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천 달러로 시작해 수백억 대 매출을 냈지만,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재성장한 사업가. Bala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나탈리 홀로웨이
미디어를 보면 성공한 창업자들의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3개월 만에 매출 1억 달성했습니다”
“투자 유치 성공했습니다”
“직원 100명 돌파했습니다”
화려한 사진 뒤의 과정은, 늘 생략되어 있습니다.
밤새 울었던 날들, 직원들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죄책감,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느꼈던 공포 같은 것들은 대부분 SNS에 올라오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Bala의 공동 창업자 나탈리 홀로웨이(Natalie Holloway)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나탈리는 1년 만에 매출이 10배가 됐는데, 바로 그 다음에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갔고, 직원 90%를 해고해야 했습니다.
파산 위기와 우울증, 그리고 3년 후 Bala는 연 매출 1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Bala의 공동 창업자 나탈리의 성장과 실패, 그리고 위기 극복의 이야기에 인사이트가 많으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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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성장했다가, 요즘 매출이 살짝 꺾여 불안해진 대표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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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그리고 도망
Bala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나탈리 홀로웨이'는 누구인가
나탈리는 원래 광고 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이었습니다.
유명한 광고 대행사에 다녔던 나탈리는 남들은 꿈의 직장이라고 말했지만, 나탈리의 삶은 지옥 같았습니다.
나탈리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었고, 밤 10시, 11시까지 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의를 위해 다시 출근했습니다.
이게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나탈리는 단순히 ‘힘들었다’가 아니라, ‘삶이 계속 소진되고 있었다’는 걸 느끼면서, 번아웃을 겪었습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탈리에게는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 맥스(현 남편이자 공동 창업자)가 있었습니다. 맥스 역시 같은 업계에서 일했고, 비슷한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나탈리와 맥스는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렇게는 못 살겠어!. 갭이어(Gap Year)처럼, 잠깐이라도 ‘삶을 쉰다’는 경험을 해보는 거야.”
(*갭이어(Gap Year) - 학업이나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여행, 봉사, 인턴십,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며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탐색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
그렇게 나탈리와 맥스는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나탈리와 맥스처럼 무작정 퇴사를 한다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경력 공백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다시 취직하기 힘들 수 있어.”
“지금 그만두면 위험해”
하지만 나탈리와 맥스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봤어요. 뭐가 최악이겠습니까.
그저 커리어에서 한 단계 내려가는 겁니다. 그럼 뭐 어때요?!.
여행 끝나고 다시 광고 회사에 취직하면 되는 걸요!”
나탈리는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움의 ‘끝’을 직접 확인해버리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도 감당 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것이죠.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했습니다.”
이 말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라고 느껴집니다.
인생을 바꾸는 결정의 대부분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최악을 확인한 뒤의 실행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찾은 기회
세계를 여행하던 어느 날, 나탈리는 요가 수업에 참여했지만 수업 난이도가 너무 쉬워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나탈리는 평소 요가를 할 때 웨이트(무게) 운동을 섞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근력 운동과 유연성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수업은 너무 쉬웠고, 나탈리는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아 좀 더 힘든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나탈리는 ‘어떻게 하면 저 수업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를 고민했습니다.
이때 나탈리가 찾은 답은 손목과 발목에 웨이트(ex.모래주머니)를 차는 것입니다.
제품은 이미 있었는데, 아무도 안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미 손목에 착용하는 웨이트는 존재했지만,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나탈리는 이걸 보고, ‘제품은 있는데 왜 아무도 안쓰지?’, ‘왜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걸 ‘일상적으로’ 쓰지 않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이에 대한 나탈리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로 ‘너무 촌스럽고 예쁘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 제품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1980년대부터 있었죠.
하지만 정말 못생겼습니다. 네오프렌(고무) 소재에…
아무도 그걸 차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나탈리의 머릿속에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이렇게 유용한 도구가 시장에서 사라진 걸까?”
