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한 대로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J형 인간이 갑작스레 도쿄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2번째인데요. 2007년 처음으로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감행한 곳입니다. 부산에서 배 타고 큐슈에 가서, 큰 온천도 즐기고, 아소산도 바라보며, 하우스텐보스에서 자유이용권으로 노는 일정이었는데요. 아이들과 함께한 첫 해외여행이라 아직도 생생합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들이 있어서 일본에 놀러 갈 생각도 제법 했는데요. 주말이나 휴일을 껴서 가려니 비행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혹은 "핵 오염수 문제가 있는데 왜 가느냐?"라는 주변의 만류에 주저했습니다.
운 좋게 출장 일정이 잡혔습니다. 시간을 쪼개 도쿄 근처의 일본 공항 검색부터 시작했습니다. 나리타(NRT) 공항은 인천 공항처럼 큰 국제 공항이고 하네다(HND) 공항은 김포 공항처럼 국내선 위주의 공항이었는데 최근 국제선이 늘어난 공항입니다. 하네다 공항이 도쿄 시내와 가깝고, 김포-하네다 구간 비행기가 하루에도 여러 편 있더군요. 처음엔 인천-하네다 구간이 없어 당황했다는~ 운이 점점 이어지는지 2시간의 비행이었지만 무료 비즈니스 업그레이드를 받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동안에는 일본 비자가 필요한 때도 있었는데요. 이제 필요 없고 비지트저팬웹에서 신청만 필요합니다. 이걸 모르고 있다가 출발하는 날 알아서 급하게 공항에서 입력했습니다. 별도 앱 없이 웹페이지에서 정보만 입력하면 입국에 편리한 QR코드가 만들어 집니다.
도쿄는 택시비가 비싸다 해서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는데요. 교통카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아보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본 갈 일이 거의 없는 저는 보증금 없는 카드가 좋겠더라고요. 하네다 공항에서 웰컴 스이카 카드를 살 수 있다고 해서 그걸 사려했는데 찾지 못했고요. 파스모 스이카 카드를 샀습니다. 웰컴 스이카 카드와 비슷한데 28일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잔액 환불 불가하며, 현금으로만 충전이 가능합니다. 처음엔 신용카드 구매가 가능하며 1,500엔이 기본으로 충전됩니다. 발행 수수료도 없으니 딱이죠.
업무로 와서 일본 관광을 하기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요. 다행히 여러 친구를 만났습니다. 관광지를 둘러보고 사진 찍는 일도 물론 좋지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즐겁습니다. 제가 F형 인간이라는 증거입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대만 친구 웨이, 일본 친구 요코, 글쓰기 모임으로 안 한국인 번역가 스왈로, 회사 영어 동호회 회원 아이, 테디를 만났습니다. 연예인도 아닌데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핵인싸가 되어 버렸네요.
이번 출장에 비행기 값이 꽤 비쌌는데요. 벚꽃 축제 때문에 그랬나 봅니다. 도착한 일요일에 태어나 그렇게나 많은 인파는 처음 봤습니다. 도쿄가 들썩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신주쿠 교엔은 한참 기다렸으나 입장도 못 했고, 요요기 공원은 겨우 밀려 입장했습니다. 벚꽃 아래 돗자리를 깔고 맛난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꽃구경하는 걸 하나미라고 부른답니다. '짱구는 못말려'에서 짱구(신짱)가 벚꽃 하나미를 즐기던 모습이 생생했습니다. 이 또한 운이 좋아 벚꽃이 절정인 타이밍에 도쿄를 방문했습니다.
4박 5일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고, 대화를 나누며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점도 있는데요. 우선 영어를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한다고들 하는 이유가 있더군요. 일본인들 마음속으로 굳이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영어 성적이 입사나 승진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영어학원이 우리만큼 실력이 없는 것 같았어요. 두 일본 친구는 영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도, 여전히 영어가 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더 해외로 나가 영어를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쓰지도 않을 영어에 너무 강박을 주는 게 아닌 게 늘 불만이었는데요. '영어가 필요한 사람만 배우게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죠.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지가 참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일 때문에 영어가 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덴마크에 간 것도, 일본에서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고 이들 문화를 접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영어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큰 그림인가요?
일본인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영어를 잘해서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게 연봉 면에서 유리하다고 합니다. 한국도 예전엔 그랬는데 이제는 대기업이 더 복리후생이 좋아서 반반인 것 같습니다. 한국 대기업에서 아이들 대학 학자금도 내준다니 모두 놀라더군요. 일본에서는 대학 등록금이 비싸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교육보험에 들고 평생을 아이 대학 등록금을 위해 검소하게 생활한다고 해요. 한국이 훨씬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지하철은 정말 복잡하고 방대한데요. 1분도 늦는 법이 없을 만큼 철저하답니다. 그만큼 일본 문화는 매뉴얼의 문화이고, 철저하고, 때로는 답답하게도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런 답답함 때문에 아이들을 유학 보내려고 하더군요. 반면 좋은 점은 누구나 새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답니다. 직무를 바꾸는 게 쉽고, 언제든 초보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업무 자체는 유연하지만 직무를 바꾸기가 어려운데요.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예외는 늘 존재하지만요.
음식과 자연 때문에 일본에 또 가고 싶습니다. 18년 전에는 몰랐는데요. 편의점 도시락부터 작은 식당까지, 먹은 음식이 모두 최고였습니다. 세상에나,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 2잔에 맛난 페이스트리 빵을 곁들여도 단돈 만 원입니다. 처음엔 해산물을 먹지 않으려 했는데 너무 신선하고 맛나서 찾아서 먹을 정도였습니다.
서울에 가로수와 곳곳에 공원이 있긴 하지만, 도쿄는 나무가 무성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래된 나무가 잘 보존되었는데요. 그러니 벚꽃도 더욱 탐스러운 게 아닌가 해요. 일본에 있는 동안 최소 만 보에서 3만 보까지 걸었습니다. 공기는 맑았고요. 햇살이 아침을 한국보다 빨리 열었어요. 편도 1시간 30분 이상의 거리를 통근하며, 검소하게, 스미마생(죄송합니다)을 외치며 살아 나가는 일본 직장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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