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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인생은 파노라마처럼 - 굴업도, 인천] Ep. 1 하루에 한 번 오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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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여행은 치킨집에서 시작됐다.
생존신고 같은 자리
잘 살고 있냐.
요즘은 어떠냐.
그런 말들을 맥주 한 잔에 조금씩 풀어놓던 밤.
대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였다. 벌써 16년.
숫자로 세어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나.
이야기는 몽골 여행으로 흘렀다.
그때 참 좋았지.
그 말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오래 남았다.
"형. 우리 여행이나 한 번 갈까."
그렇게 정해졌다. 한번 해본 적도 없는 백패킹 여행이.
바쁜 일상에 치여
계획형 인간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이상하게 여행 앞에서는 늘 대책이 없어졌다.
무심코 받은 전화기 너머로 형의 친근하면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타고 들어온다.
"아이고 최사장~ 내일 아침인거 알제? 짐 다 쌌나!"
(형은 16년 째 서울에 올라와있지만 여전히 부산 사투리를 쓰는 뼛속까지 부산사람이다. 물론, 본인은 표준어를 쓴다고 주장하지만)
전날까지도 아무것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너무 바빴다.
뒤늦게 다이소를 돌았다.
매트는 다이소에 없어 급한 마음에 밤늦게 당근을 뒤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게 여행은 늘 그랬다.
내 뜻대로 된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긋난 자리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생겼다.

출발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창업한 지 1년 반.
동업자와 함께한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가 3번째 기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인들과 SNS를 통해 어찌저찌 영업하여 어떻게든 달려왔다.
그런데 이번 기수는 달랐다.
지인들에게 부탁하고, 아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방식은 거의 끝나 있었다.
이제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야 했다.
그런데 아직 손볼 곳이 많았다.
우선순위도 서지 않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계속 엉켰다.
무엇보다 뉴스레터가 마음에 걸렸다.
루틴처럼 쓰던 글.
눈앞에 있는 일.
그걸 발행하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짐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 하는데.'
그 말들이 짐들로 터질 듯하게 채워진 가방보다 먼저 어깨 위에 걸렸다.
인천항은 이상할 만큼 한적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넓은 대합실에 발소리가 조금 늦게 따라왔다.
바닥은 깨끗했고, 공기는 비어 있었다.
항구 쪽으로 나가자 기름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과 섞인 냄새였다.
배는 하루에 한 번뿐이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하루에 한 번.
놓치면 끝. 타면 돌아올 수도 없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지가 천천히 밀려났다.
건물들이 낮아지고, 사람 없는 항구가 뒤로 빠졌다.
나는 잠깐 휴대폰을 봤다.
별다른 알림은 없었다.
그래도 마음은 계속 육지 쪽에 걸려 있었다.
알림이 없어도 마음 속에 무언가 자꾸 울리는 것 같았다.
할 일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그래도 이미 배는 떠났다.
바다는 생각보다 넓었다.
파도가 배 옆구리에 부딪혔다.
바람에 짭조름한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물살을 가르며 시원하게 전진하는 우리 옆으로
이름 모를 섬들이 많았다.
'저기에도 사람이 살까.'
저 작은 땅에도 아침에 밥을 짓고, 빨래를 널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친구도 바다를 보고 있었다.
육아와 일상에 조금 지친 얼굴이었다.
그가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탁 트인다는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내 안쪽은 여전히 근심들로 가득 차 있다.
가방 안에는 준비가 덜 된 장비들이 있었고, 머릿속에는 발행하지 못한 글이 있었다.
동업자에게 맡겨둔 일들도 있었다.
도망치는 기분과 떠나는 기분이 번갈아 올라왔다.
그래도 바다는 계속 넓어졌다.
육지는 계속 작아졌다.
나는 결국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배 안에서 남은 글작업을 조금 하다가 잠깐 졸았다.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걸까. 눈을 뜨니 내릴 때가 되어 있었다.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이 훅- 하고 지나갔다.
배 한 척 정박할 만한 작은 항구 앞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마중
까맣게 그을린 마을 아저씨들.
트럭.
짐을 싣는 손길.
하루에 한 번 들어오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기다려준 얼굴들.
그 틈에 어린 소녀 하나가 있었다.
마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트럭에 짐을 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장님댁 앞에 내려주었다.
여기서는 도착하면 이장님 댁에서 먼저 밥을 먹고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데, 어떤 사람이 차를 슬쩍 세웠다.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이장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장님이 그를 발견하자 목소리가 커졌다.
"뭘 엿듣고 그래!"
그 사람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사라졌다.
나는 순간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이 섬 안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정들이 있나보구나.'
하지만 곧 밥 냄새가 생각을 덮었다.

정말 고즈넉한 가정집.
문을 열자 밥 짓는 냄새와 칙칙- 압력 밥솥이 일하는 소리가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다.
없던 허기가 생겼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우리를 앉혔다.
어서 앉으라고 했다.
곧 밥을 주겠다고 하신다.
김 볶음.
쥐치채 볶음.
매운탕.
쌀밥.

별다른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입 안에 밥이 들어가자, 내가 배고팠다는 걸 그제야 안다.
그때 문득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흑백사진
커다란 흑백사진이었다.
보존 상태가 이상할 만큼 좋았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수수한 옷차림.
긴 머리.
웃는 얼굴.
처음엔 아드님과 며느리인 줄 알았다.
아니면 따님과 사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수록 낯이 익다.
아까 우리를 데려다준 이장님과 닮아 있다.
여쭤보니 젊었을 때의 두 분이란다.
나는 사진과 거실 안의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얼굴에는 내 나이 뻘의 젊고 풋풋한 남녀.
지금 눈앞의 얼굴에는 시간이 촘촘히 앉아 있었다.

시간
나는 늘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삶이 짧다는 것도 애어른마냥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한 공간에 놓여 있는 건 처음이었다.
사진 속의 젊은 두 사람.
밥을 차려주는 지금의 두 사람.
그리고 옆에 앉은 16년 지기 친구.
우리는 대학에 막 들어와 매일 밤 낄낄대던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한 사람은 아이를 키우고, 한 사람은 회사를 이끌고 있었다.
섬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사람만 이렇게 지나와 있었다.
사진을 한 번 더 봤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하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배를 타고 육지를 두고 온 줄 알았는데,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건 바다가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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