딱 ‘운동 기구’처럼만 생긴 디자인.
사람들이 “차고 걸어 다닐” 마음이 들지 않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나탈리는 이런 장면을 상상합니다.
- 산책할 때 손목에 가볍게 차고,
- 피트니스 센터에 갈 때도 자연스럽게 들고,
- ‘운동 도구’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소품’처럼 쓰는 모습
나탈리가 생각한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새로운 카테고리 발명이 아니라,
오래된 카테고리를 ‘다시 유행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다시 유행’의 핵심이 ‘기능’만이 아니라 '디자인과 브랜드'였다고 말합니다.
냅킨 위에서 탄생한 제품 디자인
나탈리와 맥스는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맥스에게 제품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맥스는 냅킨을 집어들고 스케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건 현재 Bala의 동그란 형태, 세련된 디자인, 손목에 차면 팔찌처럼 보이는 웨이트 제품의 모습이었죠.
나탈리는 그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습니다. ‘어, 뭔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한번 해봅시다.’라고 했습니다.”
5천 달러와 차고에서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
재취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의 시작
약 1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나탈리는 뉴욕의 광고 회사에 다시 취직했습니다.
비록 여행은 끝났지만, 요가 매트 위의 그 아이디어는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탈리와 맥스는 이렇게 정합니다.
“본업은 계속하면서, Bala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키워봅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광고 회사에서 9 to 5가 아니라 9 to 8처럼 일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발라 작업을 했어요. 주말에도 일했어요.”
나탈리와 맥스는 퇴근 후 일상과 주말을 반납한 채 일했습니다.
둘은 ‘그냥 열심히 했다’가 아니라 ‘하루가 두 개로 쪼개져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버틴 방식은 단순합니다.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봤어요.”
돈이 없어서 직접 했습니다
제조업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큰 돈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겠지만,
나탈리는 단 5천 달러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80%는 시제품 제작에 사용했습니다.
- 프로토타입(시제품) 제작에 약 4천 달러 사용
- 나머지는 사진 촬영과 모델 섭외 등 최소 비용으로 사용
-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자체 해결 (웹사이트는 맥스가 직접 만듦)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나탈리와 맥스가 특별히 ‘아낀’ 게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직접 했기 때문에 돈이 덜 든 것입니다.
- 사진은 여동생이 거의 무료로 찍어줬다고 합니다
- 웹사이트는 맥스가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 모델도 소액으로 섭외했다고 합니다
나탈리와 맥스의 시작은 “돈”이 아니라 주변 자원과 본인 역량을 최대한 끌어다 쓰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사업이 완성’ 되는 게 아니라, ‘사업을 시작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큰 장벽인 ‘제조’, 그리고 두려움
제조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면, 대부분의 창업자에서 가장 무서운 구간이 있습니다.
아마도 ‘만드는 단계’일 겁니다.
사실상 공장은 어디서 찾는지, 누굴 믿고 돈을 보내야 하는지, 품질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는지, 재료는 어디서 구하는지 등등 알아봐야할 게 참 많죠.
나탈리도 이 순간이 무서웠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은 (중국)공장에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돈을 보내고, 제대로 만들길 바라는 일입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다행히 여기서 맥스 가족이 장난감 산업에 있어, 중국 공장과 연결되는 시작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결이 있다고 해서 ‘쉬운 일’이 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 재료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 생산 방식은 어떻게 정하는지
- 공장에 어떤 자료를 주어야 하는지
나탈리는 그 무엇도 아는 게 없었죠.
가장 두려웠지만 해결한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매일 한 걸음씩 했습니다.”
“그 다음 답은 하다 보면 나왔습니다.”
나탈리는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며 해결했다고 말합니다.
이건 멋있는 말이 아니라, 실무적으로는 이런 뜻으로 볼 수 있죠.
