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후, 50만원으로 1조 회사를 만든 사업가

싱글맘, 무일푼, 빚더미에서 시작해, 10억 달러 브랜드를 만든 Kendra scott 창업자, 켄드라 스콧

2025.11.27 | 조회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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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업가의 창업 스토리와 인사이트

여성 사업가들의 창업 스토리와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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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시골 소녀의 첫 번째 ‘마법’ 경험

미국 위스콘신주의 케노샤(Kenosha). 평범한 주택들, 농부들의 트럭, 소도시의 습한 공기. |이곳에서 자란 켄드라 스콧은 패션과 거리가 먼 환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습니다.
켄트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단 한 사람은 바로
패션 디렉터였던 켄트라의 이모 였습니다.

어린 켄트라는 주말이면 이모 집으로 가서, 이모의 의상을 구경했습니다.
어릴 적 켄드라는 이모의 옷장을 “마법의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문을 열면, 뉴욕·파리·밀라노 패션쇼 슬라이드가 천천히 돌아가는 빛 속에서 켄트라는 “나도 이 세계에 속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2. 이상주의자의 첫 번째 창업 실패(Hat Box)

2-1. 모자를 ‘다시 유행시키겠다’는 순진한 꿈

켄드라가 19살이던 해, 켄트라의 의붓아버지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졌고 이떄 켄트라는 병원에서 비슷한 여성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여성들은 종종 비닐캡이나 남성용 모자를 썼고, 이는 보기에도 불편하고, 정서적으로도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켄드라는 생각했습니다.

“이왕 모자를 써야 한다면, 예쁘고 편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면 안감이 들어간 부드러운 모자, 여성들을 위한 패션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켄트라는 대학을 중퇴하고 당돌하게 첫 사업 Hat Box(모자)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모자를 다시 유행시킬 거야. 미국 전역에 지점을 만들 거야!”

켄트라는 꿈을 품고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2-2. 아무도 모자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미국엔 ‘모자 르네상스’ 따위는 없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모자를 “특별한 날에나 쓰는 소품” 정도로 여겼고, 일상에서는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

켄트라가 아무리 노력해도 시장은 변하지 않았다.

매출은 들쭉날쭉, 임대료는 계속 증가하며, 켄드라는 매장을 계속 옮겨야 했다.

  • 백화점 안의 첫 매장 → 수익 안 나서 퇴출
  • 스트립몰 매장 → 임대료 부담
  • 더 싼 지역으로 이동 → 유동인구 적어 매출 급락

이 과정을 켄트라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고객은 모자를 원하지 않았어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시장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걸 배웠죠.”

 

2-3. 폐업 날, 켄트라의 손이 떨리던 이유

5년 만에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한 날. 켄트라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진열대는 텅 비었고, 가게를 정리하던 중, 켄트라는 마지막으로 문 앞의 ‘Open/Closed’ 표지판을 뒤집었습니다.

“Sorry, We’re Closed.”

하지만 매장을 나서려는데 바람이 불었는지 표지판이
“YES, WE’RE OPEN”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켄트라는 한참을 서서 그 표지판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나는 실패한 건가? 아니면… 다시 시작하라는 건가?”

켄드라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며, 다짐했습니다.

“다시 시작할 거야. 다음엔 제대로 해낼 거야.”

 

3. 폐업 후 최악에서 최고로. 싱글맘, 빚, 불안, 그리고 ‘작은 테이블 하나로 시작한 새 삶’

3-1. 폐업 직후,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켄트라의 가게가 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이혼하게 됩니다. 이땐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상황이였죠.

그렇게 켄트라는 아이를 홀로 키우게 된 싱글맘이 되었습니다.

첫째 케이드(2001년생)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한창 돈이 필요한 시기였고 켄트라는 월세를 내기에도 벅찼습니다.

하지만 켄트라는 책임져야 하는 아이가 있었고,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3-2. “나는 다시 패션을 하고 싶다”

켄트라가 잘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였습니다.

패션 /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 / 마음을 위로하는 디자인.

그러다 문득 떠오른 건, 켄트라가 모자 가게 한쪽에서 취미로 만들어 팔던 ‘주얼리’였습니다.

그 작은 트레이에 넣어두던 주얼리는 매번 진열과 동시에 팔렸던 경험이 떠오른 것이죠.

