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공지]
화이트크로우 발송 시스템 이전 안내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구독자 여러분. 화이트크로우입니다.
저희 글에 관심가져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는 5월 20일부터 뉴스레터가 기존 메일리 플랫폼을 떠나
저희의 독립된 공식 홈페이지(thewhitecrow.co) 시스템을 통해 발송될 예정입니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지금과 같은 hello@thewhitecrow.co로 동일합니다.
다만, 발송 서버가 변경되면서 저희 메일이 스팸함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놓치지 않고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도록,
지금 보고 계신 메일 화면 우측 점 세 개(⡆) 버튼을 눌러 주소록에 추가하시거나
제목 옆의 별표(★)를 한 번만 눌러주세요.
새로운 공간에서도 더 선명해진 자기 발견의 여정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시간, 같은 질문] Vol.3 선 - 사우디아라비아
To read this post in English and keep up with future articles, please check out the author's blog.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손닿을 거리에 있었다.
한 발짝만 걸으면 편의점이 나오고, 두 발짝이면 카페가 나왔다.
아등바등
출근 첫날부터 숨이 찼다. 사우디에서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사무실은 옛 증권거래소 같았다.
고성이 오가고,
모니터 불빛이 번쩍이고,
모두가 쉬지 않고 달렸다.
밀려든 업무를 처리하며, 라마단의 정적 따위는 까맣게 잊혀 갔다.
탕비실엔 회사 간식이 넘쳐났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아무 것이나 집어 먹었다.
커튼을 치고 큭큭 거리며 몰래 씹던 도너츠가 우스워졌다.

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었다.
너무나 깔끔하고 깨끗한 도시.
옆가슴이 반쯤 드러난 옷을 입어도 아무도 눈치 보지 않았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무엇이든 입을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나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자정이 되기 직전에서야 야근을 마치고 나왔다.
텅 빈 거리를 걸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왜 이 자유가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하는 걸까?'
'왜 오히려 그들이 더 자유로워 보였지?'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던 그 뙤약볕 아래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던 그 라마단의 낮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박수를 치고, 산처럼 쌓아둔 음식을 우걱우걱 먹던 그 사람들.
처음엔 혀를 찼던 나의 모습.
'이럴 거면 금식을 왜 해?'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들의 밤은 환했다.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뛰어다녔다. 새벽 1시에도 거리는 웃음으로 가득 찼다. 캘리그라피 코너에서 내 이름을 아랍어로 적어주던 낯선 사람의 미소.
제한이 있었기에, 풀려난 순간이 축제가 되었다.
멈춤이 있었기에, 움직임이 살아 있었다.

대추야자
사우디에서 가져온 대추야자.
회사 동료들을 주기위해 선물용으로 한아름 사들고 왔다.
탕비실에 그릭 요거트(이건 오다가 상할까봐 한국에서 샀지만)를 함께 꺼내놓았다.
현지에서는 이렇게 대추야자를 요거트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동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겉이 바삭한 대추야자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끝까지 낯선 표정.
"이렇게 찍어먹으라고요? 진짜 요렇게?"
한 명이 조심스럽게 요거트에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눈썹이 올라갔다.
"음, 머리가 탁 뜨이는 맛인데요? 잠이 확 깨요."
"오! 달콤한 요거트 아이스크림 같다!"

다들 웃고 즐거워했다. 한국에서는 먹어보기는커녕 들어보기도 힘든 과일.
"대추맛 나요?" 하고 묻던 동료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음식 하나만으로 문화가 전해지는구나.
그리고 불현듯 떠올랐다.
사우디에서 만난 사람들이 손님에게 가장 먼저 내어주던 것. 대추야자.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무언의 인사.
낯선 이방인에게 건네는 첫 번째 다정함.
지금 내가 탕비실에서 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하던 것이었구나.
탕비실에는 과자가 넘쳤다.
그런데 동료들의 눈이 반짝였던 건, 이 낯선 과일 하나 앞에서였다.

선(Lines)
그 뒤로 자꾸 생각이 이어졌다. '선'에 대해서.
살면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 마라. 건너지 마라. 넘지 마라.

어릴 적 부모님이 그었던 선.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었던 선.
회사에서 상사가 그었던 선.
종교가 그었던 선.
법이 그었던 선.
심지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내 안에서 스스로 올라오는 선.
나는 그 선들이 답답했다. 더 나아가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었다.
넘지 말라고 하면 기어이 넘고 싶었다.
그것이 자유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엔 왜인지 사우디의 거리가 자꾸 떠오른다.
뙤약볕 아래 텅 빈 도로.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선이 그어진 곳.
하지만 해가 지자마자 터져 나오던 박수와 웃음.
그 선 안에서, 그들은 오히려 충만해 보였다.

제한은 억압이 아니었다.
수천 년간 척박한 모래 위에서 다져진, 자신과 서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
우리는 모든 것이 허용된 세상에 산다.
언제든 먹을 수 있고, 언제든 마실 수 있고, 언제든 일할 수 있다.
그래서 멈추지 못한다. 멈추지 못하니, 소진된다.

어릴 적엔 몰랐다.
부모님이 그었던 그 선이,
선생님이 그었던 그 선이,
내 안에서 올라오던 그 선이,
사실은 나를 가두려는 벽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울타리였다는 것을.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우리에게도, 스스로 정한 멈춤이 필요하다.
그 멈춤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
커튼을 닫아야 먹을 수 있었던 그 도시에서,
열려 있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라는 걸 배웠다.

(시리즈 [다른 시간, 같은 질문 - 사우디아라비아] 마침.)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