- 오늘은 공장에 질문 10개를 정리해서 보냅니다
- 내일은 샘플이 왜 이런지 피드백을 줍니다
- 모레는 가격표를 다시 받고, 최소 주문 수량을 확인합니다
- 그 다음 날은 포장 방식과 배송 단가를 계산합니다
제품 제작에 대한 시작은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질문과 작은 수정의 반복으로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알려야 하지만, ‘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고, 사진과 웹사이트가 준비되면 이제 진짜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탈리는 제품 생산을 위해 4만 달러(한화 약 5,700만 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탈리와 맥스는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먼저 제품을 올려보기로 합니다.
(*킥스타터 같은 펀딩 사이트는 아직 제품이 완성되기 전, 사람들이 선주문처럼 후원해주면 그 돈으로 생산하고 배송하는 방식입니다. (국내- 와디즈, 텀블벅 등))
펀딩 목표 금액은 4만 달러(한화 약 5,700만 원) 였지만, 나탈리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킥스타터가 펀딩 진행 중인 상태였는데도, 저는 제 SNS에 올리지 못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성공한 창업자들도 처음에는 두려워합니다.
실패가 무섭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혹시 웃음거리가 될까 봐 무섭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나탈리는 결국 친구들에게도 알렸습니다.
킥스타터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후원이 필요했으니까요.
"사람들이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널리 알려야 했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나탈리는 초기 펀딩 금액 4만 달러 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차고에서의 2년과 75,000개의 수작업
킥스타터 이후, 나탈리와 맥스는 첫 제품을 만들고 배송을 시작합니다.
대게 제품 판매 시 많은 사업가들은 물류창고나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나탈리와 맥스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풀필먼트(Fulfillment) - 제품을 창고에 보관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알아서 포장하고 배송해주는 서비스)
이유는 단순했어요.
“창고는 너무 비싸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아주 원시적입니다.
제품을 직접 포장하고 직접 배송합니다.
그렇게 나탈리와 맥스, 그리고 나탈리의 여동생과 몇몇 도우미가 매일 밤 5시간씩 포장했습니다.
심지어 이게 2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총 75,000개를 차고에서 직접 포장하고 배송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 나탈리

더 놀라운 점은, 그들은 단순히 개인 고객만이 아니라
불루밍데일스(Bloomingdale’s, 미국의 고급 백화점), 프리피플(Free People, 유명 의류 브랜드) 같은 복잡한 대형 유통업체 주문도 직접 차고에서 대응했다는 점입니다.
진작에 창고와 풀필먼트 서비스를 사용했다면, 나탈리와 맥스는 매일 밤 5시간씩 포장과 배송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고를 쓰지 않았죠.
이에 대해 나탈리는 말합니다.
“그때는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화 한 통으로 물어보면 해결 됐을텐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탈리는 ‘이게 정상’이라고 믿은 채 계속 했다고 합니다.
사업은 혼자 하면,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혼자 하면, 비효율이 ‘원래 그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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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00만 달러까지의 Bala의 초기 성장 방법
사실 Bala의 첫 사업 목표는 “하루에 10개만 팔면 좋겠습니다”라는 수준에서 시작합니다.
나탈리는 초반 목표가 아주 소박했다고 말합니다.
‘하루에 10개만 팔아도 좋겠다’는 목표를 비전보드에 붙여놨어요.
지금의 Bala 규모를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ala는 창업 2년 차에 억대 매출을 만들었습니다.
나탈리가 생각한 사업 초기 Bala의 핵심 전략은 단순합니다.
“일단 가능한 한 많은 사람 눈에 띄게 만든다”는 전략입니다
나탈리는 초반에 “온라인 광고”를 먼저 떠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Bala Bangles 같은 제품은, 요가 수업이나 하이킹에서 누군가 착용하면 사람들이 바로 눈치채고 따라 사고 싶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즉, 제품 자체가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나탈리와 맥스가 초반에 한 일은 ‘예쁜 제품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쁜 제품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예스맨 전략”을 씁니다
나탈리는 초반에는 거의 모든 기회에 “예스” 했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모든 이벤트, 가능하면 모든 사람, 가능한 모든 노출을 잡으려 했습니다.