모자가 안 팔릴 때도, 주얼리는 늘 팔렸고, 그때 켄트라는 깨달았습니다.

“시장 반응은 나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나는 모자에 집착하느라 그 신호를 못 봤죠.”

그래서 켄트라는 가장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3-3. 다시 ‘500달러’라는 작은 시작

2002년, 켄트라는 집 저금통에서 500달러를 꺼냈다.

그 돈은 당시 켄트라의 한 달 식비와 맞먹었고, 켄트라가 매달 지출해야 되는 주택 대출은 1,500달러였습니다.

그래도 켄트라는 주얼리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샀습니다.

그렇게 켄트라는 아기를 재운 뒤, 주방에서 밤마다 주얼리를 만들었다.

방 하나가 첫 번째 공장이었습니다. 결혼식 때 선물로 받은 티박스가 ‘샘플 박스’가 되었고, 자동차가 첫 물류센터가 되었습니다.

 

3-4. 아기를 안고 방문 판매 영업

켄트라는 아기를 안고, 오스틴의 부티크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켄트라는 부티크의 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혹시 제 주얼리 보시겠어요?”

당시 켄트라는 디자이너도 아니었고 브랜드도 아니었고, 그저 열정 뿐인 ‘엄마’였습니다. 
켄트라가 방문한 처음 3곳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매장은 켄트라를 쳐다보지도 않았죠.

하지만 네 번째 매장의 사장은 켄트라의 주얼리를 보고 “이거 다 살게요.”라며, 켄트라의 주얼리를 구매했습니다.

켄트라에게 1,200달러짜리 첫 주문이었고, 켄드라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눈물 흘렸습니다.

“내가 다시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가진 희망이었어요.”

 

4. 도매(Wholesale)만 하던 시절 - 7년간의 ‘보이지 않는 고통’

2002~2008년 동안 켄드라는 100% ‘도매 방식’으로만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이 과정은 겉보기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리스크 덩어리 구조였습니다.

★ 도매의 그림자

  • 백화점 바이어가 발주하면 매출 발생
  • 바이어가 해고되면 매출 ‘즉시’ 끊김
  • 기성 부티크가 망하면 ‘미수금’ 못 받음
  • 브랜드가 고객을 직접 만날 수 없음
  • 가격 정책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랜드 스토리 · 철학 ·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내 브랜드가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어요. 바이어들이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했죠.”

 

5. 투자자를 찾아 헤맨 3년 - “패션? 위험 업종이죠”

오스틴은 당시 테크 도시였고, 패션 브랜드에 투자할 생각이 있는 VC는 거의 없었습니다.

켄트라는 투자를 받기 위해, 복장도 갖춰 입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만들고 매주 투자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죠.

  • “마진 구조가 약해요.”
  • “주얼리는 트렌드 빨라 리스크 큽니다.”
  • “재고 부담이 크죠.”
  • “우리는 테크 기업을 봅니다.”

심지어 어떤 VC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패션 사업은 이성적이지 않아요. 감정이 너무 많이 개입된 업종이죠.”

 

켄드라는 반복된 거절에도 눈물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켄트라의 멘토가 켄트라에게 말했습니다.

“켄드라, 투자자를 찾지 마라. ‘좋은 회사’를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이 먼저 널 찾게 된다.”

이 말이 켄트라의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6. 2008년 금융위기. 위기일까, 전환점일까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시작됐고, 전체적인 경기 침체로 켄트라의 사업에도 즉시 타격이 왔습니다.

6-1. 부티크들이 줄파산 → 매출 즉시 하락

한 해 동안 매출의 1/3인 50만 달러가 사라졌고, 100개 이상 거래처 중 30곳이 한 해 안에 문을 닫았습니다.

거기에다가 은행에선 “주얼리는 고위험군입니다. 6개월 안에 대출 상환을 완료하세요.”라며 켄트라를 압박했습니다.

그날 밤, 켄드라는 부엌 바닥에서 울며, 모든 걸 포기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날이었어요.”

 

7. 단 하나의 질문: “우리는 왜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는가?”

눈물을 닦던 켄트라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도매가 멈추면, 나는 고객을 잃는다. 그런데 나는 직접 고객을 만난 적이 없다.”
(‘도매 → 대량 주문 → 발주자 중심’)

도매 구조는 브랜드의 운명 전체를 백화점 바이어에게 맡기는 구조였습니다.

