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교토(Loop. Kyoto)] Vol.3 살아있는 액자 - 호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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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센인
오오하라. 교토 시내에서 한참을 더 들어간 곳.
깜깜한 실내에 들어서자, 통창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극적으로 대조되는 밝은 바깥.
통창 너머로 몇백 년 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살아있는 액자.
맞다. 본래 액자는 멈춰 있는 것 -
사진, 그림, 풍경화 ...
틀 안에 가둬진 멈춰진 한 순간.
그런데 이 액자는 살아 있었다.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잎이 빛에 따라 색을 바꾸고 있었다.
계절이 오면 물들고, 지고, 다시 피어날 것이다.
말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콧등을 스쳤다.
몇백 년.
전국시대, 에도 막부, 메이지 유신.
그 모든 시대를 거쳐도, 이 나무만 결국 남았다.
사람은 가고, 시대는 바뀌고, 나무만 여기 서 있다.
온갖 풍파를 겪은 이 나무도 늙는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비에 젖고, 눈을 맞고, 봄에 다시 피어난다.
영원할 것 같지만, 이 나무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영속과 무상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돌고 돈다.
석정의 패턴도, 카페 주인의 손놀림도, 계절도, 세대도.
그리고 이 나무의 삶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도, 매 순간이 다르다.
올해의 단풍은 작년의 단풍과 같지 않다.
내일의 바람은 오늘의 바람과 같지 않다.
반복이되 동일하지 않은 것.
삶도 그렇지 않을까.
교토 블루보틀에 들렀다.
몇백 년 된 일본 전통 가옥 안에 현대적 인테리어가 들어서 있었다.
옛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품고.
며칠간 교토를 걸으며 오래된 지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박사과정의 치열함도, 번아웃의 고통도, 결국 거대한 굴레 안에서는 먼지 같다는 생각.
그 지독한 허무가 이번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지혜의 구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렇다.
삶이라는 굴레가 헛되어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은 축복이다.
허무함의 끝에서 나는 아주 작은 자유를 발견한다.
어차피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면, 매 순간 내가 즐거운 것을 선택하며 한 걸음씩 내디뎌도 되지 않겠어?
그것이 교토가 내게 준 첫 번째 대답이었다.
되감기
며칠간의 교토를 되감아본다.
석정 앞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던 질문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 달려왔는가.
번아웃 끝에 찾아온 사소하고 거대한 물음.
돌고 돈다는 것이 허무했다.
비 오는 쇼렌인에서, 무거웠던 질문들이 마침내 씻겨나갔다.
삐그덕 소리와 빗소리 사이로 고요가 찾아왔고,
철저히 혼자라 믿었던 원형 트랙 위에서 익숙한 아버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돌고 돈다는 것이 더 이상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다.
호센인의 액자 앞에서, 그 반복이 다르게 보였다.
같은 자리에서 계절을 입고 벗는 나무처럼,
돌고 돌되, 매 순간은 다르다.
돌고 돈다는 것은 허무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석정이 질문을 꺼냈고,
비가 질문을 씻었고,
액자가 질문에 답했다.
'넌 현재에 충실하고 있니?'
교토가 답을 준 건 아니다.
질문을 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허무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같은 자리를 돌더라도,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돌고 돌아. 교토 / Loop. Kyoto — 마침.)
Micro-Mission: 되감기 🧐
이제는 이유없이 바쁘게 달리고 있는 것을 자각하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넌 현재에 충실하고 있니?'
대답이 바로 나오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질문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음 선택에 뒷받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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