브랜드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보이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죠.
“SNS에 매일 올리고, 매일 태그했습니다”
나탈리는 초반에 매일 콘텐츠를 올렸다고 말합니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업로드 하고, 다른 브랜드와 모델을 태그하며 최대한 눈을 끌려고 했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에게 먼저 꽂히는 방식”입니다.
“선물(기프팅)을 합니다”
이 시기 Bala의 성장 핵심은 ‘선물(기프팅) 전략’입니다.
DM으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게 직접 연락하고, 제품을 보내고, 좋아하면 올려주길 바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엄청 많이”가 아니라 “꾸준히”입니다.
나탈리는 한 달에 수백 개를 뿌린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대략 20~30개 정도를 꾸준히 보냈다고 합니다.
즉, 작은 규모라도 “월마다 끊기지 않는 속도”가 더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편집자와 바이어를 ‘한 명씩’ 공략합니다
나탈리는 인플루언서만 공략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매거진 편집자(editor)와 바이어(buyer)도 같은 방식으로 공략했다고 합니다.
잡지(예: Shape Magazine)를 들고, 안에 있는 이름을 다 이메일로 보내봤다고 합니다.
바이어는 인스타그램에서 찾아 DM을 보내거나, 링크드인으로 찾아 연락했다고 합니다.
거절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번의 예스”가 이후 모든 레퍼런스가 된다고 말합니다.
'도매(wholesale)'가 초반 성장의 엔진이 됩니다
나탈리는 초기 사업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 DTC(자사몰)가 멋있어 보이지만, Bala 사업 초반에 도매가 정말 큰 역할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유가 아주 현실적입니다.
그들은 돈이 없었습니다. 광고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Goop이나 Free People 같은 대형 유통사에 들어가면, 그쪽이 대신 이메일을 보내주고, 대신 홍보해주고, 대신 트래픽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진(순이익)은 깎이지만, “눈”이 생깁니다. 그 눈이 생기면 자사몰도 함께 커진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나탈리는 이런 작은 레퍼런스들이 ‘큰 레퍼런스’로 커졌다고 말합니다.
“Goop에 입점했습니다”, “Bandier에 입점했습니다”
이 한 줄이 다음 바이어를 설득하는 문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반은 이렇게 쌓았어요. 하나가 다음 하나를 데려오는 방식이 되었죠.”

'크게 터지는 순간'은 보통 6~12개월 뒤에 옵니다
나탈리는 큰 트래픽이 한 번에 터진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초반에는 작은 모멘텀이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
- 스튜디오 한 곳에 들어간 것이 기뻤습니다
- 잡지 한 번 실린 것이 기뻤습니다
- 팔로워 5만 명 인플루언서가 한 번 올려준 게 기뻤습니다
이게 계속 쌓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번 크게 터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 중 하나로 나탈리는 Melissa Wood Health(피트니스 인플루언서)가 제품을 올려준 순간을 언급합니다.

그 시기 “제휴 마케팅(affiliate)” 같은 방식도 했다고 말합니다. (ex. 공동구매, 쿠팡 파트너스와 같은 방식)
당시엔 지금처럼 플랫폼이 잘 되어 있지 않아, 할인코드를 주고 판매의 일부를 월마다 PayPal로 정산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고 합니다.
나탈리는 Bala 사업 초반의 마케팅은 거창한 광고가 아니라
“사람 한 명이 진짜로 좋아해서 말해주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샤크탱크, 그리고 인생이 바뀐 하루입니다
“제품으로 창업하면 샤크탱크 나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2019년 어느 날, 나탈리는 “고고 모드(Go-Go Mode)”였다고 말합니다.
매일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많이 하던 시기였다는 뜻입니다.
나탈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문득 떠올린 게 샤크탱크였습니다.