이에, 켄트라는 “우리가 직접 고객을 만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생각은 기업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8. 미친 결정: “모두가 폐업하는 시기에, 우리는 매장을 열겠다.”

2008년, 모든 브랜드가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유통 대기업도 매달 파산했습니다.

그때 켄드라는 팀을 소집했고, 이는 직원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요. 그리고 이커머스도 시작해요.”

이에 직원들은 “지금요…?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시기에 매장을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켄드라는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에요. 모두가 문을 닫을 때 우리는 ‘열어야’ 돋보여요.”

사람들은 켄트라를 미쳤다고 했지만, 켄트라는 알았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9. 1호점의 탄생 - 고객 경험을 완전히 재정의하다

첫 매장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었습니다. 켄트라는 기존 주얼리 매장들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기존 주얼리 매장

  • 유리 진열장 안에 잠겨 있는 제품
  • 직원에게 ‘꺼내달라’ 요청해야 함
  • 분위기 무겁고 거리감 있음
  • 옵션 제한적
  • 커스텀 불가능

그러나 켄드라가 만든 브랜드, ‘켄드라 스콧’ 매장은 완전히 달랐다.

 

① 주얼리가 ‘만져지는’ 매장

모든 제품이 오픈 디스플레이. 자유롭게 만지고 착용하고 조합할 수 있다.

② Color Bar — 커스터마이징 혁신

고객이 직접 스톤과 금속 색을 고르고 눈앞에서 바로 제작해주는 구조.

당시에는 거의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③ 매장 안에서 ‘샴페인과 컵케이크’ 제공

고객이 ‘손님’이 아닌 ‘게스트’처럼 대우받았다.

④ 매장 직원들은 모두 “친절 최고 레벨”

고객 이름을 기억하고, 구매 목적을 묻고, 기념일에는 카드까지 썼다.

이러한 경험은 모든 고객을 브랜드 팬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10.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

첫날, 켄드라는 매장 문을 열기 전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아무도 안 오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 고객들이 스톤을 조합하기 위해 줄을 섰고,
  • 주말엔 입장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 그리고 매장 앞에서 사진 찍는 손님들이 늘어났습니다.

“고객들의 웃음소리와 에너지를 듣는 순간, ‘우리는 해냈다’는 걸 알았어요.”

이 1호점의 성공은 매장 수를 확대했습니다. (댈러스, 휴스턴, 아리조나, 캘리포니아)고객들은 어디에서든 줄을 서서 들어왔습니다.

11. 숫자가 말해주는 성장 폭발력

Kendra Scott는 “번개를 병 안에 가둔 성장”이라 불릴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연도매출
2008150만~200만 달러
2009350만
2010600만
20122,000만
20141억 달러
2017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중간에 외부 투자는 거의 없었고, 오직 고객 충성도 + D2C 전략만으로 일궈낸 결과였습니다.

 

12. 2017년, 브랜드 가치는 10억 달러에 도달한다

2017년, 켄트라는 버크셔 파트너스(Berkshire Partners)와 손잡으며,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켄트라는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경제적 안정감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으로…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어요. 평생 처음으로요.”

켄트라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숨을 들이켤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13. 성공한 후?

켄트라의 다음 목표는 ‘다른 여성들을 위한 길 만들기’였습니다.

켄트라는 자신의 성공이, 다른 여성들의 성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켄트라는 텍사스 대학에 여성 창업 리더십 연구소(WELI)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패션 전공자, 문과, 이과, 디자인 전공자, 예술 전공자 상관 없이, 누구나 창업 마인드셋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창업은 특정 전공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누구든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켄드라 스콧 창업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15가지

1) 실패는 ‘끝’이 아니라 ‘진짜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Hat Box가 망하지 않았다면, 켄트라는 주얼리의 가능성을 절대 보지 못했을 겁니다.

“내 앞에 닫힌 문이, 사실은 다음 문을 열 준비를 시키고 있었어요.”

2) 시장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 것

모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반면 주얼리는 켄트라가 진열하는 즉시 팔렸습니다.

그러나 켄트라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만 매달렸습니다.

