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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라곤 나 하나뿐인 시골 버스 정류장.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아는 일본어와 번역기를 총동원해 할머니들께 물어봐도 "글쎄..." 하는 표정.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간다고 했지만, 도자기 마을에 대한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구글 지도에 나와있던 버스 시간(사실 이것조차 확신이 없었다)은 다가오는데 이대로 허탕인가 싶어 아찔했다.
그때였다. "도코니 이끼마스까? (어디 가세요?)"
구세주처럼 나타난 젊은 역무원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하사미!" 그녀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사미?" "아노..." 지역명을 처음 듣는 것인지,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인지 몰라, 당황하는 역무원 앞으로 그동안 하사미에 대해 공부했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도자기', '장인', '도예가', '작은 마을' 등등의 단어들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여주었다. 그러기를 몇 분,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리타!"
아리타는 하사미 바로 윗동네였고, 현지인들에게는 하사미보다 아리타-이마리 라는 동네로 알려진 것 같았다. 그걸 알도리가 없는 나는 애꿏은 하사미만 외쳤던 것.
그녀가 매뉴얼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리가 백발인 베테랑 직원이 안쪽에서 나왔다. 둘이 알 수 없는 말로 한참을 상의하더니, 백발의 직원이 나를 보며 자글자글한 주름이 깊게 패인 검지를 꼿꼿이 펴 보였다.
"아리타-이마리, One! One!"
아리타-이마리라는 곳으로 가는 방법이 하나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는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돌아오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습니다. 막차 시간, 3시 20분. 그거 놓치면 못 돌아와요."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시간 남짓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뛰어 도자기 박물관으로 향했다. 닫았다. 공방? 닫았다. 카페? 닫았다.
'아... 망했나?' 슬픈 마음으로 돌아선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숨이 멎었다. 고즈넉한 동네, 건물마다 피어오르는 화덕 연기,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 마을 전체가 거대한 공방이었다. 그 때, 큰 나무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뒤로 돌아 작은 오솔길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여기 뭐 있을 거 같아'
'여기 뭐 있을 거 같아'
여행가의 직감이 발동한 순간, 나무 밑으로 담쟁이 덩쿨에 싸인 예쁜 카페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찾았다는 마음에 흥분은 최고조. 너무 기쁜 모습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카페 주인이 당황한듯 싶었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것 같은 카페, 여기에 줄지어 있는 도기로 만든 커피 도구들, 그리고 커피향기. 부풀어오르는 커피빵(거품)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 맛에 여행하지'
일본 특유의 커피 한 잔을 내릴 때도 장인 정신으로 내리는 그 의식과 같은 행위를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한잔의 따뜻한 커피가 내 손에 들렸다.
"도조~" (여기있습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내가 꿈꾸던 곳에서, 내가 여기 오게된 이유인 도기 드리퍼와 잔에, 여기 방식으로 내린 커피라니!'
'이제 됐다. 여한이 없어. 도자기 못보고 그냥 가도 돼.'
동화 같던 커피집에서 따뜻한 한 잔을 마시고, '그 두 개의 가게'로 향했다. 가까워질 수록 바빠지는 걸음과 방금 전의 그 고백이 멋쩍을 정도로 상반된 속마음 '제발, 열려있어라. 제발'
다행히, 두 곳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세일: 50% 할인
이럴수가. 방문객이 없는 비수기라 '특가 세일(セール)' 중이었다. 완벽한 품질의 아리타-하사미 도자기를 말그대로 반 값에 쓸어 담았다. 불확실성을 떠안고 개척하는 자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예쁜 잔들과 그릇들이 너무 많아 무엇을 고르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지라는 마음으로 내 커피생활을 함께할 친구를 꼼꼼히 선정했다. '누구를 놓고가지(그릇 말이다)' 하며 아쉬움에 들었다놨다를 몇 번하자 내 손에는 두둑한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숨바쁜 친구 고르기(이것도 그릇 말이다)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니, 1시간이 남았다. 그때, 타베로그에서 스쳐지나가 듯 봤던 '인생 스시집' 리뷰가 떠올랐다.
- "내가 먹어본 스시 중 최고. 샤리(밥)가 살아있다."
- "초'밥'이 왜 초밥인지 알게 되는 곳."(스시의 어원인 酸し와 すめし를 이용한 유희 같았다.)
- "서비스 나가사키 짬뽕도 일품."
버스는 없었다. 걸어서 20분.
그래도 모든 게 잘풀려 신난 마음으로 잔과 그릇이 가득찬 쇼핑백을 들고 땡볕을 신나게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젠(善) 스시'라는 작은 간판을 만났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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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
아늑한 남쪽나라가 떠오르는 여정입니다 커피향이 퍼지는 듯
화이트크로우
사가, 아리타-이마리 라는 동네는 한 번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단순 커피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고요하면서도 친절함이 느껴지는 동네였어요. 사람냄새가 없는 요즘 시대에, 아직도 때묻지 않은 지방의 향기를 그대로 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글 적다보니 저도 다시 가고 싶어지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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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블
저라도 버스에 탔을 듯ㅎ 다만 맘 편히 여행하기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화이트크로우
크크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에 미쳐있으니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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