제품 사업을 하면 샤크탱크에 나가라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입니다.
(*샤크탱크(Shark Tank): 미국의 유명한 창업 투자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입니다.
창업자들이 억만장자 투자자들("샤크"라고 부름) 앞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발표하고, 투자를 받거나 거절당하는 과정을 보여주죠.)
그래서 나탈리는 온라인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놀랍게도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 제품이 흥미로워요. 시즌 10에 출연 가능성이 있어요." - 샤크탱크 프로듀서
나탈리는 프로듀서와 몇 주간 통화를 했지만, 최종으로는 탈락했습니다.
이미 나탈리의 기대감은 커졌지만, 프로듀서는 나탈리가 탈락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탈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포기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차고에서 제품을 포장하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고, Bala를 키우느라 바빴으니까요.
그리고 4~5개월 후, 다시 샤크탱크 프로듀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새 시즌이 시작돼요. 당신들이 딱 좋을 것 같아요." - 샤크탱크 프로듀서

그렇게 나탈리는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Bala 업무에 몰입합니다.
그리고 샤크탱크가 방송되기 직전, 나탈리의 공동 창업자이자 남편 맥스도 회사를 그만두고 Bala에 매진합니다.
가장 무서웠던 하루입니다
나탈리는 샤크탱크 촬영날을 ‘인생에서 가장 미친 하루’라고 기억합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대중 앞에서 발표를 많이 해본 적이 없었어요.
저희는 사업 2년 차였고, 이 사업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했어요.
그런데 생방송 TV에서 5명의 억만장자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니..."
샤크탱크 프로그램은 재촬영도 없고, 한 번 들어가면 약 1시간 동안 투자자들이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그리고 투자자로부터 사업의 약점과 숫자와 논리를 공격받습니다.
거기다가 나탈리와 맥스는 그때까지 투자유치를 해본 적이 없어서 투자자의 언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나탈리와 맥스는 샤크탱크 출연과 사업 피칭 자리가 낯설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연습을 했습니다.
샤크탱크의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분석하면서 재미있는 오프닝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고, 친구들을 모아 실전처럼 연습했습니다.
샤크탱크 촬영날이 되고, 나탈리와 맥스는 샤크탱크 촬영 스튜디오 뒤에서 대기하면서도 머릿속에 온갖 걱정이 스쳤습니다.
‘샤크들이 우리 제품을 싫어하면 어쩌지?'
'누구나 카피할 수 있다고 하면?'
'너무 틈새 시장이라고 하면?'
그런데 나탈리와 맥스가 샤크탱크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샤크(투자자)들이 Bala 제품을 좋아하는 게 보였고, 그 에너지가 자신감을 줬다고 합니다.
특히 이날은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가 게스트 샤크(투자자)로 나온 날이었습니다.
“나는 운동선수예요. 그리고 패션도 좋아하죠.
이 제품(Bala)은 두 가지를 완벽하게 결합했어요. 정말 갖고 싶어요." - 마리아 샤라포바
그 순간 다섯 명의 투자자 모두 관심을 보였고, 최종적으로 마크 큐반(기업가이자 NBA 구단주)과 마리아 샤라포바(테니스 스타 선수)가 투자에 참여합니다.
이는 나탈리와 맥스가 가장 원했던 조합이였습니다.
그들은 마크 큐반의 사업 전략과 네트워크를, 마리아 샤라포바의 운동과 패션 분야의 영향력을 갖고 싶었고, 쟁취했습니다.
그렇게 Bala의 최종 딜(계약) 조건은 9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에 지분 30%으로 성사되었습니다.
당시 Bala의 연매출은 210만 달러(한화 약 30억 원)였으니, 회사 가치를 300만 달러(한화 약 42억 원)로 평가받은 셈입니다.
그렇게 나탈리와 맥스가 출연한 샤크탱크 방송일은 2020년 2월 28일,
이날 그들의 인생이 순식간에 바뀝니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에서 시간차를 두고 방송이 나갑니다. (동부가 3시간 빠름.)
