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기 vs 해체하기
기존의 제텔카스텐시스템에서 하이라키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으로 도서관에서 도서들을 분류하는 듀이데시멀분류법(dewey decimal classification)을 통해 문서와 메모들을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서분류법은 독자 기준에서 검색하기 수월하게 만들어놓은 분류법이죠. 결국 같은 하위 셋에 도달하면 그 집합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일히 제목을 훑어보며 특정 책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도서분류법은 책을 러프하게 분류하고 요약하는 제텔카스텐의 메모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같은 핵심 개념들을 사용하는 책들이 도서분류법에 의해 같은 집단에 놓이지 않는 경우도 흔히 발생합니다.
이 모든건 책이라는 하나의 폐쇄적 체계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루너의 지식의 구조는 하나의 문서나 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념과 원리에 기반하여 집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도서분류법의 형태가 적절하지 않은 셈이죠. 지식의 구조는 하이라키와 네트워크, 선형배열과 순서도 등 여러가지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습니다. 여러겹의 패러다임에 의한 4차원이상의 복잡한 위상공간상에서 구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뇌는 그때그때 지식의 구조를 단순화하며 필요할때 가져다 쓸수 있게 변환시켜냅니다. 이는 지식 모듈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제텔카스텐은 요약의 추상화를 매우강조합니다. 요약된것은 요약하기 전의 문맥을 고이 접어 펼처낼 수 있는 추상화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작아진 사이즈로 인해 요약된것들 끼리의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상화는 비본질의 세부사항을 떨쳐내는 원리가 언제나 작동하듯이, 요약된것으로 본문을 아무리 역으로 떠올린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시뮬라크르, 사본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사본들은 메모작성자의 임의성이 첨가되며 지식구조의 체계를 문서집합단위에서 엉망으로 만들게 됩니다. 오히려 지식의 구조는 퍼스트브레인(이하 지식관리자 본인의 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책이나 논문등을 재사용하기 위해 이해하는것은 기본이고, 개념과 원리단위에서 텍스트를 나노단위로 해체하여 재사용합니다. 요약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릅니다. 요약은 언제나 전체를 담아낼 수 있다는 오만이 전제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개념단위 레벨로 더 깊숙히 파고내려간다면 전체 내용에 걸맞는 결론의 단순성이 아니라 무수한 사고실험이 난무하는 수없이 많은 갈래의 지식의 본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학습의 역량은 적당히 뭉뚱그려내어 결론만을 받아들이는 쉬운 추상화의 방법이 아닌 언제나 가장 깊은 레벨의 사고능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수학공부할때 공식을 외워서 적용시키는 학생과, 공식의 원리를 파해치기 위해 여러가지 증명을 경험하고 응용 활용하여 적용하는 학생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기존의 제텔카스텐을 활용한 글쓰기의 경우 이같은 깊이의 사고방식은 항상 퍼스트브레인에서 발생하며, 메모들을 모아 연결하고 아이디에이션 해낸 후 어떤 글을 작성해낼때 해당 문서 텍스트 레벨에서 구현됩니다. 즉 제텔카스텐을 잘 쓴다고 해서 좋은 문서를 출력하는것과는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어요. 좋은 글은 오히려 개인의 퍼스트브레인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것과 마찬가지일뿐, 제텔카스텐의 효과라고 보기 힘듭니다. 제텔카스텐 방법론과 논리성은 상관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공동의 지평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떤 명제, 공리나 공준의 통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아래에서 특정 개념들이 적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우리는 당연한것의 동어반복에 의해 객관적으로 신뢰가능한 수학적 지평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됩니다.
그래서 개념지도 방법론의 근본원리에는 요약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요약을 기준으로 노트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물론 이해하는 단계에서 요약하기 매우 필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읽어내는 문서나 아티클, 영상이 어떤 근본개념에 의해 어떤 주장을 하고 사실을 이끌어내고 있는지 그 뿌리를 찾아내는데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즉, 학습의 기초인 개념으로의 회귀가 메모활동의 제 1원칙이 됩니다.
우리가 음식점을 운영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더 좋은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맛잇는 음식을 먹고 뭉뚱그려 맛있다라고 평가할게 아니라, 해당음식의 제조과정을 추론하고 해체하고 세부적인 단위에서 평가해야만 합니다. 요약은 누구나 해낼수있습니다. 음식을 소비하는 모든 소비자가 음식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원리를 찾아내는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행히도 텍스트의 세계에서 수많은 개념과 용어는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그 원리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해체하여 분석하는 작업은 요약하는것에 비해 전혀 간단하지 않습니다.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아닌이상, 언제나 맥락적 초보자로서 임하게 되는 고되고 어려운 작업입니다. 학습 자체가 때때로 고되고 어려운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개념지도 방법론은 기존의 제텔카스텐보다 품이 더 많이드는 방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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