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추석 명절에 제주를 다녀온 후로 1년에 한 번씩 제주를 다녀오리라 마음먹었지만 코로나로 쉽지 않았습니다. 설 연휴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이번 주에 무작정 다녀왔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지만 인터넷의 힘을 빌려 즉석에서 관광지를 결정하며 3박 4일 동안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하게도 봄날처럼 따스하고 맑은 날씨 덕에 자연을 더욱 즐겼습니다. 낮은 건물로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어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제주가 좋아요.
최근 3번째 제주 여행이다 보니 웬만한 여행지나 유명 오름은 방문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동안 가보지 못한 관광지와 동네 책방 일부를 돌아봤는데요. 내년에는 북스테이와 더불어 책방 여행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1100고지, 아부오름, 월정리 해변, 종달리 해변, 광치기 해변, 빛의 벙커, 성산 일출봉, 카멜리아 힐, 사려니 숲 등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특히 인상적인 곳 세 곳은 스누피 가든,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제주 동네 책방입니다.
┃스누피 가든┃
제주에 다녀온 분이 스누피 가든을 추천하길래 그냥 스누피 캐릭터가 나오는 곳인가 보다 했어요. 한 번쯤 가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아부오름에 가는 길에 표지판을 보고선 오름을 내려와서 들렀습니다.
스누피에 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요. 전 중학교 1학년 방학 과제로 일일 생활 계획표를 스누피 얼굴에 그려 상을 받았기에 스누피가 더욱 친근합니다. 작년에 읽은 《쇼코의 미소》의 "씬짜오, 씬짜오" 단편에서는 친구와 잘 지내는 투이를 스누피로, 내성적인 자신을 우드스탁에 비유한 문장이 있어 우드스탁을 검색해보기도 했어요. 우드스탁을 스누피 가든에서 만나니 반갑더군요.
스누피 만화책은 아직도 내 방 책장에 있다. 흑백 만화책이지만 우드스탁만은 샛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카나리아 우드스탁. 책을 펼쳐 그 노란색 카나리아를 볼 때면,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가며 그 작은 새에게 색을 입혀주려 했던 투이의 따뜻한 마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 《쇼코의 미소》의 "씬짜오, 씬짜오" 단편 중에서
실내 공간인 스누피 가든 하우스를 둘러보며 친근한 스누피 캐릭터와 사진을 찍었어요. 컬러풀한 공간은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어요. 우리가 스누피 친구들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피너츠의 친구들이 맞는 용어입니다. 피너츠(Penuts)는 찰스 M. 슐츠가 1950년부터 50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코믹스트립(신문연재만화)입니다. 슐츠 작가가 스누피 가든을 생전에 봤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일과삶 가든이 생긴다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심쿵합니다.
스누피 가든 하우스로 조금 아쉬웠는데 훨씬 더 넓은 테마 정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호숫가에 앉아 있는 스누피와 뒷모습을 찍어야 했는데 정면 사진을 찍어서 내년에 또 방문해야겠어요. 스누피 가든은 2020년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야외 가든은 피너츠의 자연 속 인생 이야기와 제주 자연이 주는 가치를 연결했습니다. 이야기 동선을 따라 투어하고 스탬프를 찍으면 기념 배지도 받아요. 어른과 아이 모두 볼거리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테마파크입니다. 제주는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요.
┃제주곶자왈도립공원┃
곶자왈은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을 말하며, ‘곶’과 ‘자왈’의 합성어인 제주어라고 합니다.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을 의미하며,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여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지역입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을 소개하는 브런치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요.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더군요.