2020년 2월 28일, 오후 8시, 동부에서 먼저 샤크탱크 방송이 나갔고, 당시 나탈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주문을 확인했습니다.
"주문이... 미친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요."
그렇게 순식간에 아마존에서 Bala 제품이 완전히 품절됐습니다.
그리고 3시간 후, 서부에서 방송이 나갔습니다.
"우리 웹사이트도 완전히 품절됐어요. 주문이 계속 밀려들어왔죠."
이날 나탈리와 맥스는 샤크탱크 방송 날을 위해 파티를 준비했었고, 파티장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친구들이 환호했고, 가족들이 울었고, 나탈리와 맥스는 서로를 꼭 껴안았습니다.
더구나 나탈리와 맥스는 샤크탱크 촬영 후 방영되기까지의 몇 개월의 시간 사이에, 몰래 혼인신고를 했고 좋은 소식이 몰려오면서 파티장이 그동안 마치 하지 못했던 결혼식 같았다고 합니다.

그날 밤, 나탈리와 맥스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너무 흥분했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정확히 2주 후, 세상이 멈출 거라는 것을...
코로나19, 그리고 완벽한 폭풍입니다
샤크탱크가 방송되고, 2주 뒤 코로나 19로 세상이 멈춥니다.
헬스장이 문을 닫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집에서 운동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운동기구(덤벨, 케틀벨, 요가매트 등등)가 품절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TV에서 본 Bala를 떠올리고, 그 결과 미친듯이 주문이 들어와
모든 제품은 ‘품절의 연속’이었습니다.
- 아마존에서 품절
- 자사몰(DTC)에서 품절
- 입고되면 곧장 품절
심지어 SNS에는 ‘Bala를 구하는 방법’ 등의 글이 올라오고, Bala 제품 가격을 2배 올린 글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이 Bala 웹사이트에서 구매 대기를 했습니다.
(마치 두쫀쿠, 라부부, 허니버터칩 같은 현상…)
코로나 팬데믹 덕에 Bala의 매출은 200만 달러대에서 2,000만 달러대로 올라갑니다.
- 2019년(2년 차): 210만 달러(한화 약 30억 원)
- 2020년(3년 차): 2,000만 달러(한화 약 280억 원))
Bala는 순식간에 10배 성장을 이뤘습니다. 이건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꿈꾸는 성장이죠.
나탈리와 맥스는 매우 신났고,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주문을 처리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새로운 직원을 고용했습니다.
심지어 이 시기에 나탈리의 첫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정말 미친 시기였어요. 아기를 캐리어에 넣고 일했어요.
고객 서비스 이메일에 답하고, 제품을 배송하고... 모든 걸 다 했죠."
하지만 나탈리와 맥스는 정말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장이 지속 가능한가?
이에 나탈리는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저희는 이게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주변 창업자들, 친구들... 모두 그랬어요. 다들 팀을 키우고, 사람을 고용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코로나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죠.
결국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나오고, 이 ‘특수성’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걸요.
나탈리와 맥스 또한 이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계획했습니다.
- 2021년 목표: 20% 성장 (2,400만 달러)
나탈리와 맥스는 이를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 재고를 대량으로 구매했습니다 (2,500~3,000만 달러 매출 대비)
- 팀을 30명으로 늘렸습니다
- 새로운 제품 라인에 투자했습니다
- 마케팅 예산을 대폭 늘렸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1년 중반, 성장할 것만 같았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코로나의 종말과 Bala의 하락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고, 헬스장이 다시 열리면서시장이 정상화됩니다.
그리고 Bala의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매출은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20% 성장을 계획했는데, 실제로는 하락했습니다.” - 나탈리
2021년 최종 매출은 1,700~1,800만 달러로, 목표였던 2,400만 달러에서 600~700만 달러가 부족했습니다.
