볼 정도의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만화방에서 기대감 없이 처음 보는 만화책을 습관처럼 꺼내 보듯이, <바쿠만>을 보게 됐다.  

동명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바쿠만>은 전형적인 소년 만화 클리셰를 따라가는 영화다. 줄거리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두 고등학생이 점프에 만화 연재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 

무작정 해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뭉치는 주인공, 숱하게 노력하는 그들에게 절망을 심어주는 압도적인 능력치의 라이벌,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꿈을 응원하는 히로인까지. 단순한 설정만큼이나 주인공들도 단순하다. 만화를 시작하는 데 거창한 동기 같은 건 없다. 그냥 재밌으니까, 그러니까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그 단순함에 자꾸 눈길이 간다. 

<바쿠만>은 전혀 진지할 생각이 없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알고, 그 한계라는 테두리 내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려낸다. 소년 만화라는 클리셰를 애써 극복할 생각도,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깊고 섬세한 연출을 하려는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이라면 분명히 혹평이겠지만, <바쿠만>에서는 이런 평가들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어설프게 다른 대중 영화들의 장점을 흉내 내지 않고,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그것들을 만화적인 연출로 풀어낸다. 고등학생 주인공 둘이 힘을 합쳐 니즈마라는 거대한 장벽의 라이벌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거나, 슬램덩크의 유명한 나레이션을 활용하는 등 기발한 연출들이 눈에 띈다. 

20권짜리 단행본을 119분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생략하고, 철저하게 주인공들의 이야기로만 극을 진행해 나가는 과감함도 '영화 보는 맛'을 더해준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 만은 않다. 누군가는 자기만족, 또 누군가는 돈과 명예. 이유는 다르지만 저마다 순수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때로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툭툭 내뱉지만 깊이 있는 대사들은 방심한 사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특히 '만화는 독자가 봐줘야 만화다.'라는 삼촌의 말은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모두 조금은 찔렸을 날카로운 대사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일 수 있다. 

'잘 만든 영화'는 정의 내리기 쉽다. 배우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주인공들의 감정 선이 납득이 되고, 연출이 훌륭하고, 생각할 만한 메시지도 가지고 있는 영화 등등. 그러나 '좋은 영화'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좋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그래서 영화를 리뷰하는 것은 참 어렵다. 객관적인 기준과 주관적인 기준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 가끔은 그 객관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의 주관을 버리기도 한다.  

냉정하게 보면 <바쿠만>은 좋은 영화 일 수 있겠지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식상한 설정과 평면적인 캐릭터, 진부한 플롯. 그러나 때로는 유치한 것이 더 큰 감동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바쿠만>은 그런 영화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추억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작은 열정을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

의욕을 잃었던 이들이라면 투지 넘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것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잃었던 이들이라면 다시 뭔가에 열정을 태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런 메시지들을 어설프게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단순하고 가볍게 툭, 던진다는 점이다.  

우정, 노력, 승리. 복잡한 시대일수록 때로는 이런 유치한 메시지들이 오히려 마음을 움직인다. 

에디터 혀기
에디터 혀기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구독하는 OTT 서비스만 6개


🍿 이번 주 볼거리

안나는 요양 차 방문한 바닷가 마을의 낡은 저택에서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 ‘마니’를 만난다. 안나는 저택에서 마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날 낮에 찾아간 저택은 아무도 살지 않은 폐가로 변해있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이번 주에 추천할 영화는 (아직까지) 지브리의 마지막 2D 애니메이션 영화 <추억의 마니>다. 요즘 트렌드인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서정성과 아련함이 백미인 작품이다.

다만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중반부터 ‘아 이렇게 흘러가겠구나’를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상당하다. 사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영화의 주제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엔딩 때문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리고 특유의 유러피안 감성 때문에 영어 더빙판으로 보는 것도 추천한다. 디즈니에서 더빙한 지브리 작품인 만큼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

<아케인>으로 자신의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헤일리 스타인펠드’, 아카데미 수상자들인 캐시 베이츠와 엘렌 번스틴 등. 명배우들이 참여해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스포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사뭇 다르면서도 ‘역시 지브리는 지브리구나’라고 감탄할 만한 영화다. 

에디터 우기
에디터 우기

영화와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24살 너드.

취미로 가끔씩 영화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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