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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넘으면 끝이다.
그 사실 하나가 틸리초 호수를 오를 때와는 다른, 마지막 한 줌의 힘을 짜내게 만들었다.

해발 5,000미터를 넘어섰다.
산소 농도는 평지의 절반.
평소 연료의 절반 밖에 얻지 못한 탓인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헐떡 거렸다.
숨이 턱 끝까지, 아니 머리까지 차올라 이내 멍해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아버지가 걷고 계셨다.
거친 숨소리가 풀무질하듯 들려왔다.
걸음은 느려졌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풀릴 듯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예순여섯. 안락한 소파에 앉아 쉬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을 나이.
그러나 아버지는 스스로 이 고통의 길을 선택했고, 자신의 한계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서 나는 인간 가장 본연의 나약함,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무언가를 동시에 보는 듯 했다.
무슨 단어에 가장 가까울까. 그래, 경외감.
평생 기업을 일구며 숱한 위기를 넘겨왔을, 내가 존경하는 창업가의 투지가 그곳에 있었다.

가장 높은 곳. 그 곳을 향한 의식
마치 이 자체로 고대의 성스러운 의식 같은 장면.
모든 에너지를 태워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뒤,
다음 세대에게 불씨를 넘겨주려는 숭고한 몸짓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지금 온몸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계셨다.

매 순간이 한계였다.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사실 머리가 멍해서 못느끼던 것이지 감당할 수 없는 통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던 그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빠, 할 수 있어요! 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냅시다!"
그것은 아버지를 향한 응원이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지 않았을까.
마치, 나에게 거는 주문같이 되뇌이는 것.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
우리는 누가 누구를 끌어주는 보호자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버지는 나의 젊은 의지를 붙잡고, 나는 아버지의 노련한 투지를 붙잡고.
서로의 호흡에 기대어 걷고 또 걸었다.

거센 칼바람이 불어왔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우리를 밀어내려 했다.
우리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바람을 뚫고 나아갔다.
마치 영적인 바톤을 주고받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성소(聖所)로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마침내,
오색의 룽다(Lung-ta)가 미친 듯이 펄럭이는 곳. 표지판의 숫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Thorong La Pass, 5416m
우리는 그곳에 서 있었다. 함께.
(5부 마침. 6부에서 계속)
* 월요일에는 <특별편 : 20년 지기를 보내고, 요코하마에서 노래하다> 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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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
감동입니다. 생생하네요
화이트크로우
생생함을 전하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전달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고대 문헌에나 나올 것 같은 신성한 의식 같았답니다. 높은 산에 가보니 영험(?)하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독특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서 다들 그렇게 높은 산에서 무언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적곤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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