하락폭은 전년 대비 15~20% 하락했지만,
매출 숫자만 보면 1,700만 달러(한화 약 240억 원)로 그래도 큰 매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하락’이 Bala에 치명적이었습니다.
나탈리와 맥스의 사업 전략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재고’ 입니다.
나탈리와 맥스는 다음 해 매출을 2,500만~3,000만 달러로 가정하고, 이미 그만큼의 재고를 사두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제품을 만들려면 최소 3~4개월 전에 주문해야 했고, 그러니 미래를 예측해서 주문해야 했습니다.
이에 나탈리와 맥스는 성장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락했습니다.
그 결과 창고에는 제품이 가득 쌓였죠.
재고는 '돈'과 같습니다. 창고에 쌓인 제품은 아직 팔리지 않은 돈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직원 월급을 줄 수 없고, 마케팅을 할 수 없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즉, 나탈리와 맥스의 돈(Bala 사업 자금)이 ‘재고 박스’ 안에 묶인 것입니다.
또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건비’ 입니다.
나탈리와 맥스는 코로나 팬데믹 때 급진적으로 사업이 성장하자, 미래에도 당연히 사업이 성장할 거라고 믿고 채용한 팀(30명)이 고정비로 남았습니다.
특히나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평균 연봉을 5만 달러로 잡아도, 30명이면 연간 150만 달러 입니다.
여기에 세금, 복리후생, 사무실 비용 등의 관련 비용을 더하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사실 겉에서 보면 Bala는 여전히 매출 1,700만~1,800만 달러를 내면서, 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내부에서는 현금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매출이 몇백만 달러 부족한데, 바로 그게 팀 비용이었어요."
더구나 여기에 더해, 마케팅 비용까지 올랐습니다.
코로나 때는 모두가 집에 있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 효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2021년,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면서, 온라인 광고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여러 업체들이 코로나 때문에 중단했던 광고를 다시 재개하기 시작함)
그래서 점점 Bala의 고객 획득 비용(CAC)가 올랐습니다.
(*고객 획득 비용(CAC)를 쉽게 설명하면, 전에는 광고비 100달러로 10명의 고객을 얻었다면, 이제는 5명밖에 얻지 못하는 겁니다.)
나탈리는 매달 약 10만 달러를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에 쓰고 있었습니다.
나탈리와 맥스, Bala의 위기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 매출: 예상 20% 성장 (2,400만 달러)→ 실제 15% 하락 (1,700만 달러)
- 재고: 3,000만 달러 매출에 맞춰 구매함
- 팀: 30명 (연간 150만 달러 이상)
- 광고비: 한 달에 10만 달러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 나탈리

나탈리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통장 잔고를 확인했고, P&L(손익계산서)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팀 인원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죠.
나탈리는 창업을 할 때 아무도 ‘해고’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고,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울기도 하고, 분노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나탈리 또한 마음이 무겁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에 책임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고, 집세가 있고, 삶이 있는데...
제가 그걸 빼앗은 것 같았어요."
정리해고는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나탈리는 최대한 팀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국 팀은 30명 → 3명(나탈리, 맥스, 브룩(CBO))까지 줄었습니다.
이 시기의 나탈리의 감정은 말 그대로 어두웠습니다.
나탈리는 실패감, 죄책감, 우울감이 동시에 왔다고 합니다.
생존을 위해, 재건합니다
나탈리와 맥스, 그리고 CBO 브룩까지.
총 3명만 남은 Bala는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력 감축이 있었지만, 이들에겐 300만 달러의 회사 빚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Bala는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안정적이고 재무 상태가 탄탄하게 수천억 대 매출을 내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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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Padml2w33rg?si=3UjyROHNU59Ppjo1
https://youtu.be/q28IFP1LzRg?si=cN1afynmqUZCzoez
https://www.youtube.com/live/i_w3tKbfFzY?si=Nie3ylrCB9KjyO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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