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 것들. 튀르키예(Things That Don't Crumble)] Vol.4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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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숙여야 했다. 아니, 거의 기어간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천장이 너무 낮다.
거의 100미터 아래로 내려가는 내내 허리를 펴지 못했다.
바로 설 수 있는 높이가 나오자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기지개를 켠다.
지하도시
그들이 남긴 흔적은 너무나 정교하다.
창고, 기도실, 묵상 책상, 그리고 정교한 계단까지.
층마다, 그리고 방마다, 방 안의 돌로 된 가구조차 체계가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이 이곳에 그대로 잠자고 있다.

산소 농도는 지상과 같다는데, 묘한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플라시보일까.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 유황 냄새와 퀘퀘한 흙먼지가 뒤섞인 비릿한 공기.
사람들은 종교로 핍박 받거나 전쟁으로 피할 곳이 없어지면 이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사람들은 몇 세대를 버텼다.
햇빛을 보지 못해 왜소해진 몸이 되면서 까지.

삶의 이유
따로 묻을 곳이 없으니 방 안에 도랑을 파 가족을 묻었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삶을 살아낸 사람들.
그들은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붙들고,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를 조직했다.
무엇이 인간을 이토록 끈질기게 붙드는가.
대체 믿음이란 무엇이기에.
아니 오히려 생명에 대한 동물적 집착이었을까.
되려 믿음은 그 집착을 지탱해 주는 도구일 뿐이었을까?

낮은 곳
데린쿠유, 이 지하도시의 최하층은 8층이다.
가장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통이 있는 곳.
지상에 가까울 수록, 이는 곧 화장실에서 멀수록, 높은 계급이었다.
냄새 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
문득 아래를 향해 움직이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냄새나는 곳으로 내려갔으니 공동체가 유지되었겠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가장 냄새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준비가 되었는가?
내 일이 더럽고 힘들고 지저분할 때에도, 그 자리를 사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지상으로 올라왔더니 공기부터 다르다.
한껏 조여져있던 홍채가 열리며 눈 앞이 하얘진다.
어지러운 그 틈을 타, 내 모습이 떠오른다.
성장이 막히고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늘 자연스레 더 넓은 곳, 더 나은 자리, 더 큰 기회를 향했다.
그곳에만 가면 무언가 해결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진채.
아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궂은일, 더러운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겠지. 이 짧은 인생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려고 했던 거겠지.

그런데 데린쿠유는 반대로 묻는듯 하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느냐고. 그래서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겠느냐고.
리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지하 8층의 문제를 묵묵히 해결해내는 자.
너는 그럴 각오가 되어있느냐고.
짜릿하게 하얗던 눈 앞이 개고, 안맞던 초점이 선명해졌다.
맑은 햇살이 사람들의 머릿결을 타고 반짝인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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