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커튼 뒤의 식사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다른 시간, 다른 문화

2026.04.18 | 조회 34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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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에디터 조나단

사우디의 낮은 마치 정지된 화면 같았다.

 

잔혹한 라마단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몸.

문을 열자 훅 하고 온기가 돌았다.

이 기분 좋은 따뜻함은 1초도 안 돼 끝났다.

이내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쏟아졌다.

잠깐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거리는 차들만 쌩쌩 달릴 뿐 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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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고양이만 있었다. 고양이마저 '너흰 뭐냐옹?'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길에는 고양이만 있었다. 고양이마저 '너흰 뭐냐옹?'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잔인한 라마단 기간의 낮.

식당도 마트도 카페도 문을 열지 않았다.

거리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금지됐다.

간혹 마주치는 현지인들.

그마저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입에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질겅거렸다.

그들은 뙤약볕 아래를 걷는 이방인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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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지면 갈 곳이 없었다.

식사를 해야 할 때면 여지없이 숙소로 돌아갔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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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숨어서 먹을 장소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달 앱을 켰다.

놀랍게도 "영업 중" 불이 들어온 가게들이 보였다.

'휴, 살았다. 배달은 하는구나.' 외국인들 때문인 걸까.

밀려오는 안도감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우리는 팀홀튼 샌드위치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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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사람들에게 혹여라도 들킬까, 숙소의 커튼을 틈 없이 닫았다.

한낮의 햇빛을 가린 방안은 어둑했다.

어둠 속에서 도너츠를 씹으며 실없이 웃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꼭 죄를 짓는 기분이라면서.

'사실 이들도 몰래 이렇게 먹고 있는거 아니야?' 라는 농담을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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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약속

거래처와의 기대했던 첫 만남.

파트너는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뒤늦게 나타나서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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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차 나지 않았다.

'이거 지금 기싸움하자는 건가?'

한국의 속도에 익숙한 우리는 기가 찼다.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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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밤이 되어 야경을 보러 나섰다.

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진한 향유 냄새가 진동했다.

모래 먼지와 뒤섞인 그 향이 사막의 밤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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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

줄을 서고 기다릴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유령 도시 같던 낮은 온데간데없었다.

모든 식당과 놀거리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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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야 고성의 흙벽엔 붉은 조명이 넘실댔다.

아라비안 나이트 노래가 귀에 들리는 듯한 장면.

그 조명 사이로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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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고 생기있는 눈앞의 장면에 꿈꾸는 것 같았다.

밤에 다시 현지 파트너를 만난 날.

연락이 바로바로 닿았다.

답장은 째깍째깍 왔고, 30분도채 늦지 않았다.

오전의 그 펑크에 가까운 지각은 대체 무엇이었나.

(오전의 두 시간에 비하면 천사 같았다.🥺🤣)

그저 밤에 맞춰 사는 사람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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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코너에서 아랍어로 내 이름을 적어주었다.
캘리그라피 코너에서 아랍어로 내 이름을 적어주었다.

 

금식

왕가의 저녁 만찬에 초대받아 가던 길.

반짝이는 하얀 옷**을 입은 이들이 가득했다.

금식시간이 마치기도 전부터 분주하게 양껏 음식을 떠다가 산처럼 쌓아뒀다.

다들 시계를 보며 움찔움찔하더니, 금식 종료 시간이 되자 박수를 치며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

'이럴 거면 금식을 왜 해?'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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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앞엔 수십 가지 터키쉬 딜라이트.

달콤함이 입안을 채우자 묘하게 마음이 풀린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그제야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내 시계를 이곳의 시간에 전혀 맞추지 않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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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날, 공항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한 남성은 태연하게 베이글을 씹고, 검은 아바야***를 두른 여성은 커피를 들이킨다.

며칠간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풍경.

'우리도 먹어도 되나...? 커피 마시고 싶은데...'

불안한 마음에 스타벅스 직원에게 물었다.

"라마단인데 정말 먹어도 되나요?"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공항은 예외예요. 여행자는 자유롭거든요."

처음 현지인의 입으로 듣는 명쾌한 규칙.

'그렇구나. 내가 아는 이슬람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했구나.'

여긴 스타벅스 컵조차 화려하다.
여긴 스타벅스 컵조차 화려하다.

 

나는 내 좁은 시야, 나의 경험으로만 세상을 재단했다.

오전 미팅의 지각을 무례한 기싸움이라 오해했고,

밤의 성대한 만찬을 보며 그들의 금식을 얕잡아봤다.

수천 년간 척박한 모래 위에서 다져진 그들만의 룰, 이들만의 문화.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며칠 스쳐 지나갔다고 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제 좀 알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분명 또 다른 낯선 조각이 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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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이란 애초에 완벽히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

내 상식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낯섦을 수용할 빈자리를 늘 비워두는 것.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그 겸손한 여백 속에서만,

우리는 서로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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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주: 나중에 찾아보니 '미스왁(Miswak)'이라 부르는 나뭇가지였다. 입안의 위생을 위해 양치 대신 계속 씹고 있는 일종의 에티켓이라고 한다.
**저자주: 사우디 남성들의 전통 의상 '토브(Thobe)'. 하얀색은 순결과 평등을 상징하며 사막의 열기를 막아준다고 한다.
***저자주: 여성들이 입는 검은 긴 옷은 '아바야(Abaya)'라고 부른단다.

 

"한국맛"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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