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시드니에 있었습니다. 10번째 방문이라 약간은 심드렁햇습니다. 출장 가면 바쁜 게 일상이기에 짬이 나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이라도 달리려고 운동복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머무른 나흘 동안 헬스장을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모든 공식 일과를 끝낸 목요일 저녁 6시, 혼자 저녁 식사를 해야 했는데요. 살짝 고민되었습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다녀올 것인지 아니면 헬스장 대신 산책 겸 달링하버를 가는 건 어떨지 말이죠. 산책도 운동이라 달래며, 다녀온 후 시간이 되면 운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일단 나갔습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출장 오면 늘 그렇습니다. 종일 영어로 미팅하고 저녁엔 한국에서 온 메일을 확인해야 합니다. 2시간 시차가 있다 보니 더 바쁘게 돌아갑니다. 해외에 오면 핸드폰 배터리가 빨리 닳듯이 제 체력도 빠르게 고갈됩니다. 충전이 필요했어요!
머무른 호텔이 달링하버 근처라 출근하며 보는 풍경이지만 조금 낯설게 보고 싶었어요.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알고 있다는 착각》의 질리언 테트가 저에게 실제 세계를 더 어슬렁거리고 스스로의 사각지대를 찾으라고 영감을 줬거든요.
조금 넓게 둘러보니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해양 박물관 (Australian National Maritime Museum)도 있고 텀바롱 공원도 있더군요. 문득 덴마크 헬싱괴르에 있던 해양 박물관도 생각났습니다. 시드니의 하늘도 덴마크의 하늘 만큼이나 높고 푸르더군요. 하버 근처라 물멍하기도 좋고요. 강가를 바라보며 저녁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풍경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읽었습니다. 외국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 읽는 게 제 로망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가 올라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좀 더 여유를 즐기려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왔습니다. 밝은 하늘에 날벼락이었어요. 다행히 10분 정도 있다 멈추어서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이 또한 추억의 페이지로 남을거로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출장을 다니며 즐기는 것 중 하나가 비행기에서 책 읽는 것인데요.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를 읽으며 왔어요. 제가 몰랐던 시드니를 하루키가 알려주길 바랐죠. 책에서 달링하버와 시드니 수족관도 언급합니다. 시드니 수족관은 6년 전 딸과 방문했는데 책을 읽고 갔다면 좀 더 자세히 봤을 것 같더군요.
시드니 공항 31번 게이트 앞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서점이 있더군요. 원서를 가끔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는데 가격이 비쌉니다. 서점 가판대에 한 권을 사면 다른 한 권을 50% 할인하는 행사 (Buy 1 Get 50%)를 하길래 봤더니 정가로 산 《Atomic Habits》도 있더군요. 비행기 탑승까지 10분 남아 두 권을 재빠르게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Lessons in Chemistry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워낙 유명하고 읽고 싶던 책이라 빠르게 찜했는데 나머지 한 권을 선택하기 어려웠어요.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서 할인 서점을 찾아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소설을 한꺼번에 샀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책은 일본에서는(혹은 미국에서도) 좀처럼 살 수 없어서, 이곳에 있는 동안 좀 사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골라서 사야지. - 《시드니》 중에서
저도 하루키를 따라 국내 온라인 서점에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책을 골랐습니다. 일단 책이 예뻤고요. 책을 설명하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The pleasure & power of giving ourselves permission to create (우리에게 창의성을 허락하는 즐거움과 힘)" 최근《Permission to Feel》을 읽고 있는 중이라 permission 이라는 단어에 끌렸나 봅니다. 찾아보니 저자 홀리 링랜드 (Holly Rinland)의 소설 《앨리스 하트의 잃어버린 꽃》이 국내에 번역서로 소개되었네요.
짧은 출장 동안 세상을 둘러보고 사각지대를 찾아본 작은 여유가 저에게 소중한 추억 여행과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주말 여러분에게 새로운 관점을 찾을 기회가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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