이건 모든 창업자가 반복하는 실수입니다.

“시장은 늘 말을 하고 있다. 듣지 않는 건 창업자일 뿐.”

3. ‘작게 시작하기’는 결코 부끄러운 출발이 아니다

500달러, 아기용 캐리어, 결혼식 티박스. 그게 켄드라의 모든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시작이 나중에 10억 달러 기업이 되었습니다.

작게 시작하되, 얕게 시작하지 마라.

4. 고객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강하다 (D2C의 본질)

도매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 고객의 표정
  • 고객의 접점
  • 고객의 피드백
  • 고객이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하지만 켄드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D2C)로 바꿨기 때문이다.

5. 위기는 당신의 사업 구조를 재정비할 ‘신호’다

2008 금융위기 → D2C 전환팬데믹 → 온라인 접점 강화 + 커뮤니티 강화

위기는 항상 기회를 숨기고 있습니다.

6. 커뮤니티는 마케팅이 아니라 ‘성장 엔진’이다

Kendra Gives Back → 지역 커뮤니티와 정서적 연결 → 브랜드 팬덤 형성 → 고객이 고객을 데려오는 구조

브랜드가 오래 가기 위해선 ‘기능적 효익’이 아니라 ‘감정적 관계’가 핵심입니다.

7. 창업자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결함이 매력이다’

켄드라 스콧이 말하듯,“내 결함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고객은 완벽한 브랜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정직한 브랜드를 사랑합니다.

8. 목적 없는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녀는 “부자가 되기 위해” 브랜드를 만든 적이 없다.

  • 사람을 웃게 하고 싶어서
  • 자신감을 주고 싶어서
  •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

켄트라는 이 목적이 있었기에 브랜드가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9. 창업자는 ‘내가 약한 부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비즈니스의 강점은 창업자가 잘하는 것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창업자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강한 팀을 만듭니다.

10. 고객 경험(UX)은 제품보다 강력하다

특히 Kendra Scott가 보여준 것. (Color Bar(커스텀 제작) / 샴페인 서비스 / 만져볼 수 있는 오픈 디스플레이 / ‘친절’을 문화화한 직원 교육)

좋은 제품 → 충성 고객 X기억에 남는 경험 → 충성 고객 O

11. 브랜드 철학은 간단해야 강력하다

그녀의 브랜드는 3단어로 요약됩니다.

FAMILY / FASHION / PHILANTHROPY

이 철학은 팀 채용, 제품 기획, 고객 경험, 커뮤니티 전략모든 곳에 일관성을 부여했습니다.

12.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결국 최고의 ‘전략’이 된다

팬데믹 당시, 켄트라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음식을 배달해주고 노년층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했습니다.

이게 바로 거래보다 연결(Connection before transaction)로 켄트라가 강조하는 가치 입니다.

13. 조용한 시작도, 올바른 시작일 수 있다

첫 사업은 “모자를 전국적으로 유행시키겠다!”는 거대한 꿈으로 시작했지만 두 번째 사업은 매우 조용히 시작했습니다.

아기 재우고, 주방 테이블에서 돌 한 개씩 꿰어 만들고, 부티크 문 두드리며 영업

그러나 이 조용한 시작이 진짜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크게 시작하려 하지 말고, 정확히 시작하라.

14. 결국 당신의 ‘빛’은 당신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고객이 켄드라 스콧을 사랑한 이유는 켄트라가 ‘반짝이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켄트라는

실패했고, 울었고, 다시 일어났고, 아이를 키우며 버텼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완벽한 사람에 끌리지 않습니다.

고객은 ‘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 끌립니다.

15. 내일 반드시 해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절대 멈추지 말 것.

켄드라는 10억 달러 기업을 하루하루 가장 작은 단위의 노력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500달러 → 1,200달러 첫 주문 → 350만 → 600만 → 2,000만 → 1억 → 10억 달러

한 걸음을 매일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을 겁니다.

 

 

켄드라 스콧은 평범한 시골 소녀였고, 대학도 중퇴했습니다.

첫 사업도 망했고, 싱글맘이었고, 돈도 없고, 투자자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경제 위기까지 겹쳤습니다.

하지만 켄트라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당신을 믿으면 됩니다.”

켄트라의 이야기가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사람, 포기하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한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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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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