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직이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합니다.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며 나의 실력과 경험을 증명하고 들어왔건만, 이제부터가 진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압박감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팀에서 누군가 나를 챙겨주길 기대하는 건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체계적인 온보딩과 인수인계 과정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우아한 방법 같은 건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대단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히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망치기도 합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가, 실패의 기회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하고요.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3주 동안 동료들과 리더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은 건, 팀이 저에게 기대하는 건 3개월 안에 전무후무한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팀에 합류하는 것 이라는 사실입니다. Lovable의 그로스 헤드 엘레나 베르나가 쓴 <Here is how I approach starting a new job> 은 이직 후 90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보여주는 완벽한 가이드에 가깝습니다. 요령 없는 저에게도 쉽고 빠르게 온보딩할 방법이 사방에 널려 있다는 걸 알려준, 고마운 글이었습니다.
좋은 팀은 개인보다 강하다
엘레나는 3개월의 온보딩 과정을 크게 네 단계로 나눕니다.
-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을 지킨다 (Protect what is working now)
-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부터 찾는다 (Find the easy wins)
- 좀 더 큰 베팅을 시도한다 (Look for a big bet you want to take)
-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고민한다 (Start shaping the strategy)
첫 30일 동안 할 일은 지금 이 팀이 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처음 제품팀을 맡았을 때는 PO로서 멋진 제품 전략을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달 만에 이 제품에 대해 기존 팀이 치열하게 고민해온 시간과 노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좋은 팀이 오랜 시간 겪어온 시행착오와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시간 이 우선 필요했습니다.
개인보다 강한 것은 좋은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개인으로서 성과를 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좋은 팀을 만드는 일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엘레나는 빠른 팀 빌딩에 도움이 되는 것은 그럴싸한 전략보다 작은 성공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독창적인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 없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부터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첫 주에 팀의 OKR과 제품 전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위클리 미팅에서 팀원들에게 공유했을 때, 스스로 너무 조급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팀원들과 워크숍을 하며 제품에 대한 생각을 편하게 나누다 보니, 우리가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오히려 더 많이 나왔습니다.
팀원들에게 개인적인 목표와 기대치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는 것도 힘을 빼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완벽한 전략을 처음부터 구상하기보다, 한 달 정도는 우리가 당장 잘할 수 있는 것,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제품을 이해하고 서로의 합을 맞추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팀원들도 이런 생각에 공감해준 덕분에 당장 홈런을 쳐야 한다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가정에 질문 던지기
엘레나는 30일이 지난 시점에 그동안 새로운 시각으로 제품을 바라보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해두라고 조언합니다. 팀에 깊이 들어갈수록 기존의 가정과 접근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처음 가졌던 비판적이고 신선한 시각을 잃기 쉽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단계인 ‘큰 베팅’을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제품을 바라보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기존의 접근 방식만으로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완전히 백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기존 제품의 맥락과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답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좋은 질문’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온보딩 과정에 대해 한 동료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다가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무심한 동료들 같은데, 사소한 거 하나라도 질문하면 누구보다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답해주는 사람들이에요.”
정말 사소하고 바보 같은 질문이라도 일단 물어보면 성심껏 답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어떤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가정에 의문을 던지는 것 역시 힘을 빼야 더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온보딩 중입니다”라는 보호막이 남아 있을 때는 틀려도 괜찮고,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질문하고 실패하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생각의 폭도, 행동의 반경도 금세 좁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필요한 건 결국 내 안에 있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들었던 손현 작가님의 <가볍게 자주 글쓰기 워크숍>에서 작가님이 글쓰기의 방법론으로 소개해주셨던 자원 기반 관점(Resource-Based View)도 힘을 빼고 본질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감을 선택할 때 내가 가진 자원을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접근법이었는데, ‘일하는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사업일지라도 결국 우리가 가진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와 팀, 제품이 가진 상황과 자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니, 임팩트와 목표에 대한 막연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오히려 안정감이 생기더라고요.
우리의 성공과 실패 속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 그리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힘을 빼고 일한다는 건,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려 애쓰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일하는 마음 🌿
❶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우아한 방법은 없다.
❷ 나와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❸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답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❹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나요? 이번 주에 일을 하며 찾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뉴스레터는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