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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짜리 고요함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작은 생명, 바바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녀석이 떠난 자리는 거대했다. 집안 곳곳에 남은 온기, 발소리가 사라진 적막.
그 빈 방의 침묵은 나를 끝없는 슬픔으로 가라앉게 만들 것만 같았다.
그러던 것도 잠시, 더 큰 감정이 뭉근하게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20 년간 조건 없이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였으리라.

독특한 이별법
보통 사람들은 이별 앞에서 침묵과 울음으로 애도한다.
하지만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슬픔도 기쁨도 결국은 소리로 토해내야만 비로소 해소되는 존재다.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만듦에서 응어리졌던 감정은 정리되고, 내면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는다.
삶의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이 순간.
나는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로 이 매듭을 짓고 싶었다.
아니, 이 슬픔을 그리고 감사를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는게 더 맞을까?

익숙한 낯선 곳, 요코하마
기타를 메고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누군가는 "왜 하필 일본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일본은 용기의 시작점이다.

1998년, 엄마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모험을 떠났던 곳.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우리 가족이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던 곳.

소중한 친구를 보내고 다시 혼자서야 하는 지금,
어쩌면 나는 그 용기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곳, 요코하마로 무작정 향했다.

도쿄를 거쳐 도착한 요코하마.
낯선 바닷바람이 부는 거리에 마이크 스탠드를 세웠다.
수많은 무대에 서봤지만, 길거리 버스킹은 오랜만이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려한 조명도, 나를 기다려준 팬도 없는 낯선 거리.
오직 내 목소리와 기타 소리만이 전부인 곳.
첫 곡은 <Way Maker(길을 만드시는 분)>
나의 지난 20 년을 지켜준 길, 바바가 떠난 새로운 길, 그리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
그 보이지 않는 길을 믿으며, 나는 허공을 향해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한 노부부가 조용히 다가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노래를 경청하던 분들이었다.

"노래에... 무언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혹시 어떤 마음으로 부르신 건가요?"
낯선 일본 땅, 길거리 한복판에서 만난 따뜻한 관심이었다.
나는 서툰 일본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요. 떠나보낸 친구에게, 그리고 제 삶에게. 그래서 노래합니다."
그 한마디에 그들의 눈빛이 전보다 우수에 찼다.
마치 내 마음이 생에 처음보는 이 사람들과 온전히 공명된 것 마냥.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해왔다.
"그 마음이 참 귀하네요. 혹시... 저희가 그 노래에 맞춰 함께 해도 될까요?"
기적 같은 앙상블
그 후로 벌어진 일은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나는 기타를 치며 다시 노래했고, 부인은 가방에서 하늘색 천 두 개를 꺼내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코하마의 바닷바람 속에서, 펄럭이는 천은 마치 바바가 뛰어놀던 들판의 바람 같기도 했고, 하늘로 오르는 날개 같기도 했다.
언어도, 국적도, 살아온 배경도 다르다. 마음의 공명줄 위에서, 우리는 낯선 길 위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이 기이하고도 평화로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처음 만난 낯선 이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마치 하늘이 나에게 보내주는 위로처럼,
그리고 "고마웠다"고 말해주는 바바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에필로그: 떠나야 비로소 만나는 것들
20년, 숫자만으로도 느껴지는 긴 세월의 친구 그리고 추억.
바바를 잃었을 때 슬픔은 나를 끝까지 내몰아갔다.
만약 내가 빈 방의 침묵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떠나는 것을 택했다. 익숙한 슬픔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낯선 길 위에서 노래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나아가야 하는 존재.
멈춰 있는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은 것.
막상 한 발짝 떼기가 두려워 어디 한 곳에 고여있고 싶을 때도 있다.
때로는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흐르기를 멈추지 않고 낯선 곳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예상치 못한 기적 같은 만남을 선물 받는다.
요코하마 거리의 바람도, 노부부와의 기적 같은 만남, 그리고 위로 같은 것들 말이다.

삶의 중요한 매듭을 지어야 할 때, 우리는 떠나야 한다.
되려 철저한 고립을 선택하고, 그 곳에서 자신을 마주한다.
소중한 것들을 만나고 작별한다.
앙금같이 가라앉은 예쁜 결정을 안고 다시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그리고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오늘도 빈 방을 박차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든 이들의 용기를 응원한다.

(20년지기 친구가 이 세상을 떠났다. 요코하마 이야기 마침.)
- 이번 주 금요일에는 <히말라야 오디세이>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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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
아니 여행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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