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일

친구들에게 해린이를 소개했다.

아니, 다시.

해린이에게 친구들을 소개했다. 취업 스터디가 그대로 모임이 된 케이스. 학생 때 만난 것도 아닌데 벌써 꽉 채워서 8년이다. 해마다 세네 번씩 모이는데 이정도면 상당히 가까운 편이라는 거, 누구나 인정할 테다. 작년을 회고하며 그렸던 인간관계 지도에서도 두 번째 박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와이프를 따로 소개하지도 않았잖아. 근데 저번에는 A가 여자친구 보여주고, 이번에는 병연이가. 그건 무슨 마음이야?”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보다는 ‘친구들의 평균이 나’라는 말을 신뢰한다. 둘은 다른 말이다. 흔히 통계를 얘기할 때 나오는 중위와 평균 개념을 떠올리면 된다. 사람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귄다. 간혹 그 친구들의 어떤 면은 서로 정반대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친구들과 나는 중위에 함께 있지 않다. 평균이 커버하는 범위 내에 있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그렇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표출된다. 그러니 가끔 부딪히기도 한다. 누군가 노래했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고. 그걸 보여주고 싶은, 아니, 보여줘도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온전히 나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희망. 애인에게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에는 그런 게 들어있다.

한편 친구들에게 있어 나와 해린이의 관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그러면서도 나머지 관계들을 합친 것만큼 커다란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업데이트를 시켜줘야 한다. ‘그땐 그랬지’류 대화만 나누다가 어느새 뜸해지는 관계가 아니라 그때는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로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으니까.

나는 애인과 친구들에게 나 자신을 좀 더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나를 보여주는 데에 나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있어 그리고 자아정체성에 있어 애인과 친구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애인과 친구는 분명히 다르다. 그게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에야 그걸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냈다.

서로의 계획에 서로의 계획이 전제로 기능한다.

이직을 하려고 해도, 이사를 가려고 해도, 여행을 가려고 해도,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하다못해 밥은 언제 먹고 몇 시에 자고 일어나려고 해도, 나는 너의 계획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 무엇도 더이상 ‘나의 일’이 아니다. 이제 그건 ‘우리의 일’이다. 친구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

연인 관계를 소울메이트로 부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애인은 나의 인간관계와 자아정체성에서 그 비중을 점점 키워나가다가 기어코 나 자신으로 수렴한다. 그래. 나는 그래서 예전부터 ‘자기’라는 애칭이 어딘가 흥미롭게 느껴졌나보다.

타임캡슐로서의 나라는 장류진 작가의 신작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정확히는 초반부에 나오는 문장(“예진이와 함께 핀란드에 와 있으니 한편으로는 과거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룰 수 없던 미래에 온 것 같기도 했다.”)을 읽고 쓴 글입니다. 마침 해린이가 유학했던 베이징으로 곧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라 더 와 닿았나 봅니다.

글에는 ‘베이징 여행을 앞두고 있다’고 썼는데요. 이 레터가 발송된 오늘은 베이징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입니다(발송 예약해두고 떠나왔거든요). 베이징에서 주워갈 글감들은 어떨지 기대되네요. 그나저나 해린이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분들이 이 글에 달아주신 댓글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참 좋았는데, 비밀댓글이라 여러분은 못보시겠네요. 안타깝습니다.

여행지의 맛집은 런던에서 유일하게 두 번 찾은 식당인 페르난도스에서의 식사 경험을 기록한 글입니다. 네이버지도에서 국내 맛집 찾기도 어려워하는데, 구글맵에서 런던 맛집 찾기는 오죽했을까요. 더군다나 여행 전에 미리 알아보지 않은 곳이었다면! 그래서 어떻게 찾았냐고요? ‘맛’과 ‘친절’을 강조한, 한국인이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리뷰를 믿었습니다.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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