곶자왈만 있으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찾고 배우고 느끼는 "곶자왈 프로그램"이라는 미션 여권으로 적극적인 탐방을 유도했습니다. 친구 맺고 싶은 나무의 애칭을 지어주고 나무에게 소망을 이야기 한 후 인증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소곤소곤, 나무에게 말걸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캣닢 화분 세트를 받았어요. 15일 후면 싹이 나온다는데 얼마나 잘 클지 기대됩니다. 나무에 가족이나 연인의 글귀를 달아둔 게 보였어요. 와디즈 펀딩 프로그램을 했다는 데요. 아무래도 펀딩으로 자연을 더 보호하는데 힘쓰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 직접 나무를 보고싶어 제주를 방문하게 될테니 일석이조 같아요.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생긴 지는 좀 되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방문자의 경험을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해설 탐방이 있는지 몰랐는데요. 내년에 이곳에 다시 와서 차근차근 해설도 듣고, 곶자왈 내에 4km 이상 걷는 "뚜벅뚜벅, 곶자왈 가는 길" 프로그램도 참여해야겠어요.
┃제주책방올레┃
제주도 내 동네 책방을 엮어 만든 지도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았습니다. 책방만 이동하는 시티투어도 있었나 본데요. 코로나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짧게 소심한 책방, 책자국, 시인의 집 세 곳만 방문했는데요. 각각 색깔이 달랐어요. 제주도 동네 책방은 문화로 정착한 것 같아요. 내년엔 북스테이와 더불어 본격적인 책방 투어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동네 책방을 여는 게 꿈이지만 아직 직접 방문한 적이 없어요. 이제 첫발을 디뎠습니다. 소심한 책방이 첫 책방이었네요. 제가 생각한 것은 북카페였는데 이곳은 서점이 메인이었어요. 차는 거의 최소한으로 판매를 했고요. 주로 책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 같았어요. 겉은 투박해 보여도 실내는 꽤 넓은 공간에 책 추천으로 가득했어요. 귀여운 문구도 팔았는데요. 밑줄 긋기용 펜슬은 탐났지만 비싼 가격에 살짝 내려놨습니다.
소심한 책방에서 구경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책자국을 발견했어요. 카페가 어찌나 예쁘던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곳은 2시간 단위로 차를 주문해야 한다는데요. 청귤 카푸치노의 새콤쌉싸르한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차종류도 다양했고, 벽면의 책은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가운데 진열한 책들은 판매용이라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필사의 책상이었어요. 손으로 하는 느린 독서를 직접 체험하게 해주니 좋았고요. 읽다가 어려워 포기한 《월든》이라 더욱 반가웠어요. 한 단락씩 릴레이로 필사하게 안내했고요. 전 제법 긴 단락을 필사했어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아늑한 공간에서 필사하니 묘한 느낌이었어요. 테이블마다 손님이 다녀간 기록을 남기는 노트가 있었는데요. 다른 사람의 흔적을 읽는 기쁨과 내 글을 남기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어요. 책꽂이 한 곳은 기록 노트로 가득했어요. 이런 기록을 나중에 책으로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공항 근처에 있는 시인의 집에 들렀어요. 손세실리아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였어요. 판매를 위한 책도 있고 테이블마다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이 놓여있어 편하게 읽었습니다. 최근 발간한 《섬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제주살이 산문집도 있었는데요. 제주에 美친 시인의 삶이 부럽더군요.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QR 체크는 물론이고 따뜻한 물에 손을 닦으라는 시인의 깐깐한 청결함에 놀랐습니다. 작은 손수건을 예쁘게 접어 제공했는데 환경을 보살피는 마음에 뭉클했어요. 아보카토를 시켰는데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를 따로 준 후 남은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로 마실 수 있게 배려하는 마음도 감사했습니다. 커피 맛도 일품이었어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카페를 나왔습니다.
제주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더군요.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테마, 프로그램, 그리고 문화로 성장하고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정체해 있다면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겠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지, 우리가 꿈꾸는 미래 모습은 어떨지, 어떤 준비를 해나가야 할지, 늘 고민하고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년엔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책방 시티투어도 가능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행의 힘으로 또 한해를 씩씩하게 보내겠습니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휴 동안 충전하셨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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