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세상은 돌고 돌아 - 료안지

30년이 지나도 같은 것.

2026.02.21 | 조회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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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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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교토(Loop. Kyoto)] Vol.1 세상은 돌고 돌아 - 료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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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비오는 교토. 료안지에서 젖은 옷을 아랑곳하지 않고 석정*을 바라보았지.
그날 '난 왜 여기와 있을까?' 가 화두였었어."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30년 전, 아빠는 S전기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주재원도 없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떠밀리듯 떠난 일본에서, 아빠도 석정 앞에 앉아 같은 질문을 했던 거다.

그리고 30년 뒤, 나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첨부 이미지

 

 

2018년 9월. 교토.

박사 졸업시험, 논문 제출, 심사. 전부 끝냈다.

숨가쁘게 달려온 레일이 끝난 자리에, 질문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 이제 뭐하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만 쫓았다.

내면의 소리는 닫아둔 채.

그리고 번아웃이 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몸을 이끌고 교토에 왔다.

혼자.

 

 

료안지

석정 앞 나무 복도에 나란히 앉아 돌정원을 바라보는 사람들.

나도 한 자리를 잡았다.

무수한 자갈.

그 자갈들을 가르는 섬세한 홈들. 규칙적인 간격.

밝은 회색빛.

아무것도 없다. 돌과 자갈과 패턴뿐.

첨부 이미지

 

 

처음에는 시시하면서도 재밌는 생각들이 들었다.

'이거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다시 긁어놓을까?'

'비 오면 망가지겠지?'

'사람이 하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하지?'

'나올 때 발자국은 어떻게 안 남기고 나오지?'

 

그러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아무 식물도 없는 "돌로 만든" 정원을, 어떻게 생각해냈지?'

 

사진도 충분히 찍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갈 무렵.

무언가 명료한 것이 내 눈에 잔상처럼 남고 있었다.

두드러지게.

 

 

패턴

밝은 회색빛 돌 위를 맴도는 패턴.

연속. 반복. 순환.

생각보다 인생이 짧고, 별것 아닌 게 아닐까.

먼지 같다는 생각.

결국 인생, 돌고 돌아 제자리다.

최우등 졸업, 박사, 그 고생을 했는데.

번아웃 와서 여기에 앉아 있구나.

웃음이 났다.

 

석정의 자갈 위에 긁힌 홈들은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나도 그렇다.

패턴이 잘보이는 이미지를 퍼와봤다. (Wikipedia)
패턴이 잘보이는 이미지를 퍼와봤다. (Wikipedia)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세상에 난 것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석정의 패턴처럼, 끝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져 나오는 질문들이 왜인지 괴롭지 않았다.

달리기만 하던 일상에서는 떠오를 수조차 없었던 것들이,

이 고요한 돌정원 앞에서 비로소 입을 열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묻는 것.

그 자체가 해방이었다.

첨부 이미지

 

 

세대의 메아리

아빠에게 사진을 보냈다.

비 오는 쇼렌인에 다녀왔어요. 멍하니 연못 쳐다보다 오니 좋네요.

아빠가 답장을 보내왔다.

아빠가 30대 초에 느낀 감정을 아들이 공유하네.
감상은 시간을 돌아 반복하는가?

첨부 이미지

 

 

소름이 돋았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나이.

아빠는 떠밀리듯 일본에 보내졌고, 나는 번아웃에 밀려 왔다.

경로는 달랐지만, 도착지는 같았다.

석정 앞.

같은 질문.

최씨 가문 남자들의 운명인 건지,

아니면 누구나 이맘때 이런 고민을 하는 건지.

의뭉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됐다.

첨부 이미지

 

 

루프

돌고 돈다.

자갈 위의 패턴도, 계절도, 세대도.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질문들도.

번아웃이 온 일상에서 벗어나 이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해방이었다.

나무 마루의 삐그덕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이끼 위로 번지는 물기.

그 느릿한 것들 사이에서, 닫혀 있던 질문이 하나하나 쏟아지듯 열렸다.

 

'그렇게 바쁘게 달리지 않아도 돼.'

'그래서 넌 뭘 얻었는데?'

'그래서 넌 뭘 좋아하니?'

자조적이고 허무한 질문.

하지만 허무함의 끝자락을 스치고 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뭘 해도 된다면, 내가 즐거운 것을 해봐도 되지 않겠어?'

첨부 이미지

 

 

여전히 답은 없었다.

교토에서 돌아간 뒤에도 한참 더 방황했다.

연구실을 바로 떠나지 못했고, 박사후과정으로 몇 달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석정 앞에서 시작된 그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2편에서 계속)

 

*저자주: 일본식 돌정원

첨부 이미지

 

 


Micro-Mission: 멍때리기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매일을 산다.

나는 료안지 석정 앞에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함'을 허락해보았다.

스마트폰도, 책도, 음악도 없이.

온전히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잊고 있었던 중요한 질문들을 하게 한다.

오늘, 시간을 내어 멍하니 사색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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