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고이다. 썩다. - 이스탄불, 튀르키예

민주주의 독재국가에서 본 것들

2026.03.28 | 조회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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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에디터 조나단

느낌

성당 건물에 이슬람 문양과 장식들. 조화와 부조화의 묘한 긴장감.
성당 건물에 이슬람 문양과 장식들. 조화와 부조화의 묘한 긴장감.

 

라마단이었다. 아무도 금식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복장.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

사우디보다 세속적인 거리였다. 그런데 사원이 사우디보다도 많아 보였다.

골목마다, 언덕마다, 이름 모를 작은 건물에서부터 숨이 멎을 만큼 거대한 블루 모스크까지.

그리고 기도 시간이 되면 들으란 듯 확성기가 터졌다.

아잔*이 아닌 기도문이 통째로 방송되었다. 귀가 멍해질 만큼.

보통 이슬람 국가에서는 시간만 알려주는 소리였는데. 여긴 달랐다.

소리가 귀가 멍할 정도로 공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비무슬림 출입금지 구역. 곳곳에 꽂힌 터키 국기들.

자유를 표방하지만, 자유롭지 않은 느낌.

(*저자주: 아잔은 이슬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길 곳곳에서 보이는 초대 대통령을 숭배하는 전단들
길 곳곳에서 보이는 초대 대통령을 숭배하는 전단들

 

귈하네 공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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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귈하네 공원을 산책했다.

비맞은 풀냄새를 맡으며 숨을 돌렸다. 집 앞 공원에 온 것 같은 낯설지 않은 공원 풍경.

그러다 오르막길 따라 줄지어 선 검은 양복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호원들이 삼엄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대통령 호위대였다.

영국 왕실 근위병처럼 멋있겠다 싶어 사진기를 꺼내려다가, 그 살벌한 눈빛에 이내 도로 넣는다.

아버지가 근처로 안쪽으로 걸어가시자 호위대가 막았다.

"이쪽으로는 다니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갈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높이 쌓인 궁전벽. 단절된 벽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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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에는 초대 대통령의 문자개혁을 신격화하는 안내판들.

'그래. 이 정도로 독재를 확신해선 안되지. 한국에서도 청와대 근처에선 사진을 못 찍게 하니까.'

내가 예민한 건지, 아니면 이상한 걸 진짜로 본 건지 — 그 경계가 모호하다.

 

돈인가 종이인가

출발 전부터 기대했다.

튀르키예는 가성비, 세계여행자들의 쉼터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실상은 전혀달랐다.

리라화는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환율은 고정되어 외국인에게도 비정상적으로 비쌌다. 

기본 식사 인당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 케밥** 하나에 4만~5만 원이 가장 싼 가격.

게다가 구글 리뷰에 올라온 가격과 현재 가격이 너무 달랐다.

3개월 만에 두 배. 식당들은 인쇄된 메뉴판을 포기했다. 칠판에 매일의 가격을 고쳐 썼다.

인쇄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자 메뉴판의 가격부분을 비워둔 곳도 있었다.

왕궁 입장료 10만 원. 아야소피아 8만 원.

(**저자주: 케밥은 튀르키예식 구운 고기를 통칭한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여행을 하면서 만나왔던 비슷한 패턴도 보인다.

민심을 잡기 위한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가격 구조.

외화벌이가 시급해졌는지, 외국인이 모이는 곳은 전부 달러와 유로 연동 결제.

공공서비스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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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구(카득쿄이)

카득쿄이에 갔다. 관광객이 아닌 실제 거주민들이 사는 곳이란다.

지나가다 우연히 작은 꿀 판매점에 들렀다.

주인 부부가 꿀을 떠서 건네며 맛보라고 했다. 눈웃음이 초승달처럼 떴다.

사겠다고 하니까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발라보라고 권하며, 한참을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었다.

꿀집 앞에 있던 차단봉. 꿀벌을 그려놓았다.
꿀집 앞에 있던 차단봉. 꿀벌을 그려놓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여전히 밝다. 그게 더 가슴 아프게 만든다.

국가의 문제, 체제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인데.

사람들끼리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웃는 얼굴로 애쓰고있다.

팁 문화가 일상화된 나라는 아니었지만, 달러나 유로로 팁을 주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 주인들은 구걸에 가까울 정도로 외국인 리뷰와 평점에 목을 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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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독재국가

그날 저녁, 호텔에 들어와 AI에게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주의 독재국가"란다. 어불성설 같은 이 단어가 튀르키예의 공식 분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지인들은 이 인플레이션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챗봇이 뱉어내는 한단어 한단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월급날 물건 사재기. 화폐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니 현금은 독이었다.

물건이 돈보다 안전했다.

높은 신용카드 사용률과 가계부채. 빚은 시간이 지나면 탕감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중산층 이하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계획해봤자 물가가 뒤집어놓으니까. 그래서 흥청망청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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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떠올랐다. 독재를 겪었고. 최근에도 독재냐 아니냐 말이 많았고. 원화 가치도 흔들렸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렸던 나라답게, 정부에 반항적이고, 건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문화

 

이 사람들은 어떡하지.

꿀 가게 부부가 스쳐 지나간다. 밝게 웃으며 꿀을 건네던 그 손.

저 사람들은 정부에 대항할 수 있을까. 거리로 나갈 수 있을까. 건강하게 토론할 수 있을까?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결국 힘들고, 죽겠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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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감으로 가득했던 이스탄불에서의 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이질감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국 고여있음이다.

수천 년의 역사가 쌓인 거대한 제국의 심장조차, 고이는 순간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무슬림 국가에서 만난 진짜 성당
무슬림 국가에서 만난 진짜 성당

 

그것은 한 국가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

조직이든, 문화든, 심지어는 한 개인의 성격이든.

새로운 것을 흡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할 때,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혁신하지 않을 때,

고인다. 썩는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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