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낫 놓고 기역 자도

낫 놓고 기역 자도

포스기(POS) 공부에 반나절을 쏟아부은 뒤 깨달았다. 이제 겨우 ‘포스기에 한해’ 남들과 비슷한 출발점에 섰구나. 실제로 도입하고 나면 새롭게 배우고 허둥지둥 대처해야 할 것들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겠지. 어느새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한 각종 포스기 광고가 마치 세상 물정 모른 채 야생으로 툭 튀어나온 어리숙한 뉴비를 털어먹으려는 고인물의 마수처럼 느껴졌다.

기초적인 지식 혹은 행위를 습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초심자의 미덕이다. 여기서 효율을 찾긴 어렵다.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심한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성취감조차 얻기 힘들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아무리 그래도 기초의 스케일은 절대적인 관점에서 너무나 하찮으니까. 이걸로 만족하기엔 갈 길이 멀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은 기역만이 유일한 미션인 줄 안다. 반면 이제 막 기역 자를 읽은 사람은 니은, 디귿, 리을…아, 에, 이, 오, 우…가, 나, 다, 라…무한정 이어질 미션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한 미션들의 행렬에 예외는 없다. 이 세계에 진입한 모든 사람이 통과한 길이다. 새삼 모두가 대단하게 보인다. 중얼거리며 뛰어든다. 어쩌겠어. 해야지. 어떻게든 되겠지.

다가오는 11월에는 가게를 인수한다. 2주 정도 수리 기간을 갖는다. 곧바로 개업할 예정이므로 실제로 며칠 영업도 할 테다. ‘아주 큰 전환’이라며 까불고 다녔던 지난 한 달 반에 비해 훨씬 더 크고 실질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요즘 나는 나 자신이 그 변화에 지나치게 압도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아주 작은 성공과 실패를 매일 그저 꾸준히 쌓아가길.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게 되길. 🌊

매달 15일과 30일쯤, 장사를 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메일에 적어 보냅니다(초보라 배울 게 많아서 시간을 못내는 바람에 늦거나 넘어갈 수도 있음). 이제 기역 자를 읽게 됐는데요. 다음 편지를 보낼 즈음엔 무엇을 읽게 됐을까요?

고맙습니다.

병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