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이** 의 여행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여행지에서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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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위로를 꿈꿨지만, 비가 내렸다
"이 이야기는 아마 사람들은 공감 못 할걸?"
내가 이 여행기를 꺼낼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석양이 있다는 신혼여행의 성지, '코타키나발루'를 혼자 갔으니까. 그것도 이별 후 마음 정리를 위해서.
남들은 커플 사진 찍느라 바쁜 그곳에 혼자 떨어진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곳에서 나에게 '완벽한 4박 5일의 위로'를 선물하고 싶었다.
완벽한 준비, 그렇지 못한 현실
준비는 철저했다.
수영? 못한다. 그래서 한 달이나 배웠다. (결과는 여전히 맥주병이었지만.)
추억? 전부 남겨야지. 큰맘 먹고 비싼 카메라도 두 대나 샀다. (소니 a6400에 신형 고프로까지!)
'자, 이제 가서 멋지게 힐링만 하면 돼.'
하지만 코타키나발루는 나에게 쉽게 '완벽'을 허락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하늘은 우중충했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껏 배운 수영은 실전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고, 큰 맘먹고 장만한 비싼 카메라는 내 눈이 보는 그 압도적인 낮은 구름과 신비로운 공기를 반도 담아내지 못했다. (사실 우중충 한 탓에 눈으로 볼 때도 아주 예뻐보이지는 않았다.)
'아... 망했나?'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그 빗줄기가, 낯선 이국땅에서 맞으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괜찮았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그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반딧불이의 영롱한 빛을 보며 생각했다.
'어? 다 망친 것 같아도... 내가 싫어하는 걸 해도... 나, 꽤 괜찮네?'
완벽하지 않은 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이 '엉망진창인 자유'를 즐길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좋은 것만 주지 않아도, 나는 꽤 괜찮다
비 내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겁쟁이의 니모 탐험기
나는 겁이 많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바닷속은 보고 싶었다.
남들 다 신나게 뛰어드는데, 수영 못하는 나는 배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현지 가이드가 내 팔을 덥석 잡더니 물 속으로 이끌었다. "어어?!" 할 틈도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공포가 아니라 신세계였다.
"꺄- 귀엽다! 신기해!" 연신 내적 비명을 질렀다. 물안경 너머로 니모가 지나가고, 거북이가 유유히 헤엄쳤다. 무서워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 바다에 푹 빠져버렸다. 이 기세를 몰아 패러세일링까지 한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혼자선 절대 몰랐을 세상이었다.
※ 확대하지 마시오 ※
택시 기사님의 진짜 똠얌꿍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내가 자주 가는 집 있는데."
혼자 여행객에게 택시 기사님의 이런 제안은 '경계대상 1호'다. 하지만 무슨 용기였는지 덜컥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로컬 식당. 그리고 그곳엔 요리 장인 포스를 풍기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국물을 떠 넣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와... 이런 맛이?"
그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똠얌꿍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어떤 비싼 태국 음식점을 가도 그 맛은 아직까지 다시 찾을 수가 없다.
나에게 좋은 것만 주지 않아도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는 친구나 가족들이랑 꼭 같이 와요."
나는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는 혼자라서 더 좋았는걸요.'
오롯이 나 혼자였기에 나를 더 잘 놀아줄 수 있었다. 원숭이의 작은 움직임, 쏟아지는 햇살의 세기,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의 그 나른한 고요함까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완벽한 날씨가 아니어도, 수영을 못해서 허우적대도, 때로는 무서워서 덜덜 떨어도. 그런 나 자신을 그대로 안아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충분히 완벽하다고.
"나에게 좋은 것만 주지 않아도, 나는 꽤 괜찮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동생에게 주기 위해 코타키나발루 시장에서 샀던 향수 냄새를 맡으면 그날의 습도와 공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여행은 그 자체로 내가 나에게 선물한 -
가장 완벽하지 않아서 가장 완벽했던 위로의 기억이 되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 그 때 생각하니까, 또 떠나고 싶다!'
(코타키나발루 혼자 가봤니? 예상치 못한 여행지에서 나를 찾다.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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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
글 읽다가 절거장 지나쳤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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