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사생아

보편과 다양 1부

보편의 역사

2024.03.09 | 조회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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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지도 그리고 읽기와 쓰기

철학적 개념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리듬에 발맞추기

보편개념의 역사

보편 개념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보편은 많은 특수(특수적인 것)에 통하는 일반(일반적인 것)을 말한다. 추상적 보편과 구체적 보편이 구별된다. 전자는 형식논리학적인 개념으로 외연적인 일반 내지 단순한 공통성이다. 후자는 변증법적 개념으로 특수, 또는 개별과의 구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일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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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에서 보편성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무엇인가를 그리는데 주로 발견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정의 플라톤의 이데아 또한 보편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정의와 플라톤의 이데아

다음은 고전인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가 처형되기 전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크리톤이 그를 설득하여 탈옥시키기 위한 과정에서의 대담입니다.

소크라테스 : 여보게, 크리톤, 왜 우리가 다수의 판단에 그토록 신경을 써야한단 말인가? 우리가 더 귀히여기는 훌륭한 사람들은 있는 사실 그대로 이해하려 할 걸세.크리톤 : 하지만, 소크라테스! 우리는 다수의 판단에도 신경을 써야하네. 다수는 사실상 가장 큰 해를 줄 수도 있다네
...
크리톤 : 내가 생각하기엔 자네가 자신을 구할 수도 있는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네. 자네는 자신의 아이들도 버리는 것이라네. 자네가 이리되도록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우리가 용기없는 자들이 아닌가하고 심하게 자책을 하고 있다네. 이런 일은 자네와 우리에게도 나쁠 뿐더러 부끄러운 일이 될 걸세. 그러니 부디 내 말을 듣게.
소크라테스 : 친애하는 크리톤.  자네의 이런 열의가 어떤 옳음과 함께 하고 있다면 가치가 있는 말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자네의 열의가 강하면 강할 수록 나에게는 곤욕스러운 것이 될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고찰해야하네. 나는 언제나 추론해 보고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원칙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네. 그러니 내게 이런 일이 닥쳤다고 해서 나의 원칙을 내던져버릴수는 없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수 없다면 나는 자네에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네
....
소크라테스 : 특히 지금 우리가 숙고하고 있는 것, 정의로운것과 정의롭지 못한 것, 부끄러운 것과 아름다운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서 살펴보세. 이것들과 관련해서 우리는 다수의 판단에 따르고 이를 두려워해야하는가?  아니면 (전문지식을  가진)한 사람의 판단에 대해 두려워해야하는가? 우리가 그의 판단에 따르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것에 의해서 더 좋게 된다던 바로 그 대상을 파괴하고 손상시킬 것이네. 이말이 허튼 소리인가?
...
소크라테스 : 그러면 합의된 이것에 근거하여 우리는 아테네인들이 나를 석방해주지 않았는데도 내가 여기서 나가려고 시도하는 것이 정의로운지 정의롭지 못한지를 고찰해야하네. 만일 정의로운 것으로 드러나면 우리는 시도를 해보되,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도록 하세.

크리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서 정의와 행동의 원칙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권력자나 다수의 판단에 휘둘려야 하는게 아니라 그 자체로 정의로워야 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적인 관점이 아닌 절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진전을 이어받아 절대적 실체인 이데아개념을 말합니다. 이데아만이 세상의 유일한 실체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계의 모든것들은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이에 관한 동굴의 비유는 너무 유명합니다.

플라톤 동굴의 비유
플라톤 동굴의 비유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한 동굴의 좁은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과 발, 목이 속박되고 있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쭉 동굴의 안쪽을 보면서, 되돌아 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입구의 아득한 위쪽에 불이 불타고 있고, 사람들을 뒤로부터 비추고 있다. 불과 사람들의 사이에 길이 있어, 길을 따라서 낮은 벽이 만들어져 있다. ... 벽을 따라서, 여러가지 종류의 도구, 나무나 돌 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나 동물의 상이 벽 위에 옮겨져 간다. 옮겨 가는 사람들 속에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있으며, 입 다물고 있는 것도 있다. 

