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큰 전환

아주 큰 전환

엄마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얌전한 모범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딱히 속 썩이는 일 없이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 한 회사를 진득하게 다니지 못하고 자꾸 옮겨다니는 데다 콘텐츠니 커뮤니티니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좀 아쉽다. 어쨌거나 '나와는 달리' 그리고 '남들처럼'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들. 그런 아들이 갑자기 장사를, 심지어 음식점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당황스러웠을 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화하며 속으로 좀 당황했다. 사실 장사를 하겠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덜 돼서? 놉. 애초에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었으니까. 물론 고려는 해봤다. 지금껏 쌓은 커리어가 다소 애매해 잘 이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무엇이 됐건 '아주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아주 큰 전환'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것이 아닌 데서 온다. 엄마의 것이었던 음식점은 먼저 떠올랐던 후보 중 하나였다.

되짚어보면 엄마와 '아주 큰 전환'이라는 주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복잡했던 속이 '탁!' 하고 단번에 깔끔히 정리되는 기분. 곧바로 결론(=장사를 해야겠다)까지 내달렸다. 대화를 곱씹는 시간을 갖기 전, 그러니까 대화를 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스스로 인지하는 게 한 박자 늦었고 미처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걸 육성으로 내뱉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을 이렇게 갑자기? 별다른 계획도 없이? 이래도 돼?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주 큰 전환'은 어떻게 오는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온다. 나의 것이 아닌 데서 오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건 본질적으로 갑자기, 별다른 계획도 없이 시작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모든 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은 결국 나의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아주 큰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며칠 간 곰곰이 돌이켜 본 결과 나는 당시에는 다소 충동적인 듯 느꼈던 그 결론을 마침내 긍정할 수 있게 됐다.

실마리란 이런 것이었다. '아주 큰 전환'을 이루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지난 시간 동안 꾸려온 가치 우선순위를 리스트로 정리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는 그 리스트를 거꾸로 뒤집는 일이다(없는 가치를 추가할 수는 없다. 그게 뭔지 모르니까). 이를 엄마에게 설명하며 스스로 정리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아래와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1.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은 지난 6년 간 충분히 했다

2. 이젠 그걸 취미로 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그러자 선택지가 명확해졌다. 장사. 보고 자란 게 그거였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지금의 나처럼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엄마가 선택했던 게 바로 장사였다. 나의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것이어서 낯설진 않은 것. 거기서 다시 커리어를 만들어가 보겠다. 그러고 보면 그때 그 대화는 사실상 엄마의 시간과 가르침이라는 투자를 청하는 IR이었던 셈이다.

한 달이 지났다. 장사가 내 일이 된다는 건 여전히 낯설다. 점포 계약까지 마치면 실감이 좀 나려나. 그렇다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박정수(녹싸) 님의 책 <좋은 기분>과 하덕현 님의 책 <참상인의 길>을 읽었다. 훌륭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땡기지 않아서 미뤄뒀던 책. 그들의 후배가 된 지금은 장사꾼 마인드셋을 갖추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했다.

기대보다 크고 많은 도움을 얻었다. 아이템과 지역, 예산을 대략적으로 확정한 시점에 두 책을 같이 읽는 데서 나오는 시너지가 좋았다. 굳이 나누자면 <좋은 기분>이 미션이나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반면 <참상인의 길>은 행동규범이나 실제 경험 및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층위를 커버해주기 때문에 풍부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두 책이 공통적으로 초반부에 짚어둔 내용이다. 장사를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을 <좋은 기분>은 '의도'라고 적고 <참상인의 길>은 '이유'라고 적었다.

"모든 사물과 공간 사이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만들어진 의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 의도란 목적이 분명한 생각을 말합니다. (...) 가게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눈 감았다 뜨니 짠 하고 생기는 가게는 단언컨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도 아니라면 뭔가 요상하고 의미심장한 철학을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과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가게를 엽니다."

- 박정수(녹싸), <좋은 기분>

"왜라는 질문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답변해 보세요. 창업이 시작되면 대부분 '어떻게'와 '무엇을'에 대한 고민만 하기 때문입니다. (...) 이유가 확립되지 않으면 긴 장사의 여정 속에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 내가 장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세요. 없다면 꼭 만들어야 합니다. 집중만이 에너지를 만들고 놀라운 결과를 이뤄낼 수 있으니까요. 장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보세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솔직한 이유를."

- 하덕현, <참상인의 길>

장사를 하기로 결심한 직후 현재 나의 답은 이렇다. 

왜 장사를 하는가?

그것이 '아주 큰 전환'이기 때문에.

'아주 큰 전환'이 왜 필요한가?

이전까지의 궤적에선 답이 안 보이기 때문에.

'아주 큰 전환'이 무엇인가?

가치의 우선순위를 뒤바꾸는 것. 내 경우에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은 지난 6년 간 충분히 했다. 이젠 그걸 취미로 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와 같은 식. 🌊

매달 15일과 30일쯤, 장사를 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메일에 적어 보냅니다(초보라 배울 게 많아서 시간을 못내는 바람에 늦거나 넘어갈 수도 있음). 저는 '아주 큰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이 메일 쓰기가 그 과정에 대한 꼼꼼한 기록으로 남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병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