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감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청각장애인 문우와 '나도 작가되기' 수업을 마치며

2021.07.24 | 조회 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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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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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향기 가득한 4월, '당신이 욕망하길 바랍니다'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복지관에서 청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청각 장애인도 여러모로 생활에 불편이 크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글쓰기는 가능하겠더라고요. 전화 통화보다는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요즘, 청각 장애인에게는 소통의 기회가 더 열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들 중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찾글 수업을 의뢰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은 '나도 작가되기'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여 5월 12일 수요일부터 이번 주 7월 21일 수요일까지 총 6회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농인 문우들은 다섯 편의 과제 글을 쓰고 합평을 했습니다. 아직 문집을 만들 일이 남았지만,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점을 나누려고 해요.

수어도 언어다

수화로만 알았지 수어라는 용어는 몰랐어요.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로는 수화라는 방식을 통해 표현되는 '언어'라는 의미의 수어를 공식 용어로 사용한다고 해요. 수어가 진짜 언어더군요. 이 수업에 수어 통역사 2분과 문자 통역사 1분이 함께 도움을 주셨어요. 수업하기 전까지는 이분들이 통역하면 문우의 수어가 100% 정확하게 우리말로 전달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통역'이라는 표현이 맞더군요. 

마치 영어 동시통역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동시통역사들의 영어 실력이 탁월해도 동시통역으로 들으면 뭔가 답답하고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정도까지는 아니니까요. 때로는 영어로 듣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문우의 수어 실력이 저마다 다르다는데 놀랐습니다.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수어를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어도 사람에 따라 조리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부끄러워서 혹은 자기 생각을 요약하지 못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경우도 제법 있거든요. 합평 전에 가슴이 벌렁거려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온다는 분도 계셨어요. 수어 역시 언어이므로 각자 구현에 차이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의 남다른 어학 실력(?) 덕분에 수어만 봐도 대충 어떤 말을 하는지 짐작합니다. 

언어는 장벽이 아니다

5회의 글쓰기에서 이들의 도전 정신을 제대로 알게 된 주제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B님은 청각장애인 독서 모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며 사서를 꿈꾸죠. D님은 당시 자막을 제공하지 않던 EBS 심화 강의에 목소리를 내어 세상을 밝혔습니다. SN님은 혼자서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J님 역시 결혼 자금을 털어 초면인 사람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어요. S님은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가서 농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뻔했는데요. 통역 서비스 없이도 열심히 학업하여 중국 교수님께 인정을 받았고요. L님은 뉴욕으로 여행 간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어렵게 메가 버스를 이용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났어요. 

한국에서의 생활만으로 불편하고 힘들 텐데 이들은 어떻게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요? 저만해도 낯선 곳을 헤매기 싫어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데 말이죠. 해외에서 이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했어요. 청인도 영어 울렁증 때문에 배낭여행을 두려워하니까요.

"말이 안 통할 텐데 어떻게 이렇게 해외에서 여행을 할 수 있나요?"

"언어는 장벽이 아니어요. 우리는 감정으로 소통하거든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게 중요해요."

청인은 소리 나는 언어로 소통하지만 농인은 소리 없는 감정으로 소통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죠. 언어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희망의 증거가 되다

결핍이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바꾸어 보면 기회가 되더라고요. 청각장애인 독서 모임이 없어 직접 만들면 최초의 청각장애인 독서모임이 되고, 최초로 청각장애인이 농학교 교장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꼭 최초가 아니더라도 전국에 두 명밖에 없는 청각장애인 사서에서 세 번째 청각장애인 사서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후배들을 위한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가 되는 거죠. (예전에 읽은 서진규님의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에서 이 단어를 가져왔습니다.)

글로 나를 찾는 과정에 참여한 문우는 모두 작가를 꿈꿉니다. 제가 아는 청각장애인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님밖에 없는데요. 농인이 직접 이끄는 글쓰기 수업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청각장애인에게 보다 더 섬세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이들이 성장하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문우가 작가 뿐 아니라 최초의 청각장애인 글쓰기 선생님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번 수업 준비에 김원영 작가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작가님의 특강을 듣고 《희망 대신 욕망》을 읽었습니다. 작가님께 '당신이 욕망하길 바랍니다' 글 링크와 함께 메일을 보냈더니 김초엽 작가님과 공저로 쓴 《사이보그가 되다》와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를 추천해 주셨어요. 덕분에 문우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직 감정으로 소통하는 법은 서툴지만 저도 배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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