플라톤 《국가》

당장 눈에 밟히는 이익이 되는 것, 다수가 요구하는 것, 권력자가 요구하는 것이 아닌 변하지 않는 진리로서의 정의가 소크라테스의 삶의 원칙인 것처럼, 플라톤에게도 지성이란 이데아를 통해 현실에 비친 사물들과 행태를 해석 평가하는것을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정의에서도 플라톤의 이데아도 보편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어떤 개별적인것 너머의 것이 표현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보편개념에 대한 조금 더 명시적인 사용은 아래에 나올 아리스토텔레스 《오르가논》의 보편명제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개별자와 보편자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플라톤은 전혀 경험한적이 없음에도 인지할 수 있는 이데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미 영혼이 이데아계에 있었고 그것들을 경험해보았지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이데아적 기억을 잃어버렸고, 서서히 이데아적 경험을 상기해나가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낯선것을 처음 본다고 해서 경험하지도 않았던 무언가가 바로 떠오르는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데아를 떠올려야 할 철학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관념들을 주장할때, 절대적 이데아와의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사물들을 경험하고 관찰한 종합적인 판단을 플라톤이 이데아적이라고 말했을 때 크게 반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의 자연과학과 유사한 자연학을 저술하고, 자연학 이후의 존재와 인식에 관한 논문을 자연학 다음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이라 불리운 14개의 논문을 쓰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이상학은 자연을 넘나드는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제 1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학문 가능성, 지식의 형성 가능성은 오히려 자연학이 선행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인간의 지혜에 대해 논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앎의 단계를 감각, 기억, 경험, 기술의 단계로 설명한다.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에 의한 최초의 앎의 방식은 감각을 통한 지각(知覺, 감각을 통해 아는것)이며, 인간은 개별적인 지각에 대한 기억을 통해 경험이라는 앎의 상태, 즉 경험적 지식을 얻게 된다. 경험적 지식은 개별적인 지각의 사례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습득하게 된 앎이다.
그리고 경험적 지식을 유형화 하여, 유형화된 경험을 체계적으로 이론화 하여, 그것을 통해 보편적 판단이 가능하게 될때 , 경험적 지식은 기술적 지식이 된다. 경험과 기술의 가장 큰 차이는 경험이 그 원인에 대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개별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통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면, 기술은 유형화된 경험의 기준을 근거로 보편적인 판단을 내린다. 기술적 지식은 개별적 경험의 배후에 있는, 보편적 연관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경험의 원인에 대한 앎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과 기술의 비교를 통해 '원인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르칠수 있는 것' 여부를 앎의 위계를 결정하는 중요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지혜는 사물의 일차적(직접적) 원인들과 원리들에 대한 앎' 이라고 결론 내린다.

파두 블로그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https://blog.naver.com/pa-du/221880382139)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유일한 실체라고 말한것과 반대로 《범주론》 에서 실체란 서술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개별적인 실체에 대해 서술할때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 철수는 중학생이다
  • 철수는 롤을 한다
  • 철수는 남자다
  • 철수는 키가 160 이상이다
  • 철수는 맏이다
  • 철수는 외향적이다

위 서술문에서 철수에 대해 표현할 때 우리는 철수는 어떤 집단에 포함되는가에 따라 서술문이 규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수를 개별자, 서술문의 범주를 보편자라고 부릅니다.

개별자와 보편자의 밴다이어그램
개별자와 보편자의 밴다이어그램

플라톤의 의자 이데아 삼각형의 이데아도 마찬가지로 보편이라는 개념으로 명시화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보편자가 말하는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사람에 대한 이데아를 형성하고 있으며 모든 죽음을 목격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한 이데아를 가지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어떤 대상의 이데아 즉 보편자는 어떤 범주와 맥락에 속하는 개별자들을 토대로 얻어낸 제 2의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것이 됩니다.

오르가논 - 보편명제와 집합

'~이면 ~이다.' 의 명제에서 조건형식에 '모든' 이 갖추어지면 보편명제라고 한다.
-> '모든 ~는 ~이다.'

오르가논

보편성은 논리학의 개념에서 명시적으로 출발합니다. 그 중 보편성은 '모든'을 사용함으로 명제에서 집합을 대상으로 사유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학은 다음 그림과 같이 벤다이어그램을 통해 원소와 집합의 관계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포함관계의 밴다이어그램
포함관계의 밴다이어그램

보편의 문제는 집합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집합을 다루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보편은 그룹 내 어떤 원소 어떤 집합이 존재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때때로 달라지는 동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집합을 규정하는것은 지난글 '연결의 작동원리'에서 이야기한 개념의 내포와도 연관이 깊습니다. 내포가 증가하면 외연이 감소하기 때문에 집합의 크기가 줄어들고, 내포가 감소하면 외연이 증가해 집합의 크기도 커지게 됩니다. 집합이 커지는 만큼이나 개념의 추상화 정도도 비례하여 올라가기 때문에 더 많은것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즉, 어떤 보편적 이미지를 어떻게 선택하는가는 보편 개념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닌 사유 대상들의 집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한 도미넌스(지배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보편개념은 시대의 정신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사용됩니다.

중세시대의 보편

앞서 말한것과 같이 고대 철학자들은 실체는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수많은 논쟁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시대인 중세시대에도 이런 실체에 대한 논의는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기독교 권력은 플라톤주의를 이어받게 됩니다. 형이상적인 신에게서 형상을 이어받아 형이하적인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는 그때 당시에 인간들의 규범을 규정하는 근본원리에 대한 토대를 만들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정의개념은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행동의 원칙과 신념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이상향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중세시대의 신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개념도 마찬가지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데아에게서 신을 치환하였고, 신의 형상을 이어받은 인간은 인간의 궁극적 보편자로서의 신을 따라 마땅히 취해야할 신적인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신이 마땅이 해야 할 일을 대리하는 사람은 천사가 내려온 사람이며, 반대로 신이 마땅히 허락하지 않은 일을 벌이는 사람을 사탄들린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집단에 속하는 개별자의 행동을 허용할지 말아야할지를 규정하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십계명을 살펴보면 보편적 행위를 규정하는 규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2.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9. 살인하지 못한다.10. 간음하지 못한다.11. 도둑질하지 못한다.12.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13.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출애굽기

이런 보편적 행위에 관한 규율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집단에서 발견됩니다. 집단의 보편성은 집단의 경계를 결정하는 규정을 설정함으로서, 각각의 집단에서 저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기반의 행동윤리이자 동시에 통치의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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